제목 | [구약] 말씀과 함께 걷는다: 하바쿡서 - 믿음으로써 변화한 하바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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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4 | 조회수4,949 | 추천수0 | |
[말씀과 함께 걷는다 – 하바쿡서] 믿음으로써 변화한 하바쿡
주님을 따르는 여정에 어느 정도 깊숙이 들어서면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걱정에서 풀려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지 않게 여겨져서도 아니고,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넉넉해졌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줄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서 그날에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신다는 깊은 믿음이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은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에 대한 걱정에서 풀려난 만큼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을 것입니다(마태 6,33 참조). 하느님을 외면하기에 점점 더 심화되는 세상의 폭력과 악에 대한 염려와 안타까움, 그리고 그 폭력의 피해자가 된 이들에 대한 깊은 연민은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감정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와 양식으로 그들의 삶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변화를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될 예언자 하바쿡에게서 발견하게 됩니다.
하바쿡과 하느님의 대화
하바쿡 예언서는 예언자 자신에 대한 정보는 거의 전하지 않습니다. 예언서의 내용을 볼 때, 그가 신바빌로니아 제국이 아시리아 제국을 멸망시키고 국제 무대를 장악한 기원전 7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에 활동했던 예언자라는 것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예언자가 다니엘서의 마지막 부분에도 등장합니다. 다니 14,33-39에 따르면, 추수꾼들에게 나눠 줄 국과 빵을 들고 가던 하바쿡 예언자가 주님의 천사의 손에 정수리가 잡힌 채 다니엘이 갇혀 있던 바빌론의 굴로 날아가서 다니엘에게 음식을 주고 왔다고 합니다. 다니엘에게 음식을 날라다 준 예언자가 왜 하바쿡이었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어떤 전승이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었을 수 있습니다.
하바쿡 예언서를 읽어 보면 다른 예언서와는 무척 다르다는 인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다른 예언서가 하느님께서 예언자에게 하신 말씀을 담고 있다면, 하바쿡 예언서는 예언자와 하느님의 대화가 주된 내용입니다. 이 대화의 내용이 하바쿡의 인격을 드러냅니다. 그는 민족의 고통과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대변하여 하느님께 말씀드립니다.
예언자는 악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는 하느님께 불평과 탄원을 터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 탄원을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예언자의 두 차례 불평(1,2-4과 1,12-17)과 하느님의 두 차례 응답(1,5-11과 2장)이 번갈아 나오고, 마지막에 예언자의 기도(3장)가 덧붙여집니다.
하바쿡의 불평과 하느님의 심판 선언
하바쿡의 첫 번째 불평은, 왜 하느님께서는 의인이 불의를 겪으며 살도록 허락하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예언자가 제아무리 폭력과 억압을 고발하고 외쳐도 하느님께서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으시니, 토라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정의가 왜곡되지 않느냐며 하바쿡은 하느님께 따져 묻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답하십니다(1,5-11). 세상의 불의를 단죄하기 위하여 사나운 민족인 칼데아인들을 보낼 것이라고 이르십니다. 칼데아인들이란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지칭하는 것이니, 그 제국의 군대가 곧 들이닥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다른 나라의 땅을 빼앗고 법과 권위를 멋대로 내세우는 난폭한 이들로서 제 힘을 하느님처럼 여기는 죄인입니다. 이들 역시 결국 바람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예언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언자의 두 번째 불평(1,12-17)은, 왜 하느님께서는 악인의 불의를 벌하지 않고 내버려 두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하바쿡은, 신바빌로니아 제국이 이스라엘의 악을 심판하고 제거하기 위해 보내신 하느님의 도구임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도구인 신바빌로니아 제국이 실은 이스라엘보다 더 악한 자라고 예언자는 고발합니다. 그리고 악인이 의인을 처벌해도 되는 것이냐고 하느님께 따져 묻습니다.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행위는 잔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들은 유다인들을 마구 포로로 잡아가고 무자비하게 죽였습니다.
예언자의 불평을 들으신 하느님께서 또 답하십니다. 악을 행하는 이들은 모두 스러질 것이며, 오직 의인들만이 성실함을 통해 살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악인에 대한 심판 선언은 “불행하여라”라는 말로 시작하는 다섯 가지 불행 선언을 통하여 선포됩니다.
첫째 불행 선언(2,6ㄴ-8)은 다른 이의 것을 강탈하는 자를 향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만큼 그들도 다른 이들의 약탈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둘째 불행 선언(2,9-11)은 탐욕스러운 자를 향합니다. 다른 이에게서 부당한 이익을 취한 이들은 그들이 한 그대로 수치를 입게 될 것임이 선언됩니다. 셋째 불행 선언(2,12-14)은 불의한 자를 향합니다. 그들은 다른 이들이 애써 세운 성읍을 허물고 불의로 자신들의 성읍을 세웠지만 그들의 성읍 역시 허물어질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넷째 불행 선언(2,15-17)은 무법자를 향합니다. 다른 이를 모욕하고 굴욕을 안겨 준 그들 역시 같은 폭력의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다섯째 불행 선언(2,18-20)은 우상 숭배자를 향합니다. 그들은 우상 숭배의 헛됨을 알게 될 것입니다. 결국 불의와 폭력을 행한 자는 모두 주님의 현존 앞에서 할 말을 잃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하바쿡의 기도
마지막에 소개되는 예언자의 기도는 본래 하바쿡 예언자의 작품인지 혹은 후대에 덧붙여진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주어진 문맥에서 이 기도를 해석한다면, 예언자는 하느님의 힘을 보여 달라고 간청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로부터 듣고 알았던 주님의 명성과 그 업적을 이 시대에도 경험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이윽고 예언자는 환시 가운데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옛부터 알았던, 파란 산에서 올라오시는 크고 두려우신 하느님, 당신의 기름부음받은이, 곧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몸소 올라오시는 하느님을 뵙습니다. 거대한 물결이 출렁이는 바다를 짓밟으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고 예언자는 그분을 신뢰한다고 고백합니다. 그의 고백에는 가슴 아픈 현실에 대한 그의 시선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화과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포도나무에는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는 딸 것이 없고 밭은 먹을 것을 내지 못할지라도 우리에서는 양 떼가 없어지고 외양간에는 소 떼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내 구원의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리라”(3,17-18). 예언자의 기쁨은 현실이 만족스럽기 때문에 솟아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의 현실은 결코 기뻐할 만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께서 이루실 미래의 모습을 앞당겨 체험하면서 현실을 이겨 낼 힘을 길러 냅니다. 예언자는 실의에 빠진 유다 민족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세상의 악에 절망하지 않도록 독려합니다. 하느님의 선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므로 악에게 굴복하지 말고 오히려 사랑과 정의에 충실하게 살아가라고 권고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굳건한 신뢰로 변화된 예언자 하바쿡은 입을 것과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기쁨의 샘물을 길어 냅니다. 기쁨이야말로 악의 우울함을 이기는 최대의 무기입니다. 하바쿡 예언자는 말할 것입니다. “기뻐하십시오. 주님께서 승리하실 것입니다.”
* 김영선 수녀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소속으로, 미국 보스톤 칼리지에서 구약성경을 공부하였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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