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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소예언서 읽기: 나리, 저것들은 무엇입니까?(즈카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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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5,264 추천수0

[소예언서 읽기] 나리, 저것들은 무엇입니까?(즈카 1,9)

 

 

열두 소예언자 가운데 이제 즈카르야, 요나, 말라키가 남았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예언 역사의 끝 부분에 도달했습니다.

 

예언이 점점 더 ‘끝’을 향해 갑니다. 예언서로서는 워낙 특이한 책인 요나서를 별도로 하면, 즈카르야서와 말라키서에서는 종말에 대한 관심이 점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끝’, 다른 말로 하면 ‘완성’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는 주제입니다.

 

 

“베레크야의 아들인 즈카르야 예언자”(1,1)

 

이사야서는 세 부분으로 나뉘는 것이 아주 명확해서, 《성경》에도 ‘이사야서 제1부’, ‘이사야서 제2부’ 식으로 제목이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서뿐 아니라 대부분의 예언서는 후대에 편집 과정과 손질을 계속 거쳤기 때문에 첫 저자가 쓴 부분과 편집된 부분이 섞여 있습니다. 이사야서 다음으로 그 구분이 뚜렷한 것이 즈카르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1-8장과 9-14장이 여러 가지 점에서 현저히 구분되므로 처음부터 두 명의 저자가 있던 것으로 봅니다.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든다면, 먼저 내용상으로 볼 때 1-8장에서는 성전 재건이 중요한 주제로 나타나고 즈루빠벨과 예수아의 역할이 강조되어 하까이와 동시대에 살면서 활동한 예언자 즈카르야와 쉽게 연결될 수 있습니다(에즈 5,1; 6,14 참조). 이와 달리 9-14장에서는 그러한 주제가 부각되지 않고 인간의 노력보다 역사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활동과 계획이 강조되고 종말론적 관심이 더욱 커집니다. 문체상으로 1-8장은 신탁이 주류를 이루고 예언자 자신에 대한 언급도 나타나는데, 그에 비해 9-14장에서는 묵시문학적 표현이 사용됩니다.

 

이러한 관찰을 종합하여, 일반적으로 1-8장은 즈카르야 예언자의 것으로 보고(제1즈카르야) 9-14장은 더 늦은 시기의 것으로 봅니다(제2즈카르야). 전문적으로는 9-11장과 12-14장을 구분하는 경우가 많지만, ‘제2즈카르야’라는 이름은 일반적으로 그 여섯 장을 함께 일컫는 말로 사용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을 것은 제1즈카르야서입니다.

 

제1즈카르야서에도 하까이서와 비슷하게 날짜가 표시되어 있습니다(1,1.7; 7,1 참조). 이에 따르면 즈카르야는 기원전 520년, 하까이 예언자가 활동하던 시기부터 기원전 518년 정도까지, 즉 성전이 재건되기 직전 시기에 예언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내용을 보면 하까이와 마찬가지로 성전 재건과 종말론을 말하지만, 하까이에 비할 때 즈카르야는 임박한 종말을 알리는 데 더 중점을 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밤에 보니”(1,8)

 

즈카르야서에서 보이는 특징은 1-6장의 환시입니다. 이전의 예언서, 예를 들어 아모스서와 예레미야서 등에도 환시가 나타나지만, 즈카르야서의 환시는 좀 다릅니다. 지금까지는 그런 환시를 보는 예언자가 직접 하느님과 대화하거나 자신이 보는 것을 바로 이해했지만, 즈카르야서에서는 예언자가 자신이 본 환시의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나리, 저것들은 무엇입니까?”(1,9)라고 질문하고, 천사가 매번 그 환시의 의미를 설명해 줍니다. 후에 이러한 양식이 묵시문학에서 크게 발전하게 되는데, 이는 하느님의 초월성을 강조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한 내용을 담고 있는 환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리우스 제이년 열한째 달”, 곧 기원전 519년 2월에 즈카르야가 여러 환시를 봅니다. 현재의 본문에는 여덟 환시가 나오는데, 그 가운데 넷째 환시는 문체상으로 다른 환시와 많이 다릅니다. 다섯째 환시에서는 즈루빠벨과 예수아가 함께 나오는 반면, 넷째 환시에서는 즈루빠벨이 언급되지 않고 예수아만 나옵니다. 본래 즈카르야서에 일곱 환시가 들어 있었는데 즈루빠벨이 사라진 뒤 현재의 네 번째 환시가 삽입되어 예수아 대사제에게 희망이 집중되었다고 봅니다. 환시가 일곱 개라면 그 중심에는 즈루빠벨과 예수아, 두 인물이 있게 되는데 여덟 개가 되면 예수아만 남게 됩니다. 여덟 개의 환시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도 천사의 설명을 들어야겠지요. 옆에 꼭 성경 본문을 놓고 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환시, 말 탄 기사(1,7-17): 말 탄 기사들은 세상을 돌아보고, 온 세상이 평온하다고 주님께 보고를 드립니다. 여기에서 세상이 평온하다는 것은 새 시대가 시작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부정적 의미를 지닙니다. 이러한 초조함에 대해 주님께서 “다정하고도 위로가 되는 말씀으로 대답하셨다”(1,13)는 것은, 하느님께서 곧 개입하시어 민족들을 심판하시고 예루살렘을 구원하시리라는 응답을 뜻합니다.

 

두 번째 환시, 뿔과 대장장이(2,1-4): 예언자는 먼저 뿔 네 개를 보고, 이어서 대장장이 네 명을 봅니다. 그 뿔들은 이스라엘을 흩어 놓은 이방 민족들이고 대장장이들은 그 민족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오는 것으로, 메시아 시대를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세 번째 환시, 측량줄(2,5-17): 환시에서는 한 사람이 측량줄을 들고 예루살렘을 측량하러 갑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돌아온 이들과 짐승의 수가 너무 많아 예루살렘은 성벽이 없이 넓게 자리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의 시대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환시, 예수아 대사제(3,1-10): 예언자는 천상의 법정에서 사탄이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예수아 대사제를 고발하려고 서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천사가 예수아에게 예복을 입히고 깨끗한 터번을 씌워 줍니다. 이 환시는 유배 이후의 공동체에서 사제직이 중심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고합니다. 실상 유배에서 돌아온 후 유다 공동체에는 임금이 없었고, 사제들이 정치적 ·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다섯 번째 환시, 등잔대와 두 올리브 나무(4,1-14): 이 환시에서 두 그루의 올리브 나무는 즈루빠벨과 예수아를 가리킵니다. 유배 이후의 공동체에서 초기에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던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 후 어떻게 해서 즈루빠벨이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여섯 번째 환시, 두루마리(5,1-4): 날아다니는 두루마리에는 악인들에 대한 저주가 적혀 있어 이 세상에서 악이 제거될 것임을 예고합니다.

 

일곱 번째 환시, 뒤주(5,5-11): 뒤주 안에 앉아 있는 여자는 이 세상의 악을 나타내며, 환시는 그 악이 신아르, 즉 바빌론 땅으로 옮겨질 것임을 보여 줍니다. 이로써 예루살렘은 정화되고 악에서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여덟 번째 환시, 병거(6,1-8): 병거 넉 대가 사방으로 갑니다. 그 가운데 북쪽으로 가는 병거가 주님의 영을 북쪽 땅에 자리하게 한다는 것은, 바빌론에 유배된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성전 재건에 참여할 것을 권고하기 위한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힘을 내어라!”(8,13)

 

즈카르야는 첫 번째 환시를 보면서 “만군의 주님, 당신께서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을 가엾이 여기지 않으시고 언제까지 내버려 두시렵니까?”(1,12) 하고 묻습니다. 악에 대한 심판도, 하느님을 기다리는 이들의 구원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이 세상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환시는 하느님께서 곧 예루살렘을 구원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시리라는 것을 말하고, 유다 총독 즈루빠벨과 대사제 예수아가 하느님께 성별된 사람임을 보여 줍니다. 그의 예언은 한마디로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1-6장의 환시가 예루살렘의 구원이 가까웠음을 알리는 것이라면 8장에서는 그 약속이 완성되었을 때의 모습을 그려 보입니다.

 

즈카르야가 환시를 본 짧은 기간 사이에 천지가 바뀌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을까요? 성전 재건이 가까워지기는 했지만, 마지막 심판과 구원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두운 시대,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를 보여 주는 예언자의 환시는 아직 보이지 않는 희망을 보게 해 줍니다.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희망을 붙잡고 걸어가게 하는 것, 그것이 즈카르야서와 이후의 묵시문학이 하는 역할입니다.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아름다운 노래, 아가》, 《굽어 돌아가는 하느님의 길》 등을 썼고, 《약함의 힘》,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등 여러 책을 옮겼다.

 

[성서와 함께, 2015년 7월호(통권 472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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