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탈출기 말씀 피정4: 물에서 건져진 아이 모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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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4 | 조회수6,576 | 추천수0 | |
탈출기 말씀 피정 (4) 물에서 건져진 아이 모세
지난 호까지 탈출기를 함께 읽고 묵상하는 데 필요한 기본 요소들을 살펴보면서 1장을 읽었습니다. 이번 호부터는 탈출기 내용에 좀 더 충실하게 다가가고자 합니다. 곧 모세가 세상에 태어나 파라오의 딸에 의해 물에서 건져지고, 마침내 그의 아들이 되기까지의 이야기(2,1-10 참조)입니다.
모세의 탄생(2,1 참조)
2,1은 레위 집안 출신의 어떤 남자가 레위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고 전합니다. 그들이 누군지 정확하게 밝히지 않지만, 6,20-21에 가면 그 이름이 언급됩니다. 그들은 바로 레위의 손자 아므람과 레위의 딸, 그러니까 아므람의 고모 요케벳입니다. 사실 레위 18,12은 고모와의 혼인 관계를 엄격하게 금지하므로, 모세의 율법을 아는 이라면 누구나 모세 부모의 혼인 관계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 율법을 받지 않았으니 크게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율법을 전한 모세에게 큰 약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모세가 속한 레위 지파는 창세 34,25-29; 49,5-7에서 볼 수 있듯 폭력 때문에 저주를 받은 가문입니다. 이렇게 보니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 땅에서 구원해 내기 위해 선택하신 모세의 출신 성분이 그리 훌륭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부족한 이들을 뽑으십니다. 너무 완벽한 인간을 뽑아 놓으면, 자기 잘난 맛에 살면서 당신 일을 뒷전에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분은 당신이 쓰실 재목이 부족한 출신 성분을 가지고 태어나도록 만드십니다.
어쨌든 아므람과 요케벳 사이에서 모세가 태어납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아이가 ‘잘생긴 것’을 봅니다. 여기서 ‘잘생기다’라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는 ‘토브’입니다. 이 단어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고 나서 창조물을 보며 내리신 결론입니다(창세 1장 참조). “보시니 좋았다”, 곧 모든 것이 당신이 바라시는 대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단어가 모세에 대한 첫 평가입니다. 이는 모세가 새로운 하느님의 창조 사업, 곧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 사업의 첫 도구가 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표현합니다.
여기서 모세를 ‘토브’하게 생각한 이가 바로 모세의 어머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가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갈 인물이라고 알아본 것일까요? 모세의 어머니가 모세의 미래를 아는지 모르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경 저자는 모세에 대한 어머니의 평가를 통해 모세야말로 하느님 뜻대로 살아갈 만한 인물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아이를 위한 어머니의 계획(2,3-10 참조)
모세의 어머니는 아기를 석 달간 숨겨 기르다가 더 기를 수 없게 됩니다. 그러자 아기를 왕골 상자 안에 넣고 강가의 갈대 사이에 놓아둡니다. 왕골 상자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테바’입니다. 이 단어는 성경 전체에서 두 대목에만 사용되었습니다. 곧 탈출 2장과 창세 7-10장입니다. 특별히 창세 7-10장은 홍수와 관련된 이야기인데, 노아가 만든 방주가 바로 ‘테바’입니다. 흥미롭게도 노아가 테바를 만든 뒤 안팎을 역청으로 칠하고, 모세의 어머니 역시 테바를 만든 뒤 역청과 송진을 바릅니다. 그렇게 하는 까닭은 안에 탄 사람이 물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왕골 상자나 배가 물에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강에 띄워져 있는 모습과 노아의 방주가 물 위에 떠 있는 모습이 오버랩(overlap)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듯합니다. 하느님께서 노아를 살려 주시어 당신과 계약을 맺으신 것처럼, 모세도 테바에 태워 당신의 계약이 이루어지도록 하셨다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모세의 어머니가 테바를 강가에 있는 갈대 사이에 놓았다는 점입니다. 이 대목을 정확히 번역하면, “강가에 있는 갈대에”인데, 갈대를 뜻하는 히브리어는 ‘수프(סּוּף‘(입니다. 이 말이 14장에 다시 등장합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며 건넌 바로 그 ‘갈대 바다’입니다. 모세가 파라오의 손아귀에서 살아나는 이 대목은 이스라엘 백성이 갈대 바다를 지나 살게 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아기를 담은 왕골 상자를 갈대 사이에 놓아둔 뒤, 아기의 누이를 시켜 멀찍이 서서 지켜보게 했습니다. 아마 어떤 계획이 있던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파라오의 딸이 목욕하러 강으로 내려옵니다. 파라오의 딸쯤 되면, 목욕하는 장소가 따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공주가 갈대 사이에 있는 상자를 보았다고 하고, 소녀의 누이가 아기를 지키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세의 어머니는 처음부터 파라오의 딸이 어디서 목욕하는지 알았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파라오의 딸이 아기를 발견하기를 기대한 것 같습니다. 히브리인 아기이지만 거두어 키워 줄 정도로 파라오의 딸이 따뜻한 마음을 지닌 여인임을 알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파라오의 딸은 아기가 히브리인인 것을 금방 알아보면서도 그 아기를 불쌍히 여깁니다. 아버지 파라오와 전혀 다른 모습을 지닌 여인입니다.
여기서 모세의 어머니가 세운 또 다른 놀라운 계책이 드러납니다. 파라오의 딸이 “이 아기는 히브리인들의 아이 가운데 하나로구나”(2,6) 하고 말하자마자 누이가 등장합니다. 그 누이는 “제가 가서, 공주님 대신 아기에게 젖을 먹일 히브리인 유모를 하나 불러다 드릴까요?”(2,7)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파라오의 딸이 그것을 허락하여, 모세의 어머니가 유모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시간이 지나 모세가 자기 형제들 곧 아론과 미르얌을 아는 것으로 봐서, 모세는 이미 유모가 자기 어머니임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모세는 어머니의 지혜 덕분에 파라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파라오의 딸이 모세를 아들로 삼다(2,10 참조)
모세의 어머니는 아기를 데려다 젖을 먹여 키운 뒤, 아이가 다 자라자 아이를 파라오의 딸에게 데려갑니다. 파라오의 딸은 아이를 아들로 삼은 뒤,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냈다”(2,10)는 의미로 모세라고 이름 짓습니다.
2월호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이름은 ‘아이러니(반어법)’합니다. 반어법은 본래의 의미와 실제 의도한 의미가 다른 것을 말하는데,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이름은 일종의 아이러니입니다. 사람을 부르는 호칭에 불과한 이름이 사람의 운명을 미리 알려 주는 것으로 나중에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모세’라는 말은 ‘건져 올리는 자’를 의미합니다. 모세의 이름을 좀 더 정확히 지어 붙인다면, 모세보다 ‘건져진 자’라는 의미의 ‘마수이’가 더 어울릴 법합니다. 하지만 파라오의 딸은 자신이 아이를 물에서 건져 올렸다는 의미로 ‘모세’라고 이름 짓습니다. 파라오의 딸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갈대 바다에서 ‘모세’하리라고, 곧 건져 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모세라는 이름에서도 우리는 모세가 어떠한 인물이 될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파라오의 딸이 모세의 미래를 아는지 모르는지에 상관없이 그는 자기 아버지의 계획을 거스르고 하느님의 계획을 따르는 참으로 지혜로운 인물이 됩니다.
잠깐! 파라오의 딸은 히브리인 유모가 모세의 어머니인 사실을 알았을까요?
성경 저자는 이 점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성경 이야기는 성경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내용만 서술합니다. 물론 나중에 그 정보가 필요하면 언급할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모세 부모의 친족 관계에 관한 정보처럼 말입니다. 성경은 히브리인 유모가 모세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파라오의 딸이 알았을까 몰랐을까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파라오의 딸이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리라고 간접적으로 추측할 뿐입니다. 파라오의 딸이 히브리인 유모에게 건네는 대사를 통해 말입니다. “내가 직접 그대에게 삯을 주겠네”(2,9). 파라오의 딸이 유모가 모세의 어머니인 줄 알면서 이런 말을 했다면, 그는 탈출기 전체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힐 것입니다. 물론 그가 몰랐다 해도 그는 탈출기 전체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입니다. 파라오에게 속한 인물인데도 모세를 물에서 건져 내어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데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 염철호 신부는 부산교구 소속으로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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