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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탈출기 말씀 피정11: 부족한 이들에게 당신의 일을 맡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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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5,730 추천수0

탈출기 말씀 피정 (11) 부족한 이들에게 당신의 일을 맡기시다

 

 

탈출 6장에 하느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이 다시 등장합니다. 그러고 나서 모세와 아론의 족보가 언급된 뒤, 모세가 소명을 받는 이야기가 다시 반복됩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모세를 여러 번 부르셨다는 뜻이 아니라 성경이 다양한 자료로 편집되었다는 흔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이 점을 이야기하면서 피정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여러 편집자의 손을 거친 탈출기

 

벨하우젠(J. Welhausen, 1844-1918년)의 문헌가설에 따르면, 오경에는 다양한 편집층이 존재합니다. 성경 공부를 하신 분들은 들어 보셨겠지만, 야훼계(J), 엘로힘계(E), 신명기계(D), 사제계(P) 저자들이 오경 편집에 관여한 것으로 봅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야훼계 저자들은 기원전 9세기 곧 다윗과 솔로몬 임금 시대 직후에 남쪽 유다에서, 엘로힘계 저자들은 기원전 8세기경 북쪽 이스라엘 땅에서 각각 문헌을 만든 것으로 봅니다. 그러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뒤 남쪽 유다에서 야훼계 문헌과 엘로힘계 문헌이 융합되어 가장 이른 형태의 이야기가 형성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읽는 탈출기는 바빌론 유배가 끝난 직후 다양한 사제계 자료가 첨가되어 전체 골격이 만들어졌고, 그 후 신명기계와 결합되면서 자연스럽게 신명기계 내용이 첨가되었으리라 봅니다. 이런 편집 과정을 거치다 보니 중복되는 대목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모세가 소명을 받는 장면이 6장에 다시 언급되는 것도 이런 까닭으로 여겨집니다.

 

이야기의 흐름을 보면 하느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불러 다시 소명을 주시는 것은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파라오가 모세와 아론의 청을 거부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 심한 부역을 시키다 보니, 백성이 모세와 아론 나아가 하느님께 등을 돌리고, 모세와 아론마저 하느님께 불평을 털어놓기 때문입니다. 6장은 이런 모세와 아론에게 하느님께서 다시금 사명을 주시는 장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주님에게서 소명을 받는 장면이 6,26-30에 다시 등장하는데, 이 또한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일종의 ‘재현’ 기법으로 모세의 소명 이야기를 잠시 중단하고 족보에 관해 언급한 뒤 기존의 소명 이야기로 되돌아가기 위해 앞서 이야기하다가 멈춘 내용을 재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법은 성경 외에 다른 고대 이야기에서도 종종 사용됩니다. 족보가 소명 이야기 가운데 끼인 것을 보면 사제들이 마지막 편집 작업에 관여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탈출기는 다양한 편집 과정을 거쳤지만, 이야기 흐름이 나름대로 깨지지 않는 작품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편집 과정에 함께하시어 오늘 우리가 탈출기에서 당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렇다면 6,2-7,7에서 들리는 하느님의 목소리는 무엇일까요?

 

 

반드시 이루어질 하느님의 계획

 

하느님의 계획은 파라오와 백성, 나아가 모세와 아론에 의해 방해를 받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과 맺은 계약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빼내어 당신이 약속하신 땅으로 데리고 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될 것입니다(6,2-9 참조).

 

어찌 보면 6,2-9은 지금까지 이야기된 것과 앞으로 펼쳐질 모든 사건을 요약해 주는 듯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을 다시 요약 정리해 주시고, 그 계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일러 주십니다. 그 뒤 모세에게 다시 명령하십니다. 파라오에게 가서 당신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내보내라고 말하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도 자기 말을 듣지 않는데, 어찌 파라오가 자기 말을 듣겠느냐며 하느님께 따져 묻습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끌어내 오라고 명령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과 파라오에게 다시 파견하십니다. 여기서 이야기가 잠시 중단됩니다.

 

 

레위 지파

 

6,14부터 모세와 아론의 족보가 다뤄집니다. 여기서는 레아의 첫째 아들로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 가운데 맏이인 르우벤의 아들들과 씨족들, 그리고 시메온과 레위 지파의 아들들과 씨족들만 소개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 가운데 레아에게서 태어난 첫 세 아들입니다. 나머지 아들들의 족보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이것 역시 편집의 흔적이 아닐까요?

 

르우벤이 야곱의 첫째 아들이므로 언급되고, 시메온과 레위는 매우 독특한 이력 때문에 언급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창세 49,5-7에서 야곱은 시메온과 레위에게 축복을 전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시메온과 레위는 형제 그들의 칼은 폭행의 도구. 나는 그들의 모의에 끼지 않고 그들의 모임에 들지 않으리라. 그들은 격분하여 사람들을 죽이고 멋대로 소들을 못 쓰게 만들었다. 포악한 그들의 격분, 잔악한 그들의 분노는 저주를 받으라. 나 그들을 야곱에 갈라놓으리라. 그들을 이스라엘에 흩어 버리리라.”

 

창세 34,25-29에서 보듯 레위는 시메온과 함께 하모르와 그의 아들 스켐을 칼로 죽여 아버지 야곱을 곤경에 빠뜨린 인물입니다. 스켐이 레위와 시메온의 누이인 디나에게 반해 그를 겁탈한 뒤 혼인하고자 했고, 스켐의 아버지와 야곱은 그 혼인을 승낙했는데, 그 사건 때문에 레위와 시메온이 크게 분노한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폭력을 사용해 복수를 합니다. 《성경》은 이 대목에 ‘시메온과 레위의 음흉한 복수’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시메온과 레위의 복수를 전해 들은 야곱은 그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이 땅에 사는 가나안 족과 프리즈족에게 나를 흉측한 인간으로 만들어, 나를 불행에 빠뜨리는구나”(창세 34,30). 하지만 레위와 시메온은 도리어 야곱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누이가 창녀처럼 다루어져도 좋다는 말씀입니까?”(창세 34,31)

 

이처럼 시메온과 레위는 폭력 사건을 일으킨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탈출기의 중요한 두 주인공 모세와 아론이 이 레위 지파의 후손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시메온과 레위에게 그들의 잔악한 폭력성 때문에 각 지파 사이에 흩어질 것이라고 말했는데, 탈출기에 와서 레위의 경우 사제 지파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왜 이렇게 문제 있는 이들에게서 사제가 태어나게 하셨을까요?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지닌 저돌성과 폭력성을 당신을 위해 사용하도록 이끄신 듯합니다. 그들에게 내려진 저주가 복이 되도록 바꾸신 것입니다. 32,25-29을 보면 레위인들이 완전히 변화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모세 편에 서서 하느님을 저버린 이들을 단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열성을 보시고 그들을 이스라엘의 사제가 되게 하십니다. 이제 그들이 온 백성 사이에 퍼져 살게 된 것은 폭력성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열정 때문입니다.

 

 

잘못된 혼인 관계에서 태어난 아론과 모세

 

족보에서 한 가지를 더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고모와 조카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점입니다(6,20 참조). 구약성경의 율법을 잘 아는 이들에게는 무척 어색한 그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레위 18,12은 고모와 조카의 혼인 관계를 엄격하게 금지하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도 폭력성 때문에 저주를 받은 레위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그 부모까지 잘못된 혼인 관계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모세 이후에야 율법이 등장했으니, 그 전의 부모들은 율법에 얽매이지 않았을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주어진 율법이라 해도 그것이 신법神法이라면, 그 전의 사람들도 마땅히 지켜야 할 내용인 점은 분명합니다. 이렇게 보니 하느님의 판단 기준과 사람의 판단 기준이 참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6장의 족보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모습을 잘 보여 주는 듯합니다. 6장 외에도 성경은 하느님의 생각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곳곳에서 보여 줍니다.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면서까지 빼앗은 밧세바에게서 솔로몬 임금이 태어나고, 라합이라는 창녀, 룻이라는 이방 여인에게서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이어지는 것이 그렇습니다. 밧세바, 라합, 룻은 모두 예수님의 족보에 포함된 여인입니다(마태 1,1-17 참조).

 

메시아도 되도록 좋은 출신 성분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우리네 생각과 달리 하느님께서는 흠이 많은 곳에서 메시아가 태어나게 하십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세는 분명히 사람을 죽인 살인자였습니다. 하느님의 소명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이였습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느님께서 다시금 소명을 부여하십니다. 모세가 자신의 부족함을 반복하여 고백하지만, 주님께서 용기를 북돋우시며 당신의 사명을 받아들이라고 강조하십니다. 결국 모세는 하느님의 약속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명을 따릅니다. 이때 모세의 나이는 여든 살, 아론의 나이는 여든 세 살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별로 잘난 것 없는 우리를 불러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 주십니다. 가장 부족한 이들을 뽑으시어 당신의 사명을 맡기십니다. 너무 잘난 사람을 뽑아 일을 시키면 자신이 잘나서 일이 잘 되는 줄 알고 교만을 떨기 때문인 듯합니다. 언제나 부족한 이들을 뽑아 당신의 일을 맡기시고, 그들을 통해 큰일을 해 가시는 하느님. 바로 탈출기에서 만나는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 염철호 신부는 부산교구 소속으로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학을 가르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우리 선조들이 전해 준 이야기》(공역) 등이 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11월호(통권 464호), 염철호 사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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