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탈출기 말씀 피정12: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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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4 | 조회수5,830 | 추천수0 | |
탈출기 말씀 피정 (12)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탈출기는 모세의 소명 장면을 계속 재현합니다. 그만큼 그 소명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각 소명 장면은 나름대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6,28-7,7에 언급된 소명 이야기 역시 그러합니다.
실패를 자기 탓으로 돌리는 모세
이 단락에서 모세가 소명을 받는 장소는 미디안 땅이 아니라 이집트 땅입니다(6,28 참조). 따라서 이 단락은 파라오와의 협상이 결렬되어 좌절하는 모세가 다시 소명을 받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파라오와 담판 짓지 못한 것을 자기 탓, 곧 파라오가 두려워 입을 열지 못한 자기 탓으로 여겼나 봅니다. 그래서 “보십시오, … 저는 입이 안 떨어져 말을 못 합니다”(6,12)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 앞에 섰을 때 하느님의 뜻을 전달한 이는 모세가 아니라 아론이었습니다(4,16.30 참조). 또 뚜렷하게 언급되지는 않지만 파라오와 담판을 지을 때 말을 한 이는 모세가 아니라 아론이었을 것입니다(5,1 참조). 그러나 모세는 모든 실패를 자기 탓으로 돌립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모세를 다시 한 번 하느님처럼 되게 하고 아론을 모세의 예언자로 삼겠다고 말씀하시며 힘을 북돋워 주십니다.
하느님을 알게 하는 표징과 기적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소명을 맡기시면서 당신이 하느님임을 드러내기 위해 이집트 땅에 많은 표징과 기적을 일으키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앞선 소명 이야기에서도 모세에게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주기는 하셨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모세와 아론이 ‘하느님에게서 파견된 사람’이라는 점을 밝히기 위해서였습니다(4,30 참조). 그런데 이 소명 이야기에서는 당신이 직접 표징과 기적을 많이 일으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통해 이집트인들이 당신을 주님으로 알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6,28-7,7의 소명 이야기가 앞의 이야기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표징과 기적을 통해 온 이집트 사람들이 당신이야말로 참된 주님임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에제 36,16-38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을 숭배하여 하느님께서 주신 땅과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벌하시어 그들을 이방 민족들 사이로 내쫓으십니다. 쫓겨나게 된 이스라엘을 본 모든 이방 민족들은 “이자들은 주님의 백성인데 그분 땅에서 나와야만 했지”(에제 36,20)라고 말하며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힙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집안이 민족들 사이로 흩어져 가서 당신의 이름이 더렵혀진 것을 걱정하시면서,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다는 사실을 드러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모든 나라에서 모아다가 약속된 땅으로 데려가시고, 그들을 정결하게 만들어 온 민족이 당신이 주님임을 알게 하시겠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는 것, 다시 말해 온 민족이 주님의 이름을 알게 되는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우리가 매일 바치는 ‘주님의 기도’의 첫 청원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의 기도입니다. 주님 편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시어 우리의 죄로 더렵혀진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기를 청하는, 당신이야말로 참 하느님임을 드러내시기를 청하는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구원해 내시고자 하는 의도도 이러한 맥락입니다. 더럽혀진 당신의 이름을 거룩히 빛나게 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지팡이가 큰 뱀이 되다(7,8-13 참조)
4,1-5에서 하느님께서는 지팡이를 던지면 뱀이 되도록 하는 능력을 모세에게 주십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땅에 던지면 뱀이 되고, 그 꼬리를 잡으면 도로 지팡이가 되는 능력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이 능력을 보임으로써 자신이 ‘하느님에게서 파견된 이’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능력을 보고 하느님께서 모세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이번에도 하느님께서 그 능력을 주시는데, 모세가 아니라 아론의 지팡이가 도구가 됩니다. 그 지팡이는 그냥 뱀(나하쉬)이 아니라 큰 뱀(탄닌)으로 변합니다. 여기서 ‘탄닌’이라는 히브리어는 ‘큰 용’을 뜻합니다(창세 1,21; 욥 7,12; 시편 74,13 등 참조). 흥미로운 사실은 파라오 역시 요술사들을 시켜 지팡이로 큰 뱀을 만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켜버립니다. 이는 큰 뱀으로 상징되는, 하느님과 파라오라는 두 세력의 싸움에서 결국 하느님께서 이기시리라는 것을 미리 알려 주는 표징입니다. 파라오는 이런 표징을 눈으로 보면서도 마음이 완고해져서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런 파라오의 완고함을 보시고 하느님께서 이집트 땅에 열 번에 걸쳐 재앙을 내리십니다(7,14-12,36 참조). 그리하여 당신이야말로 참으로 하느님임을 드러내십니다.
열 번에 걸친 재앙 이야기
열 가지 재앙 가운데 모든 이집트의 맏아들과 맏배를 죽이는 열 번째 재앙을 제외한 나머지 아홉 가지 재앙은 모두 나일 강 유역에서 종종 일어나는 자연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호르트(G. Hort)라는 학자는 나일 강이 원래 푸른색을 띄는데, 어느 해 큰 폭우가 쏟아져 아트바라 강 유역에 있던 붉은 흙이 나일 강으로 휩쓸려 들어가 강물이 붉어졌을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이렇게 붉어진 물 때문에 물고기들이 죽어 나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첫째 재앙, 곧 물이 피로 변하게 된 재앙입니다.
이 첫째 재앙으로 인해 강 주변에 살던 개구리들이 땅 위로 올라오게 되었고(둘째 재앙), 죽은 물고기로 인해 개구리들의 서식처가 오염되어 모두 병에 걸려 몰살당했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또 홍수로 강이 범람하여 모기가 급증하는 소동이 벌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셋째 재앙). 그 밖에도 등에가 급격하게 생겨나게 된 넷째 재앙의 경우는 열대나 아열대 지역에서 갑자기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일종의 마구간 파리 떼 재난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요셉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고센 땅만이 이 재앙의 피해를 보지 않은 것도(8,18 참조), 고센 땅이 열대 기후가 아니라 지중해성 기후를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고센 땅은 나일 강 하구의 삼각주 지대입니다.
다섯 번째 재앙인 가축병과 여섯 번째 재앙인 종기 역시 나일 강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질병으로, 기후 조건이 비교적 좋은 고센 땅, 곧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던 땅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병입니다. 일곱 번째 재앙인 우박 역시 나일 강 주변에서 계절과 관계없이 수시로 일어나는 현상이며, 여덟 번째 재앙인 메뚜기 떼도 이집트에서 매우 흔히 볼 수 있는 자연 현상입니다. 마지막으로 아홉 번째 재앙인 어둠 역시 3월 말부터 생기는 일종의 계절 현상으로, 사하라 사막 쪽에서 부는 바람이 먼지와 모래를 동반함으로써 태양을 가리게 되는 현상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가 되면 두통와 불쾌감, 공포를 느낍니다.
이런 호르트의 견해는 대단히 흥미로워 보입니다. 하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탈출 사건이 일어났던 시기로 돌아가지 않는 한 정확히 어떤 사건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열 번째 재앙의 경우는 자연 재해로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자료는 탈출기 저자가 전해 주는 증언뿐입니다. 이 증언 이야기가 전해 주는 바는 자연 재해로 이집트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파라오에게 여러 가지 표징과 기적을 통해 당신이야말로 참된 하느님임을 드러내셨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런 표징과 기적 앞에서도 파라오는 완고함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완고함
파라오는 재앙이 닥칠 때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 하느님을 섬기러 나가라고 허락합니다. 그러면서 재앙을 거두어 주기를 하느님께 청해 달라고 말합니다. 파라오의 청을 듣고 하느님께서 재앙을 거두어 주시면 파라오는 다시금 마음이 완고해집니다. 이렇게 하기를 반복하자 하느님께서 열 번째 재앙을 내리십니다. 바로 이집트에 있는 모든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를 모조리 죽음으로 내몰아 버리십니다. 결국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 줄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다시 완고해져서 갈대 바다까지 그들을 쫓아갑니다. 도대체 파라오는 왜 이렇게 마음이 완고한 것일까요?
파라오는 자신이 하느님이라도 된 것처럼 자만에 빠졌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임금으로서 무수하게 많은 이를 거느리다 보니, 자신이 하느님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릴만도 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파라오들은 신을 자처했습니다. 그래서 파라오는 완고함으로 눈이 가려져 참된 하느님을 보지 못합니다. 이로 인해 파라오 자신뿐 아니라 그의 백성마저 고통에 빠지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파라오의 완고함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파라오가 완고함을 보일 것이라고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완고한 이들 앞에서도 반드시 당신이 하느님임을 드러내십니다. 비록 그 과정에서 고통받는 이들이 생기기도 하지만, 당신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당신이야말로 참된 하느님임을 드러내십니다.
이는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모르고 스스로 신이라도 된 것처럼 자만심에 가득 찬 이들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당신이야말로 참된 하느님임을 반드시 드러내십니다. 파라오의 완고함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하느님 앞에서 완고함을 보이지 않는지 되돌아봅시다.
* 염철호 신부는 부산교구 소속으로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학을 가르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우리 선조들이 전해 준 이야기》(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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