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탈출기 말씀 피정18: 주님이 시나이 산에 내릴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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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4 | 조회수6,359 | 추천수0 | |
탈출기 말씀 피정 (18) 주님이 시나이 산에 내릴 것이다
드디어 이스라엘은 시나이 산에 도착해 하느님과의 계약을 준비합니다. 탈출기는 19장부터 계약 체결이라는 절정으로 달려갑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 땅에서 탈출시켜 갈대 바다를 건너게 하신 것도 시나이 산에서 그들과 계약을 맺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시나이 산이야말로 탈출의 궁극적 목적지입니다. ‘시나이 산 계약’이 없다면 탈출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계약의 의미
시나이 산 계약 이야기는 탈출 19장부터 레위기를 거쳐 민수 10,10에 이르기까지 다루어집니다. 신명기는 앞서 다룬 계약을 요약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보면 시나이 산 계약 이야기는 오경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토록 중요한 계약 이야기에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모든 규정이 담겨 있습니다.
시나이 산 계약은 하느님께서 아담, 노아, 아브라함, 다윗 등에게 무조건 복을 약속하시는 일방적 계약이 아니라 조건부 계약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당신의 소유로 삼고 그들의 하느님이 되어 그들 가운데 머무르시면서 약속된 땅을 영원히 차지할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이지만, 거기에 조건이 있습니다. 모세를 통해 당신께서 내려 주시는 규정들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약 체결 약속
독수리는 새끼를 교육할 때 날지 못하는 새끼를 절벽 아래로 떨어뜨립니다. 새끼는 날개짓을 하지만 아직 날개에 힘이 없어 바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새끼가 땅에 떨어지기 전에 어미 독수리가 새끼를 낚아채 날개에 태운 뒤 다시 절벽 위의 둥지로 데리고 올라갑니다. 이를 여러 번 반복하여 새끼를 새들의 제왕으로 키워 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이스라엘을 독수리 날개에 태워 데려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19,4 참조). 이집트 땅에서, 갈대 바다를 건너면서,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역경을 겪은 것은 모두 하느님께서 그들을 교육하시는 과정이었고, 그때마다 하느님께서는 어미 독수리처럼 이스라엘을 당신 날개에 태워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교육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을 당신 소유의 백성,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시나이 산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탄생한 자리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소유라고 할 때, ‘소유’는 ‘세굴라’, 곧 임금이 왕궁 깊숙한 창고에 숨겨 놓은 보물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이라고 할 때, ‘거룩하다’는 ‘카다쉬’, 곧 ‘하느님의 소유로 떼어 놓은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과의 시나이 산 계약을 통해 하느님의 온전한 소유가 되고 사제들의 나라, 거룩한 민족이 됩니다(19,5-6 참조).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는 백성의 원로들을 불러 하느님의 뜻을 전합니다. 그러자 온 백성은 “주님께서 이르신 모든 것을 우리가 실천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19,7-8 참조). 온 백성이 수용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은 이 계약이 하느님 편에서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하느님에게서 계약이 시작되었지만, 백성이 모두 동의하여 이루어졌음을 밝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세는 하느님과 백성의 계약을 중재합니다.
모세가 백성의 동의를 하느님께 알려드리자,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본격적으로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몇 가지 준비해야 할 점을 알려 주십니다(19,10-13 참조). 이 대목을 읽다 보면, 탈출기가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 과정을 상세히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뭔가를 상세히 전달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는 이 계약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또 이것이 단순한 구두 계약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많은 준비와 고민 끝에 서로 동의하여 공식적으로 체결된 것임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백성이나 하느님 그 어느 편도 이 계약을 없던 일로 대충 얼버무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오경은 이스라엘과 하느님 간의 계약 문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계약 체결 준비
주님께서는 짙은 구름 속에서 모세에게 다가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9,9 참조). 구름은 당신이 살아 계심을 드러내는 하나의 표징으로 백성은 이를 보고 하느님께서 모세와 함께 계심을 믿게 될 것입니다. 또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계약 체결을 위해 백성으로 하여금 정결을 유지하도록 하라고 명하십니다(19,10-13 참조).
이스라엘 민족에게 ‘깨끗함’을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더러운 곳에 머무르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깨끗함’은 언제나 ‘거룩함’과 연결되는데, 주님께서 머무르시는 곳은 거룩한 곳이기에 언제나 깨끗한 곳이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점을 의로움과도 연결합니다(1코린 6,11 참조). ‘의로운 이’는 ‘깨끗한 이’이고, ‘거룩한 이’입니다. 이처럼 깨끗함은 윤리적인 면과도 연결됩니다.
주님께서는 백성에게 깨끗함을 유지하며 정해진 경계선 밖에 머무르면서 시나이 산에 내려오는 당신을 기다리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면서 산에 오르지도 말고, 산자락을 건드리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내려오실 장소, 율법이 주어질 장소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물론 숫양 뿔 나팔 소리가 날 때, 곧 주님께서 허락하실 때 백성은 주님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시나이 산의 하느님
드디어 셋째 날 아침, 우렛소리와 함께 번개가 치고 짙은 구름이 산을 덮은 가운데 뿔 나팔 소리가 울립니다.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 위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는 두려움에 떠는 백성을 진영에서 데리고 나와 산기슭에 서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게 해 줍니다. 모세가 백성을 데리고 나오자 시나이 산에 연기가 자욱해졌는데, 주님께서 불 속에서 시나이 산 위로 내려오십니다. 모세를 통해 잘 준비된 백성 앞에 당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학자들은 탈출기의 시나이 산 계약 장면에 대한 묘사를 바탕으로 시나이 산이 화산이었으리라 추정합니다. 연기가 가마에서 뿜어 나오는 것처럼 솟아오르며 산 전체가 심하게 뒤흔들리는 모습이 화산 폭발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그곳 주변에 화산이 있을 법한 지역을 찾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헛수고였습니다. 시나이 산 계약 이야기는 시나이 산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려 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게 되었음을 증언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시기 위해 시나이라고 불리던 산으로 내려오셨다는 점입니다.
산봉우리로 내려오신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당신 곁으로 가까이 부르시고, 다른 사제들과 백성은 당신과 거리를 두게 하십니다. 밀려들다 서로 죽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명하십니다. 사제들과 백성은 봉우리 경계선 밖에서 거룩하고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준비시키신 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내리십니다(20,1-17 참조).
잠깐! 가톨릭 공용 《성경》은 19,1을 ‘셋째 달 바로 그날’이라고 번역하지만, ‘셋째 달 첫날’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리 되면 이스라엘은 첫째 달 십사일 밤 이집트 탈출, 곧 파스카 사건이 일어난 지 사십팔일 째 되는 날 시나이 산 아래에 도착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셋째 날 아침, 곧 오십일 째 되는 날 아침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에 나타나셔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십니다(19,16 참조). 이스라엘이 파스카부터 오십일 째 되는 날 하느님의 백성으로 탄생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날을 ‘오순절’이라고 부르며, 시나이 산 위에서 하느님과 자신들이 맺은 계약을 기념합니다. 이날 모세를 통해 율법이 주어졌다고 믿습니다. 흥미롭게도 초대 교회 때 성령이 강림한 날도 오순절이었습니다(사도 2,1-13 참조). 우리 교회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오순절에 성령께서 오시어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이 탄생했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새 오순절, 곧 성령 강림 대축일을 교회의 생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독특한 이야기 기법
19장부터 이야기를 계속 읽어 보면 하느님께서 도대체 언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셨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계약을 맺는 장면이 시작되는가 하면, 이내 지켜야 할 계약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내용을 말하다가 다시 계약 장면이 언급됩니다. 또 19,8에서 모세가 백성의 말을 주님께 그대로 아뢰었다고 이야기하는데, 19,9 마지막 부분에서 주님께 말씀해 드렸다고 다시 언급합니다. 19,15에서 모세는 백성에게 내려가 말하였다고 전하는데, 20,1에 “하느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20,22에 다시금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계약 내용을 알려 주십니다. 다소 정신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나름대로 규칙성 있게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탈출기 저자는 ‘재연 기법’을 사용합니다. 동일한 이야기를 다양한 면에서 다루기 위해, 앞서 이야기하던 흐름을 잠시 끊고 다른 면에서 해당 사건을 이야기한 뒤 다시 앞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이때 앞서 언급한 마지막 대목을 약간 수정하여 다시 언급하는 것을 재연 기법이라고 말합니다(19,8-9 참조). 한 가지 이야기를 다양하게 전하는 것은 전승 자료가 다양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종종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다음 호에서는 이 부분에 관해 좀 더 살펴본 뒤, 십계명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염철호 신부는 부산교구 소속으로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학을 가르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우리 선조들이 전해 준 이야기》(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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