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일상에서 열매 맺는 예수님의 비유: 텃밭지기 제자들은 누구인가? - 들을 준비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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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4 | 조회수5,889 | 추천수0 | |
[일상에서 열매 맺는 예수님의 비유] 텃밭지기 제자들은 누구인가? - 들을 준비 (2)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마르 4,8).
제 방에는 난초 화분이 많습니다. 선배 신부님들이 다른 소임지로 가실 때 주신 것입니다. 한번은 여름휴가를 떠나며 화분들을 아버지께 맡겼습니다. 꽃과 나무를 즐겨 키우고 전문 지식도 많이 알고 계시기에 꽃을 피워 주시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태풍이 불던 날, 온실 창문을 닫지 않아 고스란히 시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며칠 뒤, 신기하게도 뿌리 사이로 꽃대가 하나 올라오더니 예쁜 꽃을 선물로 피워 주고 떠났습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생명을 전하려는 자연의 신비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이번 호 케빈 페로타의 성경 나눔은 이런 질문으로 출발합니다. “좋아하는 꽃, 나무, 화초는 무엇입니까?” 꽃에 관한 사연은 언제나 반응이 좋습니다. 향기로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아까시나무를 좋아하는 청년이 있는가 하면, 벚나무가 가득한 가로수 길을 즐기는 청년도 있습니다. 간 해독에 좋은 민들레를 아는 신부와 함께 따러 다닌다고 이야기하는 청년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식물 재배 동호회인가 싶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도 그러합니다. 종교적 배경 없이 비유만 들으면 농사 이야기로 들릴 것입니다.
케빈 페로타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세 단계로 나누어 묵상해 보자고 초대합니다. 초기 단계와 중간 단계의 실패 이야기를 들은 청자(듣는 이)는 최종 단계에도 실패하거나 겨우 열매 맺은 이야기를 기대했을 법합니다.
우선 뿌리가 내리기 전에 수확을 망쳐 버린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돌밭에 뿌려진 씨앗입니다. 중간 단계까지 성공한 경우도 있습니다. 뿌리는 내렸지만 가시덤불에 숨이 막혀 수확을 망쳐 버린 씨앗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마지막에 뒤틀림이 있습니다. 그 뒤틀림 안에 하느님 나라의 비밀을 알려 주는 키워드가 숨어 있습니다. 기대와 달리 예수님의 비유는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가 맺히는 대성공의 이야기로 끝납니다. 씨 뿌리는 사람 이야기의 결말은 갈릴래아 농부들이 기대하지 않은 기적과 같은 추수입니다(마르 4,8 참조).
숨 쉬는 생명체는 어떤 형태로든 개체를 확장시킵니다. 세상에 뿌려진 하느님의 말씀도 강한 생명력으로 성장합니다. 문제는 누군가 씨앗이 확장하지 못하도록 숨을 막는 것(마르 4,7 참조)입니다. 그리하여 말씀의 숨을 막아 버리는 데 일조한 상황을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케빈 페로타는 이렇게 제안합니다. “살면서 내 인생이 ‘자갈밭’ 같다고 느꼈던 때를 나누어 봅시다.” “주변 사람들의 알력, 경제적 이유, 업무나 여가 생활 때문에 신앙생활을 제한했던 때를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은 자갈밭 같던 시절, 숨 막히던 순간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누겠습니까? 물론 하느님 말씀이 열매 맺어 풍성해졌던 시절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받아들였을 때 체험한 그분의 영향력은 어떠했습니까?”라고 물어 봅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편협함’입니다. 우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읽으면서 성경의 지식으로 판단하고 평가하려 합니다. 내 마음의 텃밭이 자갈밭인지 가시덤불인지 좋은 땅인지에 관심을 둘 뿐, 텃밭의 주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묵상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인생 전반을 통해 텃밭의 변화 과정을 성찰하도록 초대하기 때문입니다. 자갈밭에서 가시덤불로, 가시덤불에서 좋은 땅으로 바뀌는 마음을 점검해 보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신학교 4학년을 마치고 사회 현장 체험을 시작한 신학생들의 고백은 이렇습니다. “몇 달 간 복지관에서 일하며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르바이트도 해 본 적이 없는데, 일주일 내내 일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성당에 앉아 기도에 집중하기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습니다.” 좋은 순간이 어느새 숨 막히는 순간으로 변하는 것을 체험합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갈밭 같은 시간과 숨 막히는 환경은 치유하러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체험케 합니다. 하느님께서 좋은 영향력으로 우리 인생을 이끌고 계심을 체험하는 순간으로 탈바꿈합니다.
일상에서 체험하는 우리 마음의 텃밭은 돌밭과 가시덤불과 좋은 땅이 한데 섞인 느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은 매 순간 텃밭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반응하는 자가 제자입니다. 청중은 비유를 듣고 나서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분 둘레에 있던 이들”과 “열두 제자”만이 예수님께 비유의 뜻을 물었습니다. 열매 맺음에는 듣는 자의 관심과 의향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마르 4,11). 이 비유가 제자들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배우는 귀한 순간이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농사 이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국 제자의 정체성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당신이 내게 와서 나를 따르겠습니까?”라는 도전에 대한 응답으로 구별될 것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제자 된 자의 반응을 다룹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실상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마르 4,14). 그러나 그 응답은 많은 난관을 겪을 것입니다. 케빈 페로타는 성서학자 모나 후커(Morna Hooker)의 글을 인용하여 이렇게 해설합니다. “사무엘기 하권 12장에 있는 나탄의 비유 이야기에서와 같이, 우리는 ‘이 말씀의 내용은 당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라는 경고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하느님 말씀의 씨앗은 자유롭게 뿌려졌지만, 받아들이고 듣는 준비에 따라 열매 맺음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비유 1주차를 시작하며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일상의 사연이 담긴 벚나무 터널과 간에 좋은 민들레 이야기도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이해하기 위한 질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태풍에 시들어 버린 난초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얼마큼 말씀의 씨앗을 확장시키며 살지 묻습니다. 수많은 난관이 있지만 하느님께서 생명 안에 활동하고 계십니다. 바람 좀 맞았다고 누렇게 시들지 않습니다. 다만 그 생명력을 내가 막아 숨 막히게 하지는 않았는지 물어 볼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모든 곳에 말씀을 뿌리십니다. 말씀의 씨앗을 함께 확장시키자고 초대하십니다. 죽어 가는 난초의 꽃도 틔우시는 하느님의 놀라운 생명력을 끊임없이 확장시키는 일에 여러분은 어떻게 응답하겠습니까? 텃밭지기 제자로서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확장에 사용하기 위해 던져진 말씀에 다가서서 기꺼이 응답하는 일입니다.
* 최성욱 신부는 부산교구 소속으로 2001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미국 산타클라라 대학에서 성윤리를 전공하였으며,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윤리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역서로 리처드 M.굴라 《거룩한 삶으로의 초대: 그리스도인의 삶과 제자 됨의 영성》(201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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