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일상에서 열매 맺는 예수님의 비유: 길 잃은 사람들 - 자비로우신 하느님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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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4 | 조회수5,992 | 추천수0 | |
[일상에서 열매 맺는 예수님의 비유] 길 잃은 사람들 - 자비로우신 하느님 (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루카 15,3-6).
예비 신학생 한 명이 피정을 다녀왔다며 기념 티셔츠를 보여 주었습니다. 앞면에는 LOST, 뒷면에는 FOUND가 쓰인 아주 단순한 디자인이었습니다. 그 티셔츠는 ‘길 잃음’과 ‘되찾음’에 대해 묵상케 했습니다. 그때의 예비 신학생이 지금은 LA교구 소속 신부가 되어 복음을 전하며 기쁘게 살고 있습니다.
케빈 페로타는 길을 잃어버린 순간을 떠올려 보자고 합니다. 비유 1주차에 ‘들을 준비’를 주제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마르 4,1-20 참조)를 묵상했다면, 비유 2주차의 주제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입니다. 다음 달에 예정되어 있는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부르러 나선 비유(마태 20,1-16 참조)와 잃어버린 양과 동전을 찾는 비유(루카 15,1-10 참조)는 자비로우신 하느님 체험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길을 잃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습니까? 부산교구의 휴학 신학생들과 일주일 동안 비유 6주간 과정으로 매일 한 꼭지씩 묵상 나누기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시작 질문에 대한 신학생들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친척집에 갔을 때 길을 잃어 20분간 혼자 울면서 돌아다녔다. 형과 어머니와 친척이 나를 찾으러 다녔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어머니와 횡단보도를 건널 때였다. 평소처럼 손을 잡고 건넜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아주머니 손을 잡고 있었다. 길을 건너고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어머니가 건너편에서 내게 손짓하고 계셨다. 다행이었다.” “울지는 않았다. 속으로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한참을 헤매다 평소 눈에 익은 슈퍼마켓을 발견했다. 아버지와 형이 태연하게 TV를 보는 모습이 조금 얄미웠지만, 가족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시작 나눔에 숨겨진 특징을 정리해 보면, 만남의 ‘기쁨’과 ‘공동체와의 기쁨 나눔’ 그리고 ‘이정표’의 소중함입니다. ‘기쁨’은 그것이 겉으로 표현되든 속으로 느끼는 안도감이든 평소에 알아채기 힘든 경험입니다. 잃어버린 후에야 소중함을 체험합니다. 더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잡고 따라간 곳이 엉뚱한 곳일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나눔은 길 찾음에서 이정표가 소중하다는 점을 알려 줍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슈퍼마켓 표지가 길을 찾는 데 귀중한 ‘이정표’가 된 것입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길에도 회복의 ‘기쁨’이 있고, 공동체와의 ‘기쁨 나눔’이 있으며, 회복의 방향을 알려 주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케빈 페로타의 묵상은 이렇습니다. “목자와 잃어버린 동전을 찾은 여인이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는 일에 대한 태도는 동일합니다. 얻은 기쁨은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자는 그의 친구와 이웃을 모두 부릅니다. 그리고 여인은 친구들을 부릅니다(여기서 ‘친구’로 사용된 그리스어는 ‘여인’입니다). 루카 복음의 비유는 잃었다가 다시 찾은 사람의 기쁨을 나누는 것을 끝으로 돌아온 아들의 비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기쁨을 나눌 공동체가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서로가 하느님께 다가서는 이정표가 되어 주는 공동체는 복된 공동체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잃어버린 체험이나 죄 자체가 아닙니다. 잃어버린 순간과 죄 지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한 반응과 태도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예수님은 몇몇 사람이 길을 잃었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대하는 태도는 달랐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을 멀리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당신 잔치에 초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친교를 통해 죄인들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죄인에 대한 용서의 가능성을 부정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죄인들과 자주 어울리고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셨습니다. 그 순간이 하느님을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비유의 말씀은 하느님의 자비하신 성품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왜 자비로우신 분일까요? 케빈 페로타는 ‘잃어버린 사람들 속에 속했던 체험’을 나누라고 요청합니다. 심지어 내가 죄의 상태에 떨어졌던 체험을 진솔하게 고백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때 이웃의 시선이 나를 힘겹게 했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이런 질문도 던집니다. “그러나 그 힘겨운 시간에, 여러분을 찾기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여러분의 삶에 다가오셨습니까?”
이번 나눔의 주제는 죄나 길 잃음 자체가 아닙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느님께서 내 인생에 먼저 개입하셨고, 길 잃은 순간을 통해 나에게 다가오셨다는 사실을 일상에서 찾아 보자는 초대입니다. 인생이 끝없이 추락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나의 내면은 외로움과 고독이 가득했지만 사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기근을 겪었을 때 하느님을 더 가까이에서 체험하였듯, 우리에게 길을 잃어버리는 순간은 길을 찾는 순간이 됩니다.
신학교 생활과 별도로 저의 소임은 부산교구의 휴학 신학생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때로는 부적합한 모습에 휴식 시간을 갖는 학생도 있고, 현장 체험을 위해 직장에서 근무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한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신학교를 떠나 있던 시간이 하느님을 만나는 소중한 순간이었음을 느낍니다. 신학교 안에서만 생활할 때 느낄 수 없던 소중함을 이구동성으로 고백합니다. 심지어 하느님과의 만남은 성소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집안 사정마저 녹록지 않을 때 찾아오기도 합니다. 길을 잃고 방향을 몰라 헤맬 때, 하느님의 손길이 먼저 자신을 찾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여러분은 길을 잃은 적이 있습니까?(LOST)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그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으실 줄 믿습니다(FOUND). LA 교구 예비 신학생 성소자 피정 때, 왜 티셔츠 앞뒤 면에 그런 로고를 써 놓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잃음과 되찾음이 쓰인 옷의 앞뒤 면처럼, 가장 멀리 계신 듯 느껴지는 그 순간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 한가운데서 우리를 위로하고 계셨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살아가면서 혹시 힘겨운 일을 겪게 된다면 그 일을 견디고 이겨 낸 시간은 하느님의 성품과 위로를 체험하는 소중한 순간이 될 것입니다. 송구하게도 그 시간을 축복해 드리고 싶습니다.
* 최성욱 신부는 부산교구 소속으로 2001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미국 산타클라라 대학에서 성윤리를 전공하였으며,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윤리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역서로 리처드 M.굴라 《거룩한 삶으로의 초대: 그리스도인의 삶과 제자 됨의 영성》(201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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