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문화] 성경과 그리스도교 문화: 구약의 신 대(對) 신약의 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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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4 | 조회수6,388 | 추천수0 | |
[성경과 그리스도교 문화] 구약의 신 대(對) 신약의 신?
마르치온주의에 나타난 이원론적 신관
생물학자인 헥켈(Ernst Haeckel)은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되풀이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생물학 분야뿐 아니라 여러 다른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을 듯하다. 필자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3년간 성경을 통독하면서 구약성경에 묘사된 신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다. 하느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에 불을 내리고, 홍수로 온 세상이 물에 잠기도록 하시며, 시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 뱀을 보내시는 등 온갖 방법으로 잘못을 저지른 인간에게 벌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느님을 ‘정의의 신’이라고 부른다고 배웠지만, 어린 초등학생에게는 두려움이 먼저 느껴졌다.
그런데 구약을 다 읽고 신약으로 들어오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대표적 예로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24)에는 구약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 펼쳐진다. 아버지가 자기 몫의 유산을 미리 받아서 탕진해 버리고 돌아온 둘째 아들을 호통을 쳐서 내쫓기는커녕,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여 주는 것이다. 신약의 하느님은 어떠한 잘못도 용서해 주실 것 같은, 자비와 사랑이 가득한 분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상이한 두 느낌에서 초기 그리스도교의 한 이단이 나왔다는 사실을 안 것은 신학을 배우기 시작한 다음이었다. 이러한 관점 때문에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멀어진 이들의 대표 사상을 ‘마르치온주의’(Marcionism)라고 부른다.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을 거부한 마르치온
마르치온(Marcion)은 85년경 흑해의 남쪽 해안에 있는 시노페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유한 선주(船主)이자 주교였던 아버지와의 불화로 고향을 떠나야 했다. 마르치온은 138년 로마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가입하며 거금 20만 세스테르츠(은화)를 희사했다. 처음에는 공동체에서 환대를 받았으나 비정통적 가르침 때문에 144년 결국 면직되었다. 마르치온이 독자적으로 세운 교회는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160년경 마르치온이 죽은 뒤 6세기까지 존속했다. 그렇다면 마르치온을 공동체에서 떠나게 한 ‘비정통적 가르침’이란 무엇이었을까?
마르치온은 필자의 체험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한 선한 신이 어떻게 잔인하게 벌을 준 구약의 신과 같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마르치온은 선한 신을 절대화하였기에 용서하는 신과 복수하는 신을 일치시킬 수 없었다. 결국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을 거부하며 양자가 조화를 이룰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구약의 신은 물질에 질서를 부여하는 역할을 맡은 데미우르고스(demiurgos,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나오는 세계의 창조자)와 같은, 난폭하고 복수를 즐길 뿐 아니라 악의 원천인 물질을 이 세상에 남겨 놓는 능력의 한계를 지닌 신일 뿐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신약의 신은 월등하게 높이 계시는 초월적 신으로서 전지전능하고 본질이 선하다. 이러한 생각을 토대로 마르치온은 두 신의 동일성을 부정했다.
그리스-로마 문화를 배경으로 한 신들의 싸움
그리스-로마 문화에서는 신들의 권력 다툼이나 최고신의 교체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예를 들어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자기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거세하여 제거한 후 최고신의 자리에 올랐다. 그렇지만 자기 권력을 빼앗길까 두려워 태어나는 자식들을 모두 집어 삼켜 버렸다. 살아남은 막내 제우스가 꾀를 써서 형제들을 구하고 최고신의 자리에 올랐다. 신들끼리 싸우는 이야기가 일상사인 그리스-로마 문화에서 성장한 마르치온은 이러한 도식을 받아들여 폭력을 휘두르던 구약의 신을 내몰아 준 사랑과 자비의 신을 찬미한 것이다. 그의 신학에서 구약성경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책이다. 실제로 마르치온은 유다교와의 관계를 모두 끊고 신약의 신만이 구원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매우 설득력 있어 보이는 주장인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
마르치온주의의 문제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관
가장 큰 어려움은 신약의 신이라고 불리는 예수가 구약의 신에 대해 매우 강력한 신뢰와 사랑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예수는 자기가 믿는 아버지를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마르 12,26)이라고 불렀다. 또 숨을 거두면서 외친 비명,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마르 15,34)도 시편 22에 나오는 구절이다. 극단적 상황에서도 구약의 신을 끊임없이 신뢰한 것이다. 신약의 신이라고 불리는 예수가 오히려 구약의 정신을 가장 잘 수행하였기에 마르치온이 제시한 방식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더욱이 마르치온은 영지주의자들처럼 그리스도의 탄생을 선한 신의 아들이 육화되어 더럽혀진 것으로 보았기에, 그리스도가 가상의 육체를 취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을 철저히 분리하는 그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의 죄를 구제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오히려 마르치온은 인간과 근본적으로 달라 결코 인간적 표상을 통해 이해될 수 없는 분에 관한 소식을 인류에게 전한 것이다.
이러한 마르치온의 신관은 단순히 신학 이론에 그치지 않고 매우 강력한 실천을 요구했다. 구약의 신 데미우르고스가 창조한 세상은 구약의 신과 함께 거부되어야 한다. 따라서 구원을 위해서는 혼인과 성생활도 금하는 등 철저히 금욕해야 하며, 미사 때에 포도주를 마셔도 안 된다.
마르치온은 자신의 주장이 전통 유다교는 물론 새로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도 충돌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긴장감 속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전통을 바꾸어 버리기로 결정했다. 그는 아직 깊이 숙고되지 않은 채 신학 체계에 들어온 전승의 불필요한 모든 짐을 떨쳐 버리고 싶어 했다. 실제로 그는 구약성경 전체를 무시했을 뿐 아니라 구원에 관해 구전된 그리스도교의 선포도 믿지 않았다.
나아가 그는 문서로 기록된 복음서들도 예수의 말을 오해하고 다시 유다화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기준에 따라 오직 하나의 복음으로 루카 복음서를 선택했고, 바오로 서간 열 편(갈라티아서, 코린토 1·2서, 로마서, 테살로니카 1·2서, 에페소서, 콜로새서, 필리피서, 필레몬서)만을 경전으로 인정했다. 바오로 서간에서 은총과 구원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가장 순수하게 재발견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마르치온주의에서 얻는 교훈
교부들은 마르치온이 그릇된 선입견을 가지고 그릇된 방법을 써서 그릇된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했다. 마르치온의 신학에 반대한 이레네오는 오직 한 분인 신이 계신데, 그분은 구약의 신이면서 신약의 신으로서 성경이 인간에게 계시해 준 분이며, 인간 지성의 보편적 빛으로 알 수 있는 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마르치온이 그리스도교의 핵심 신학이 결정되기 전에 활동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그가 제시한 경전 목록은 신약성경의 목록을 확정케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 전까지 각 공동체마다 다양한 경전을 단순히 믿어 왔다면, 마르치온 이후에는 어떠한 기준에 따라 경전을 선택해야 하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많은 공동체에서 복음서와 사도들의 서간을 수집하고 선별하는 작업을 신속하게 진행하였다.
마르치온의 유혹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 아니다. 오래 전에 확정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지닌 현대의 그리스도인에게도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우리는 성경에 제시된 가르침이 도전으로 다가올 때 그에 따라 우리 자신을 바꾸려 하는가? 아니면 우리의 생각을 기준으로 삼아 성경의 내용 중에 입맛에 맞는 내용만 선택하려 하는가? 성경이 진정으로 ‘하느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되기 위해 꼭 숙고해 보아야 할 질문이다.
* 박승찬 님은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와 가톨릭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신학부에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 분야는 중세철학이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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