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문화] 성경과 그리스도교 문화: 성찬례 논쟁 - 변증론자와 반변증론자의 대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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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4 | 조회수6,367 | 추천수0 | |
[성경과 그리스도교 문화] 성찬례 논쟁 변증론자와 반변증론자의 대립
성경을 ‘그대로’ 믿어도 될까? 성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 질문 중 하나이다. 대학에서 강의하다 보면, 성경에서 읽은 내용과 전공에서 배운 내용이 충돌하는 문제로 고민하는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해 온 개신교 학생들이 이런 충돌을 느낄 때 더 큰 갈등을 겪는다. 이성을 중시해서 성경 내용을 신화로 치부해야 할까? 아니면 순수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 학문적인 내용을 거부해야 할까?
이러한 고민은 초대 교회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주도하는 학문이 등장할 때마다 새롭게 제기되었다. 신앙과 이성 사이의 갈등이 첨예한 논쟁으로 발전하는 일이 스콜라 철학의 초기에도 벌어졌다. 그것이 바로 ‘성찬례 논쟁’이다.
‘스콜라’(Schola)라고 불리는 중세 학교는 일곱 가지 ‘자유학예’(artes liberales)를 주로 가르쳤다. 그중에서도 문법학, 논리학, 수사학, 이 세 학과가 모든 학문의 기초를 이루었다. 중세 시대에는 문법학과 논리학을 합쳐서 ‘변증론’이라고 불렀는데, 라틴어가 사라지게 되면서 변증론이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변증론자들은 변증론이야말로 진리의 유일한 기준이라고 생각했고 심지어 신학도 이러한 변증론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기적과 같은 신비적인 것에 기대지 않고, 변증론의 지식만으로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증명해 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이들의 세력이 커질수록 반대하는 이들도 많이 나타났다. ‘반(反)변증론자’들은 변증론이란 기껏해야 ‘신학의 시녀’(ancilla theologiae)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더 나아가 변증론이란 신학의 고유한 보물을 훔쳐 가기 위해 악마가 만들어 낸 발명품이라고까지 단언했다.
재능 있는 두 친구 : 베렌가리우스와 란프랑쿠스
당시의 열띤 분위기를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샤르트르 주교좌성당 학교에 ‘베렌가리우스’(Berengarius)와 ‘란프랑쿠스’(Lanfrancus)라는 뛰어난 재능을 지닌 학생이 있었다. 이 둘은 수업시간에 수준 높은 질문을 던져서 선생님들을 당황하게 하고, 중요한 토론대회를 휩쓸고 다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던 란프랑쿠스가 문법학 수업에 나오지 않았고, 토론대회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베렌가리우스는 란프랑쿠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궁금해져서 그의 뒤를 밟다가, 학교 경당의 성체 앞에서 몇 시간 동안 열심히 기도를 드리는 친구를 발견했다. 얼마 후 란프랑쿠스는 친구에게 “나는 변증론을 포기하고 베네딕도 수도원에 들어가서 명상을 하면서 평생을 살아가겠다”고 선포했다. 베렌가리우스는 크게 실망했지만, 친구를 감싸 안고 그의 결정을 축복해 주었다. 두 친구는 각자의 길을 갔다.
성찬례 논쟁
베렌가리우스는 변증론 공부를 계속하여 최고의 변증론 선생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는 문법학과 논리학을 가지고 성경의 내용을 완벽하게 해석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베렌가리우스는 73권이나 되는 성경을 모두 해석하기에는 역부족임을 깨달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할 새로운 길을 찾았다. 성경의 수많은 구절을 일일이 해석할 것이 아니라 가톨릭 미사 중에 가장 핵심적인 문장을 멋지게 분석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성찬례의 핵심이 되는 라틴어 문장이 “Hoc enim est corpus meum”, 음독(音讀)하자면 “혹 에님 에스트 코르푸스 메움”이다. “이것은 나의 몸이다”라는 뜻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문장이다. 그런데 변증론의 기본에 따르면, 문장에 사용되는 지시대명사나 인칭대명사를 분명히 해야 그 문장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장에서는 ‘Hoc’(이것)과 ‘meum’(나의)라는 단어를 분명히 해야 한다. 우선 ‘이것’이 사제가 들고 있는 빵을 가리킨다면, 이 문장은 ‘이 빵은 예수님의 몸이다’로 해석되어 예수님이 마치 호빵맨처럼 빵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된다. ‘이것’이 이미 예수님의 몸을 가리킨다면, ‘예수님의 몸은 예수님의 몸이다’라는 동어반복이 되어 아무 의미 없는 문장이 된다. 사제가 성찬 기도를 바치는 동안에 변화가 일어나서, 빵이었던 ‘이것’이 ‘나의 몸’에서 예수님의 몸으로 변한다고 주장해도, 베렌가리우스에게는 만족스러운 대답이 못 되었다. ‘그 변화가 어떻게 가능한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까?’ 아무런 의문 없이 미사에 참여했던 이들로서는 이런 베렌가리우스의 질문들이 듣기 불편했다. 그렇지만 누구도 감히 뛰어난 변증론자인 베렌가리우스와 논쟁하려 하지 않았다.
그때 바로 베렌가리우스의 옛 친구 란프랑쿠스가 “그만!”이라고 외치며 나타났다. 그는 베렌가리우스가 자신의 변증론 지식을 가지고 신학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란프랑쿠스는 성찬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변증론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이용해 새롭게 설명했다. 드디어 베렌가리우스와 란프랑쿠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고, 둘 다 뛰어났던 만큼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았다. 한창 토론이 무르익어 갈 무렵 주교들과 수도원장들이 토론에 끼어들었고 아직 제대로 결론이 나지도 않았는데 란프랑쿠스의 승리를 선언해 버렸다. 더욱이 베렌가리우스에게는 파문당할 수도 있다고 위협하며 그의 이론을 철회할 것을 강요했다.
그 당시의 논쟁을 묘사한 다음 그림에는 후광이 빛나는 란프랑쿠스와는 대조적으로 베렌가리우스가 난쟁이처럼 조그맣게 그려져 있다. 두 사람으로 대표되는 변증론자와 반변증론자 사이의 논쟁은 불완전한 상태에서 휴전에 들어가고 말았다. 교회 지도자들이 개입하여 반변증론자의 승리로 결론을 내렸지만, 이성적인 열망이 강했던 사람들은 이런 성급한 결정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신학적으로 논의해야 할 중요한 사안들에 교회의 권위가 성급하게 개입하는 방식은 결코 성숙한 해결책이 아니다. 그러나 현대 교회에서도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신앙은 마치 비이성적이거나 반(反)이성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더욱이 맹신과 광기가 신앙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드는 경우 교회 공동체에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음을 역사가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제3의 길이 있을까? 다음 호에서 이 길을 찾은 캔터베리의 안셀무스를 통해 이 질문에 답해 보겠다.
* 박승찬 님은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와 가톨릭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신학부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 분야는 중세철학이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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