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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9: 선택받은 하느님의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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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6,972 추천수0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 선택받은 하느님의 백성

 

 

여섯째 봉인과 일곱째 봉인에 대한 환시 사이에 성격이 다른 환시 하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7장 전체에 걸쳐 소개되는 이 환시를 ‘선택받은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환시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비록 여섯째 봉인 이야기에 뒤이어 나오지만, 세상에 재앙을 가져오는 봉인의 환시에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인장

 

7장은 네 천사가 땅의 네 모퉁이에 서서 땅의 네 바람을 붙잡고 있다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여기 나오는 땅의 네 모퉁이나 네 바람은 모두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것으로 땅 전체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어 “하느님의 인장”을 가진 한 천사가 네 천사에게, 하느님의 종들 곧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인장을 찍을 때까지 어느 것도 해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해치지 마라”(7,3)는 말은 6,6의 “… 그러나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에는 해를 끼치지 마라”와 비교해 볼 때 재앙에 반대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인장”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표현은 에제 9,4(“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해 놓아라”)에서도 발견됩니다. 에제키엘 예언서의 맥락에서 보면, 하느님의 인장(표)을 받은 이들은 다가올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에서 사용된 인장의 의미도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느님의 인장을 받은 이들은 요한 묵시록의 주된 내용인 재앙과 다가올 심판에서 보호받을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 점에서 ‘숫자로 된 표’(13,17 참조)와는 대조되는 상징입니다.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효는 “십사만 사천 명”(7,4)입니다. 요즘 일부 신흥종교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이 이 숫자에 관심을 보입니다. 요한 묵시록에서 말하는 144,000이란 숫자는 실제적 의미보다 상징적 의미로 이해됩니다. 이 책의 저자는 많은 경우 숫자를 통해 상징적 의미를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상징 부분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144,000은 12×12×1,000(10×10×10)으로 풀 수 있습니다. 여기서 12는 전체를 완성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다시 불러모으는 것은 하느님의 구원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뽑으셨다는 것 역시 이와 같습니다.

 

7장에서 이 숫자는 이미 본문에 나왔듯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지파”(7,4)를 의미합니다. 열두 지파의 숫자를 거듭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완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10은 보통 ‘많음’을 나타냅니다. 숫자 그 자체의 의미보다 그 수효가 많을 것임을 보여 주고, 그 숫자를 반복하는 것으로 그만큼 구원받을 이들의 무리가 크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기에 10을 세 번 곱한 1,000은 ‘셀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7,9)라는 표현이 그 점을 잘 나타냅니다.

 

 

희고 긴 겉옷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7,9)이란 표현은 4와 관련되어 ‘모든 세상’을 의미합니다. 이렇듯 온 세상에서 온 구원받은 이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습니다(7,9).

 

흰색은 전통적으로 초월적 존재나 천상의 존재, 하느님 자신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 상징은 구약성경의 전통뿐 아니라 신약성경에서도 드물지 않게 쓰였습니다. 요한 묵시록 역시 이러한 전통적 의미를 그대로 살려 사용합니다. 그렇기에 ‘희다’는 것은 단지 하얀색이기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것으로 이해되고, 그것을 통해 하느님의 초월성이나 천상적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에 ‘빨마’라고도 불렸던 “야자나무 가지”(7,9)는 지중해 지역에서 승리를, 이집트에서는 장수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쓰였습니다. 유다교에서는 초막절 축제를 나타내며 하느님의 강복을 의미할 수 있지만, 요한 묵시록에서는 ‘승리’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된 듯합니다.

 

하느님과 어린양 앞에 서 있는 이들은 찬미의 노래를 부릅니다. “찬미와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힘”(7,12)이 하느님께 영원히 있기를 찬미합니다. 이 일곱 가지는 하느님의 완전함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택받은 하느님의 백성은 ‘큰 환난’을 겪어 냈고,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7,14) 한 이들로 표현됩니다. 겉옷을 희게 만들었다는 것은 죄로부터 자유로워졌음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게 된 이들이라는 표현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어 구약성경의 세 구절(이사 49,10; 시편 23,2; 이사 25,8)이 차례로 인용됩니다(7,15-17 참조). 이로써 하느님께서 이들을 보호하고 지켜 주실 것이라는 내용이 강조됩니다. 특히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7,17; 참조 이사 25,8)라는 구절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납니다.

 

7장에 나오는 ‘선택받은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환시는 요한 묵시록에서 상당히 중요합니다. 이 대목이 전체 내용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요한 묵시록은 전체적으로 재앙에 대한 환시를 주로 다룹니다. 그래서 자칫하면 책 전체를 하느님의 재앙을 전하는 책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7장의 환시를 통해 우리에게, 지금까지 보여 준 재앙과 앞으로 오게 될 재앙은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반대하는 이들을 향한다는 점을 알려 줍니다. 재앙을 전하는 여섯째 봉인에 대한 환시 이후에 나오는, 선택받은 하느님의 백성을 나타내는 이 환시는 재앙의 방향을 잘 보여 줍니다. 하느님을 믿고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이들에게 전해지는 환시는 그들의 구원을 미리 보여 줍니다. 그렇기에 이 환시는 지금 박해받는 처지에 놓여 있지만 믿음을 간직한 이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줍니다. 이것은 요한 묵시록 전체의 맥락과도 잘 이어집니다.

 

*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수학하였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9월호(통권 474호), 허규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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