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16: 바빌론에 내릴 심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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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5 | 조회수7,870 | 추천수0 | |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 바빌론에 내릴 심판
요한 묵시록에서 묘사하는 재앙은 일곱으로 이루어진 봉인과 나팔과 대접입니다. 이 재앙들은 모두 지나갔습니다. 앞으로 묘사되는 환시들은 이제까지 예고되고 보인 심판이 이루어지는 것을 나타냅니다. 가장 처음 접하게 되는 것은 바빌론에 내려질 심판입니다. “큰 물 곁에 앉아 있는 대탕녀에게 내릴 심판을 너에게 보여 주겠다”(17,1).
대탕녀 바빌론
여기에 소개되는 대탕녀 바빌론에 대한 표현은 예레미야서 50-51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큰 물 가에 살며 보화를 많이 가진 자”(예레 51,13)라는 표현은 17,1의 내용과 비슷합니다. 이 여자는 짐승을 타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여기 나온 짐승은 이미 13장에서 표현된 짐승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천사는 땅의 임금들과 주민이 이 여자와 불륜을 저질렀다고 고발합니다. 여기서 표현되는 불륜은 신학적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느님과 그분 백성의 관계를 혼인 관계로 표현합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여인의 이미지로 그리고 하느님은 마치 신랑인 것처럼 소개됩니다. 이 관계는 그리스도와 믿는 이들, 더 나아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요한 묵시록에서 말하는 불륜은 성적인 죄를 실제로 언급하는 것이라기보다 하느님과 맺은 계약 관계를 깨는 행위, 곧 우상숭배를 의미합니다. 결국 땅의 임금들과 주민으로 표현되는 이들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고 악의 세력에 동조하는 이들을 말합니다.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인 짐승(12,3)을 타고 있는 이 여자는 “자주색과 진홍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치장하였습니다”(17,4). 이 표현은 큰 부를 축적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자가 들고 있는 ‘불륜의 잔’은 상징적으로 심판을 나타내는 ‘하느님의 분노의 잔’(14,10 참조)과 대조됩니다. 성도들의 피와 예수님 증인들의 피에 취해 있었다는 것은 이 여자, 구체적으로는 숭배의 대상이었던 황제가 믿는 이들을 박해하는 주체임을 드러냅니다.
“전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그것이 또 지하에서 올라오겠지만 멸망을 향하여 나아갈 따름이다”(17,8). 이 표현은 짐승의 성격을 규정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이미 13장에 대한 설명에서 언급한 바 있는 ‘네로의 귀환’이라는 당시의 전설을 생각하게 합니다. 또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표현으로 소개되는 이 짐승은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분”(1,4.8; 4,8)으로 소개되는 하느님의 적대자임을 암시합니다. 하느님은 영원히 ‘있는’ 분이지만 이 짐승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통해 ‘거짓된 신’임을 표현합니다.
짐승의 일곱 머리는 “일곱 산”과 “일곱 임금”입니다(17,9). 여기서 말하는 일곱 산은 일곱 언덕을 중심으로 도시가 이루어진 로마를 말합니다. 일곱 임금 중 다섯은 지금 없고 하나는 지금 다스리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적지 않은 학자들이 이 표현을 통해 요한 묵시록이 기록된 시기를 밝혀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로마의 황제 중에 어느 황제로부터 시작해서 수를 헤아려야 하는지, 또 지금의 황제가 누구인지를 본문에서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명확지 않습니다. 단지 본문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바빌론이 로마의 상징이며 앞으로 오게 될 임금이 네로와 견줄 만큼 신앙인들의 박해와 관련이 있다는 것 정도입니다.
이들은 모두 힘을 합쳐 어린양과 전투를 벌일 것이고 어린양은 믿음을 간직한 이들과 함께 승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주님들의 주님이시며 임금들의 임금”(17,14)이기 때문입니다. 이 전투에 대해서는 19장에서 자세하게 보게 될 것입니다.
탕녀에게 내려진 하느님의 심판
전투에서 패한 짐승은 “그 여자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알몸이 되게 하고 나서, 그 여자의 살을 먹고 나머지는 불에 태워버릴 것”(17,16)입니다. 상당히 잔인하게 묘사된 이 표현은 모두 구약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에제키엘서 23장은 두 탕녀, 오홀라와 오홀리바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말합니다. 이 안에서 ‘옷을 벗기는 것’은 수치를 당하는 것을, ‘불에 태워 버린다는 것’은 하느님의 진노를 나타내는 것을 상징합니다. 특히 ‘살을 먹는다’는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우상숭배와 관련된 이들에게 내리는 치욕스런 죽음으로 묘사됩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와 관련된 인물은 예로보암과 이제벨입니다. “예로보암에게 딸린 사람으로서 성안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어 치우고, 들에서 죽은 자는 하늘의 새가 쪼아 먹을 것이다”(1열왕 14,11).
이제벨은 이스라엘이 바알 신을 숭배하도록 한 인물로 소개됩니다. 우상숭배를 가져온 이제벨의 이미지는 불륜을 저지른 탕녀로 표현되는 바빌론, 곧 로마의 이미지와 부합합니다(2,20-21 참조). 이제벨에게 내린 하느님의 심판 역시 치욕스런 죽음입니다. “개들이 이즈르엘 들판에서 이제벨을 뜯어 먹을 것이다”(1열왕 21,23).
우상숭배는 구약성경에서부터 가장 큰 죄로 여겨졌습니다. 하느님을 반대하고 우상숭배를 통해 믿는 이들을 선동하는 자들, 그리고 이러한 우상숭배에 동조하는 자들에게 내린 하느님의 심판은 구약성경에서도 가장 잔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심판 예고는 19,17-21에서 다시 표현되며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마지막으로 그 여자, 탕녀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왕권을 가진 큰 도성”(17,18), 곧 로마임이 명시적으로 밝혀집니다.
요한 묵시록 저자는 이 모든 일이 하느님의 주도권 아래 놓여 있다고 합니다. 지금 박해라는 환난의 시기를 지내고 있지만, 이 역시 하느님께서 바른길로, 믿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길로 이끄시리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 고통의 시간은 머지않아 끝날 것입니다. 박해하는 이들은 하느님의 혹독한 심판을 받고, 믿음을 지켜낸 이들은 승리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수학하였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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