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신부님이 고해성사중에 밖으로 뛰쳐나오는 경우도 있나요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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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경호 | 작성일2011-09-09 | 조회수1,614 | 추천수0 | 신고 |
이름도 어여쁜 자매님, 상처 많이 받으셨겠군요.
필자도 어린시절 약현성당에서 엉터리로 고백성사에 참여했다가 신부님한테 꾸지람을 맞은 적이 있답니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고해성사(지금은 일방적인 고백이 아닌 주님과 고통을 나누는 '고해성사'로 바뀌었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지요.
오늘 2011년 9월 8일은 교회에서 성모님 생신을 축하하는 날인데 상처를 공개하게 되었군요. 소순태 교수님의 견해는 자매님이 모르고 짓는 죄를 그 신부님처럼 예방시켜주기 위한 조치라고 이해해두면 좋을듯 합니다. 수녀님을 위시한 다른 분들의 견해는 또한 성모님을 닮는 견해겠지요.
우선 김혜영 자매님의 신앙상담란에 올린 글은 매우 곱고 여린 한 송이 들꽃마음을 연상하게 하지만 소교수님이 우려하는 내용의 골자는 고해성사 내용은 사제들의 경우 그것을 공개하면 사제복을 벗어야하는 엄정한 교회 율법이 있고 이에 평신자 또한 우리가 세상속에서의 복음화 전구를 위해서 타인과의 일대일 대화 가운데 상대방의 프라이버시를 챙겨주기 위하는 선의 등을 이유로 그것을 비밀화 하는 것이 필요하기에 이 곳에 발설하지 말자는 취지로 이해할 필요가 있지요.
신부님이 ''첫영성체(처녀성체로 들으셨다고요?)''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캐 물은 것은 고해비밀 유출과는 별개로 이해해 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영성체라 함은 칠성사 가운데 세번째 입문성사로서 가장 귀한 성사 행위이기에 신부님의 두려운 그것들이 내적으로는 크나큰 주님 사랑으로 이해해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필자의 경우는 성년이 되어 이 날 이때까지 두번째로 신부님께 고해성사중 꾸중을 들은 사례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총회장의 권유로 본당내 관리장 땜빵직을 한달간 이수하던 가운데 이상하게 많은 신자들이 자기집 화장실 불은 끄더라도 성당 화장실 불은 거의 끄지를 못하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오기로 무조건 그것을 꺼 내려가면서 하루는 혼인잔치 가운데 어떤 눈빛이 강한 여인에게 짜증을 내었는데 그녀가 화장실 문 앞에 서서 지켜보더니 "왜 다른 사람에겐 지적하지 않느냐?"며 벌때처럼 성당 마당에 모여든 사람들 앞에서 한마디 맞싸움도 못하고 큰 망신을 당한 사례가 있었기에 이에 대한 나의 잘못을 고해하자 신부님께서 일부러 화를 내시는 것을 듣게 되었답니다.
따라서 신부님이 화를 내는 이유는 어설프게 고해하는 내 자아들의 경우가 아닌 가능성 높은 그 사람을 매우 사랑할 경우라고 결론 짓게 되었습니다. 김혜영 자매님의 경우는 많은 신부님들이 기꺼운 순교를 위해서 가장 거룩하고 소중히 여기는 성체성사에 관한 ''폭포수 사랑''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데 앞으로 이에 관한 적지않은 기도가 예상됩니다.
자매님은 매우 조신하고 고운 품성을 지녔습니다. 오늘날 불행히도 우리나라 결혼 환경은 두 쌍이 결혼할 때 한 쌍이 이혼하는 악이 범람하는 세태를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부님의 그것은 향후 자매님의 평화롭고 단란한 가정 생활까지 보장해주시려는 내적 배려임도 기억해 둠이 필요할 것입니다.
고해성사는 사실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어둠의 세력들이 호시탐탐 우리들의 나약함을 노리며 이 숭고하고 아름다운 고해성사를 어지럽히고자 온갖 훼방을 하는 사회 현상 가운데 인간대 인간의 대화의 폭발적 인기를 구가하는 인터넷 체팅 산업 가운데에서도 자매님처럼 순진하고 한편으로 철없는 노년층 들까지 물질화 산업속에서 또다른 도박성을 조장하는 로또니 고스톱이니 요즘은 신종 물고기잡기 게임이니 하는 오락으로 포장된 도박화 게임으로 엇그제는 한 가정의 철없는 아내가 1,000만원을 탕진하여 그 남편이 그곳 모임을 뒤집어 엎었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합니다.
순진하고 고운 자매님과 관련없는 내용일 수 있겠습니다만 역시 신부님의 꾸중속에는 이러한 것들의 예방 조치도 담겨있다고 보여집니다. 성체성사는 오늘 성모님의 생신을 맞아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복음화로 안전하게 피신시켜줄 수 있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삼위이시며 한 분이심을 믿도록 이끄시는 은총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에서 가르치는 대인 관계에서의 첫 번째 순서는 ''침묵''입니다. 신부님은 아마도 김혜영 자매님에게 ''침묵''을 주입신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어린아이들에게는 주입식 교육을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에게는 기적을 베푸시며 다양한 교사로서의 역할도 이루어주셨습니다.
신부님의 그러한 꾸중으로 말미암아 김혜영 자매님은 이제 그 생각의 침묵부터 다시 공부하며 죽은 침묵의 부활을 향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부님이 왜 그렇게 내게 폭포수같은 사랑을 전하신다며 나는 또한 그 신부님처럼 새로운 과거와 미래로 도둑맞지 않는 이 순간의 평화를 위한 침묵인지 새로운 행위인지를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필자는 신부님이 매우 엄정하게 그러나 아주 특별하게 김혜영 자매님에게 왜 그리 화를 내셨을까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가톨릭 신자들의 내부에도 만연해있는 죽은 침묵을 깨워주시는 주님 은총 대리자로서의 역할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신부님이 꼴보기 싫다고 냉담을 하거나 다른 성당으로 옮기는 사례들을 봅니다. 하지만 "내가 신부보러 성당가느냐? 나는 오로지 예수님 보러 성당을 간다!"라고 선포하며 인간적 오기인지 하느님께 의탁함인지 모를 수밖에 없는 나의 자아는 다시 성당을 향하기도 합니다.
김혜영 자매님의 상처받은 그것을 보며 수녀님도 그 신부님도 또한 그 구체적 사랑에 대한 회심의 기도를 올려주실 것입니다. 어쩌면 이 땅의 수많은 이혼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는 현세의 부부들이 또한 주님의 새로운 은총에 매달려 악이 유혹하는 이혼을 거부하며 그렇게 성당을 향하듯 아이들의 미래를 위하여 나하나 희생 전략이라는 계단을 통하여 새로운 부부애를 꿈꾸기도 할 것입니다.
상처를 받았을 때는 세세히 기억하면 충격을 받으니 보다 범위를 넓게 생각하는 습관을 키우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인간의 판단에서도 보다 자유로워 질 것이고 그 신부님을 위해 기도해줄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실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실 신부님 입장에서 오만가지 듣기 싫은 말도 안되는 고해가 아닌 고백 내용들을 듣는것도 고역일 것입니다. 가끔 신부님들의 강론을 통하여 신자들에게 용건만 간단히 또는 타인의 고해가 아닌 나의 고해를 들려달라는 호소를 접하기도 할 것입니다. 오늘날 체팅 산업의 발달은 그만큼 또한 우리 한국인들이 외롭다는 증거이고 가정사 등의 대리 만족 등으로 인하여 다수의 남자는 여전히 여자 보기를 섹스 대상으로 여기고 이에 여자는 보호본능으로 화를 내지만 실상은 그러한 것들에도 대책없는 두려움에 떠는 모습들을 봅니다.
그러면서도 여인들도 남자들도 ''수다''의 즐거움에 인터넷 산업은 끝모를 데 없이 신장되고 있기도 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가톨릭의 가르침은 현세가 아닌 내세의 기쁨입니다. 그러하니 김혜영 자매님의 그 고운 무언가를 방해하려는 악의 유혹조차 잠시 내려놓고 다음 기회에 다시 신부님과 고해성사에 임할 때는 현세의 대화들을 잘 살피며 신부님께도 진정한 대화(기도)의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보세요. 그렇게 한다면 인간의 의지로만은 불가능한 십계명의 쇄신들도 신부님과의 때론 수다형 고해성사의 즐거움으로 모두 개선하고 천국 내세의 기쁨을 미리 누릴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 수호자이신 동정 마리아님 탄생 대축일도 방금 지나고 어느덧 새날짜를 향하고 있군요. 김혜영 자매님도 좋은 꿈 이루세요. 꿈은 또한 하느님께서 활동하시기 가장 좋은 환경이랍니다. 이상 필자의 견해는 그 신부님을 옹호하자는 취지는 아니고 다만 표현이 복잡하여 그렇게만 비출수도 있는데 나머지는 현명하고 아름다운 김혜영 자매님이 시들지 않는 그 꽃의 마음으로 잘 묵상하길 응원하겠습니다.
신부님이 예수님 되시고 김혜영 자매님이 성모님 되는 그날까지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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