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이사야서 해설: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 유다의 모든 성읍으로 올라와서(36,1)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구약] 성경 73 성경 통독 길잡이: 스바니야서 | |||
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5 | 조회수7,677 | 추천수1 | |
[이사야서 해설]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 유다의 모든 성읍으로 올라와서”(36,1)
무슨 일이 일어나도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을 믿어라”라고 말하는 예언자. 40년 동안 똑같은 소리를 하는 예언자. 임금과 백성은 이제 그 말이 지겨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6,1), 기원전 740년경에 부르심을 받은 이사야는 시리아-에프라임 전쟁 때에 아하즈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하느님을 믿으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기원전 701년, 산헤립의 침공 때에도 이사야는 아하즈의 아들 히즈키야에게 똑같은 말을 합니다. 그런데 히즈키야는 그 말을 따릅니다.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36,1)
산헤립의 침공에 관한 36-37장은 2열왕 18-19장과 거의 같습니다. 아마도 이사야서의 편집자가, 이사야 예언자가 등장하는 열왕기의 이야기를 여기에 옮겨 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어떤 말들을 덧붙이면서 그 사건의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이사야 예언자가 살았던 시대보다 더 늦은 시기의 신학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히즈키야는 이사야서 앞부분에 나왔던 아하즈 임금의 아들입니다. 열왕기는 히즈키야를 흠이 있기는 하나 상당히 훌륭한 임금으로 평가합니다. 아하즈는 아람과 북 왕국 이스라엘의 공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대국 아시리아에 도움을 청했고, 그 결과 그때부터 유다 왕국이 아시리아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히즈키야는 그런 아시리아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리스티아의 도시 국가들과 연합하여 반(反)아시리아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집트의 군사 원조도 기대했습니다. 이사야는 이 점에 대해서는 히즈키야에게 반대했지요(30장 참조). 인간적인 힘에 의지해 자신의 방법으로 살길을 도모하려 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상황은 분명 좋지 않았습니다. 아시리아 편에서 히즈키야를 가만히 둘 리가 없습니다. 산헤립은 먼저 필리스티아의 도시들을 공격했고, 이어서 유다로 진출했습니다.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 유다의 모든 요새 성읍으로 올라와서 그곳들을 점령하였다”(36,1). 인간적인 차원에서는 거의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히즈키야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가 무엇을 믿고 … ?”(36,4)
이제 랍 사케의 말을 들어 봅시다. 그는 아시리아 임금의 말을 히즈키야와 그 신하들에게 전합니다. “네가 무엇을 믿고 이렇게 자신만만하단 말이냐? … 뭇 민족의 신들 가운데 누가 제 나라를 아시리아 임금의 손에서 구해 낸 적이 있더냐?”(36,4.18)
고대에는 나라마다 각자 자신들의 신을 섬겼지요. 서로 다른 신을 섬기는 두 나라가 전쟁하는 것은 두 신이 서로 겨루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아시리아는 이미 시리아와 주변의 여러 지역을 정복했습니다. 그 민족들의 신들은 자기 백성을 구해 내지 못했습니다(36,18). 랍 사케의 말은 매우 거만합니다. 그 신들 가운데 누가 제 나라를 ‘아시리아의 신의 손에서’ 구해 냈느냐고 말하지 않고, “아시리아 임금의 손에서” 구해 냈느냐고 말합니다. 아시리아가 다른 민족들의 신들을 꺾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랍 사케는 히즈키야의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히즈키야가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을 믿고 “주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구해 내신다”(36,15)고 하더라도 믿지 말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문제는 명백하게 신학적인 차원에서 전개됩니다. 아시리아 군대의 위협 앞에서 하느님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랍 사케는 백성을 불안하게 하고 사기를 꺾으려고 거짓말도 합니다. “바로 주님께서 나에게 ‘저 땅으로 공격해 올라가서 그곳을 멸망시켜라.’ 하고 분부하셨다”(36,10). 정말로 랍 사케가 그렇게 믿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산헤립에게 그렇게 명하신 일이 없습니다. 결국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점령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랍 사케는 이러한 말로 백성을 동요시킵니다. 위험 앞에서 하느님을 믿으려고 하는 히즈키야와 그 백성을 불안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랍 사케는 많은 말로 유다를 조롱합니다. 이집트의 원조를 기다리는 히즈키야에게 이집트는 “부러진 갈대 지팡이”(36,6)라고 말하고, 기마술을 익히지도 못했던 군사들에게 기수들만 마련할 수 있다면 말을 주겠다고 비아냥거리며 그들의 항복을 유도합니다.
“히즈키야 임금은 … 주님의 집으로 들어갔다”(37,1)
이런 말을 들은 히즈키야는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그는 백성에게 침묵을 명하고, 이날을 “환난과 징벌과 굴욕의 날”(37,3)이라 부릅니다. 히즈키야는 옷을 찢고 주님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당황하여 두려움에 떠는 것이 아니라, 아시리아가 하느님을 모욕하는 이 큰 수치를 하느님께서 보고 들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히즈키야에게 이 사건은 이미 인간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아시리아에 맞서기 위해 이집트에 의지하려 했을 때 히즈키야는 아직 인간적 차원에 머물러 있었고 그래서 이사야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하느님을 모독하는 랍 사케의 말을 들으면서 히즈키야는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깨달았는지 모릅니다. 이제 그는 아시리아 사신들의 편지를 들고 주님의 집으로 들어가, 하느님 앞에 그 편지를 펼쳐 놓습니다. 편지를 읽으셔야 할 분, 그 편지에 대응하셔야 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이어지는 히즈키야의 기도에서(37,14-20), 히즈키야는 랍 사케의 도전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신앙을 하느님 앞에 고백합니다. 다른 나라 신들이 자기 백성을 아시리아 임금의 손에서 구해 내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그 신들이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작품”(37,19)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살아 있는 신이 아니기에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홀로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 온 세상의 유일한 하느님, 살아 계신 주님이시기에 다른 신들과 달리 당신 백성을 구해 주실 수 있으십니다. 그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아시리아의 손에서 구원하실 때, “세상의 모든 왕국이 당신 홀로 주님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37,20).
산헤립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조롱하였고 그분을 거슬러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는 고대인들의 전통적인 이해에 따라, 강력한 아시리아가 주변의 여러 신을 꺾었으며 이스라엘의 하느님도 쉽게 굴복시킬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소위 ‘다른 신들’과는 다른 분이었습니다. ‘다른 신들’은 사실 신이 아닙니다. 여러 신이 서로 겨루면서 세상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신 한 분 하느님이 역사의 흐름을 결정하고 실행하십니다. 아시리아가 여러 민족을 멸망시킨 것은 사실이나, 그것 역시 하느님께서 오래전부터 결정하고 계획하여 이제 실행하신 것이었습니다(37,26).
“주님의 천사가”(37,36)
이제 이 전쟁의 결과도 하느님의 결정에 따라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사야서의 본문에서 그 마지막 장면은 아주 짧게 묘사됩니다. 아침이 되어 보니 주님의 천사가 아시리아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쳤다는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 오히려 본문에서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이 일에 대한 예고입니다. 이사야를 통하여 히즈키야에게(37,30-32), 그리고 산헤립에게(37,33-35) 선포된 하느님의 말씀은, 전쟁의 결과는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모든 것을 결정하신 하느님의 뜻에 달려 있음을 보여 줍니다. 천사가 아시리아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칠 때 이스라엘 군대는 무엇을 했을까요? 밤사이에 일어난 일이니 아마 잠을 잤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한 일은 오직 아침에 밖에 나가 그 결과를 확인한 것뿐입니다.
앞에서 산헤립은 히즈키야에게 “네가 무엇을 믿고 이렇게 자신만만하단 말이냐?”(36,4)라고 물었습니다. 히즈키야는 “우리는 주 우리 하느님을 믿소”(36,7)라고 대답합니다. 결국 전쟁의 결과는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히즈키야가 믿었던 하느님의 결정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이스라엘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오늘도 내일도 똑같은 말을 할 것입니다. 하느님을 신뢰하라고 말입니다.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아름다운 노래, 아가》, 《굽어 돌아가는 하느님의 길》 등을 썼고, 《약함의 힘》,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등 여러 책을 옮겼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