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이사야서 해설: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느님 사이를 갈라놓았고(이사 59,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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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5 | 조회수7,467 | 추천수0 | |
[이사야서 해설]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느님 사이를 갈라놓았고”(이사 59,2)
한참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저수지 바닥이 드러나고, 지하수를 찾아 땅을 파도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보에도 없던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빗방울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비를 주시라고 더 열심히 기도를 해야 하나?’ 하지만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미국이 파리 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했다는 뉴스가 생각났고, 바로 다른 대답이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기후는 인간들이 망쳐 놓고 하느님을 탓하기는….’ 이것이 이사야 예언서 제3부가 작성되던 시기에 이스라엘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제3이사야와 그의 시대
제3이사야라는 한 사람의 예언자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서 56-66장을 쓴 사람이 있기는 하지요. 하지만 그가 한 사람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이 56-66장을 모두 썼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대개는 56-66장 가운데서도 60-62장이 더 먼저 작성되었고, 그 앞뒤에 다른 부분들이 덧붙여졌다고 보기 때문에, 저자가 한 사람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쨌든 기원전 8세기에 이사야라는 예언자가 처음 시작했고, 유배 중에 편의상 제2이사야라고 일컬어지는 다른 예언자가 확장시킨 이 책을, 제3이사야가 다시 한 번 확장시켰습니다. 그러니 그 예언자의 고향이 어디이고 직업이 무엇인지 찾으려는 노력은, 제2이사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무의미합니다.
본문에서 시대와 장소를 추정해 볼 수는 있습니다. 저자는 예루살렘에 돌아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배에서 돌아온 후의 여러 가지 상황이 본문에 나타납니다. 아직 성전 재건은 완성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니 유배에서 돌아온 기원전 538년부터 기원전 520년 정도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연대를 비교적 정확히 알 수 있으니, 그 시대의 상황은 성경의 다른 책들을 통해서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
제2이사야는 유배 중인 이스라엘에게 하느님의 위로를,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했었습니다. 복역 기간이 끝났다고(40,2), 그러니 바빌론을 떠나 나오라고(52,11) 재촉했습니다. 하느님은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는 분이시며(43,19), 유배지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는 이집트 탈출 때보다 더 놀라운 광경이 벌어지리라고 말했습니다.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한다”(43,18-19). 사람들은 오랜 유배 생활에 지쳐 구원의 약속을 믿기 어려워했고 그냥 바빌론 땅에 눌러앉으려고도 했지만, 적어도 예언자는 그들에게 힘을 내라고 말하며 하느님의 구원 능력을 선포했습니다. 드디어 기원전 538년에 키루스는 칙령을 반포했고 이스라엘은 유배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러나 유배에서 돌아와 보니 상황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성전과 도성이 무너지고, 사회가 깨진 채로 50년이 지났으니, 유배를 갔던 이들도 남아 있던 이들도 모두 살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까이서에는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이 바로 성전을 짓지 못한 이유가 나오지요. 사람들이 “주님의 집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하까 1,2)고 합니다. 가뭄과 기근이 이어졌고(하까 1,9-10) 백성은 자기 살기에 바빴습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은 곡식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임금에게 낼 세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밭과 집과 포도원을 저당 잡히고, 그 빚을 갚지 못해 동족의 종이 됩니다(느헤 5,1-5). 도성을 재건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성벽을 보수하다 보니 방해도 많고 일은 끝이 없어 사람들이 “짐꾼의 힘은 다해 가는데 잔해들은 많기만 하구나. 우리 힘으로는 이 성벽을 쌓지 못하리라”(느헤 4,4)고 탄식합니다. 지치고 기가 꺾였습니다.
“주님의 손이 짧아”(59,1)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조상 탓”이라던가요. 이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능력을 의심합니다. 주님의 손이 짧아서 구해내지 못하시는 것이 아닌가? 주님의 귀가 어두워 듣지 못하시는 것이 아닌가?(59,1 참조)
‘손’은 그 자체로도 힘의 상징입니다. 특히 ‘강한 손’ 또는 ‘강한 손과 뻗은 팔’은 하느님의 능력을 지칭하여 탈출기와(탈출 3,19; 6,1; 13,3 등) 신명기에서(신명 4,34; 5,15; 7,19 등) 자주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손은 이스라엘을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끌어내신 강한 능력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그 손이 혹시 짧아서 이스라엘에게 와 닿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체험으로 알고 있는 하느님이 그들을 파라오의 손에서(신명 7,8) 구해 내신 분이심을 잊은 듯합니다.
주님의 귀가 어두워 듣지 못하신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탄원이 그분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유배 중에 “나의 길은 주님께 숨겨져 있고 나의 권리는 나의 하느님께서 못 보신 채 없어져 버린다”(40,27)고 탄식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내 목소리가 작아서 안 들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귀가 어둡기 때문이라고, 문제는 하느님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이런 생각들이 틀렸다고 선언합니다. “보라, 주님의 손이 짧아 구해 내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고 그분의 귀가 어두워 듣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다”(이사 59,1). 하느님은 그들의 소리를 들으셨고 그들의 처지를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들을 구원할 능력을 지니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문제는 다른 편에 있습니다. 하느님 편이 아니라 인간 편에 있는 것입니다.
“너희 죄악이”(59,2)
예언자의 진단은 명백합니다.
“오히려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느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의 죄가 너희에게서 그분의 얼굴을 가리어 그분께서 듣지 않으신 것이다”(59,2).
이 죄악의 구체적인 내용들은 3-4절에서 열거될 것입니다. ‘손이 피로 더러워졌다’는 것은 폭력 때문이고(6-7절 참조), ‘입술로 말하는 속임수’는 이어지는 문맥에서 알 수 있듯이 특히 법정에서의 거짓 증언을 가리킵니다. 아시다시피 거짓 증언은, 십계명에 포함될 정도로(탈출 20,16) 중대한 문제였지요. 거짓 증언은 무죄한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다니 13장, 수산나의 예). 재판에도 진실과 정의가 없고, 약자의 권리를 지켜 주어야 할 재판이 악을 저지르는 수단이 됩니다.
하느님 앞에서 이러한 악들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그 죄악은 “너희와 하느님 사이를 갈라”(59,2) 놓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갈라놓다’라는 단어는 창세기 1장에서 반복되는 단어이기도 하고(창세 1,4.6.7 등), 사제계 문헌에서 주로 사용되어 성(聖)과 속(俗)의 분리를 지칭합니다(레위 10,10 등). 성과 속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속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느님을 접하면 죽습니다(이사 6,5 참조). 거룩하신 하느님은 죄악을 저지르는 인간에게 머물러 계실 수 없으시어,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하는 성전을 떠나가셨습니다(에제 10장). 하느님의 거룩함을 강조하는 에제키엘서에서,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내 성전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이스라엘 집안이 여기에서 저지르는 이 몹시도 역겨운 짓들이 보이느냐?”(에제 8,6)
이제 답이 보입니다. 하느님의 팔이 짧아서 또는 귀가 멀어서 이스라엘에게 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느님과 담을 쌓은 것입니다. 하느님이 당신 얼굴을 감추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로 하느님의 얼굴을 가리고 있습니다(59,2). 이것이 제3이사야가 ‘왜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느냐’고 묻는 이스라엘에게 주는 응답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이것은 이사야 예언서 제3부의 다른 본문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행한 자연 파괴로 비가 오지 않는다면, 비를 주시라고 기도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아름다운 노래, 아가》, 《굽어 돌아가는 하느님의 길》 등을 썼고, 《약함의 힘》,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하늘의 지혜》 등 여러 책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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