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이사야서 해설: 나의 제자들 앞에서 이 가르침을 봉인하리라(8,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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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5 | 조회수7,996 | 추천수0 | |
[이사야서 해설] “나의 제자들 앞에서 이 가르침을 봉인하리라”(8,16)
책을 왜 쓸까요? 읽으라고 씁니다. 개인적인 일기가 아니라면, 쓴 사람 혼자서만 간직해 두고 보기 위해서 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책을 쓴다는 것은 쓰는 사람 혼자만의 행위가 아니라 읽는 사람과 주고받는 행위입니다. 그럼 책을 왜 읽을까요? 그냥 지나간 시대, 지나간 일에 대한 관심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책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무언가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언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록하여라”(하바 2,2)
본래 예언자들은 책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역사서들에 행적이 전해지는 엘리야, 엘리사 같은 인물은 물론이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가지고 있는 아모스 이후의 예언자들도, 그들 스스로 책을 쓴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책을 남겨 주려는 생각보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 주려 했습니다. 그들은 구체적인 어떤 상황에서, 구체적인 어떤 사람들을 향해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드물게나마, 예언자들이 자신의 말을 기록한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레미야와 하바쿡이 대표적입니다. 예레미야서 36장에서, 하느님은 예레미야에게 “두루마리를 가져와 내가 너에게 이른 말을 모두 적어라”(예레 36,2)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그 말을 받아 적게 합니다. 바룩이 전한 그 내용을 들은 이들은 여호야킴 임금에게까지 두루마리가 전해지게 하지만, 여호야킴은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두루마리를 불태워 버립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다른 두루마리에 다시 그 내용을 적습니다(예레 36,32). 그는 자신이 하느님께 받은 말씀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게 하려고 했습니다. 이제는 그의 곁에서 말을 듣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나중에 그 두루마리를 읽을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바쿡서 2장에서는 하느님이 하바쿡에게 “너는 환시를 기록하여라”(하바 2,2) 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이 예언자에게 환시를 통하여 미래의 구원을 약속하시는데, 그 약속이 지금 당장 실현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는 그 실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 환시가 정해진 때를 기다리고 있기에, 그것이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예언자는 기다려야 하기에, 그 약속이 오고야 말 것이기에(하바 2,3), 하느님은 “누구나 막힘없이 읽어 갈 수 있도록 판에다 분명하게 써라”(하바 2,2)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 일이 이루어질 때, 사람들은 그것이 하느님께서 이미 약속하신 것이었음을 판에 적힌 그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미래의 사람들을 위하여 지금 예언자가 받은 말씀을 보관해 둡니다.
이사야서에서도 이와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나는 이 증언 문서를 묶고 나의 제자들 앞에서 이 가르침을 봉인하리라. 그리고 주님을 기다리리라. 야곱 집안에서 당신 얼굴을 감추신 분 나는 그분을 고대하리라”(8,16-17).
맥락은 비슷합니다. 이사야가 ‘제자들 앞에서’ 가르침을 적고 봉인하는 것은, 그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했지만 그 제자들이 아닌 다른 이들은 이사야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예언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고, 그는 미래를 위한 ‘증언’으로 이 가르침을 적어 둡니다. 예레미야나 하바쿡과 마찬가지로, 그 말씀들이 언젠가 성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봉인을 하면, 지금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은 오히려 그 말씀을 볼 수 없습니다. 이제 그 말씀은 미래 세대를 위한 말씀이 됩니다. 지금은 열어 볼 수 없는 말씀이지만, 언젠가 그 예언이 이루어질 때에는 그가 선포한 것이 하느님의 말씀이었음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 말씀을 간직하며, 주님을 기다립니다. 말씀은 미래 독자들을 위한 것이 됩니다.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40,8)
이렇게 보존된 말씀을 다른 이들이 받아 읽습니다. 제2이사야, 제3이사야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은 말하자면 그들이 물려받은 두루마리를 펼쳐 본 사람이었습니다.
이사야 예언서 제2부(40-55장)는, 하느님 말씀의 효력에 관한 말씀들로 시작하고 끝납니다. 이사야서 40장은 전에 함께 읽었습니다. 예언자는 유배 중의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해야 하지만, 오랜 유배 생활로 희망을 잃은 이들은 그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어떻게 그들을 설득해야 할지 난처해하는 예언자에게 하느님은 말씀하십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40,8). 55장에서도 같은 내용이 반복됩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55,11).
예언서를 후대에 확장시킨 이들은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이 살아 있으며 영원히 서 있다는 것과 그 말씀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봉인되었던 두루마리를 펼치고, 불탄 두루마리를 다시 쓰고, 판에 새겨 둔 글을 확인했습니다. 수백 년이 지났지만, 예언자가 전했던 하느님의 말씀이 지금 그들을 향해서도 선포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옛 두루마리를 자신들의 시대에서 다시 해석했습니다.
이사 1-39장에도 후대에 삽입된 장들이 있다는 점을 앞에서 보았지만(예를 들어 24-27장), 잠시 그 문제는 덮어 두겠습니다. 1-39장이라는 두루마리가 있었다고 할 때, 여기에 40-55장을 덧붙인 소위 제2이사야는 단순히 새로운 본문을 더 첨가하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1-39장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는 과거의 예언자와 대화하며, 이사 1-55장이라는 하나의 책을 만들어 놓습니다. 기원전 8세기에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선포했던 심판의 선고를, 이미 그 심판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다시 읽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그 심판이 구원 역사의 한 부분임을 더 분명하게 알아봅니다. 또한 유배에서 돌아온 후에 제3이사야는, 이사 56-66장을 덧붙임으로써 다시 1-55장 전체를 해석합니다. 이제는 심판을 지나 회복을 향해 가고 있는 그 시대의 관점에서, 이사야서 전체를 하나의 책으로 완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사야서를 처음 읽기 시작하면서, 이사야서에 세 부분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다시 이사야서를 하나의 책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물론, 저자가 한 사람이라고 보는 것은 아닙니다. 오랜 편집 과정을 거친 이 본문들이 ‘하나의 책’을 이루고 있음에 주목하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최종 편집자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이든, 그 최종 편집자는 하나의 관점에서 이 책 전체를 해석했습니다. 그가 있었기에 이사야서는 ‘하나의 책’이 될 수 있었습니다. 기원전 8세기 예언자에서 시작해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첨가된 모든 부분이 그 최종 편집자와 대화하면서 하나의 책으로 엮입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 이루어졌다”(루카 4,21)
그런데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구약의 경계를 넘어 신약에 이르면, 루카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나자렛 회당에 가시어 첫 설교를 하시면서 이사야 예언서의 두루마리를 받아 읽으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루카 4,18). 이사야서 61장의 말씀입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선포하십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예수님은 당신 자신과의 관계에서 이사야서를 해석하십니다. 그 책은 이 순간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지는 구원 약속의 실현을 위한 책이 됩니다.
저자가 쓴 책은 그 책을 읽고 해석하는 독자와 대화하고, 그 대화 속에서 의미를 지니게 된다고 했습니다. 루카 복음은 우리에게 그 대화의 결정적인 순간을 보여 준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 전체를 성경으로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사야서를 완성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읽고 해석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이사야서의 의미가 온전히 밝혀집니다.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아름다운 노래, 아가》, 《굽어 돌아가는 하느님의 길》, 《구약 종주》 등을 썼고, 《약함의 힘》,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하늘의 지혜》 등 여러 책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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