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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마르코 복음서: 신앙의 책 마르코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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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7,552 추천수0

[말씀과 함께 걷는다 - 마르코 복음서] 신앙의 책 마르코 복음

 

 

25년 전쯤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간 적이 있다. 정문에서 왼쪽으로 돌아 메소포타미아관과 그리스관을 지나면 왕의 도서관이 나온다. 베토벤의 친필 악보 등 귀한 문서들이 전시돼 있었는데, 저 구석 어딘가에서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nus. 약자 A 02)을 만났다. 이집트 북부 도시 알렉산드리아의 어느 유다교 회당에서 우연히 발견된 책, 5세기경에 작성된 양피지 사본, 가장 권위있는 헬라어 신약성경 필사본. 예상 밖으로 사본은 초라하게 구석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사본에서 거꾸로 4세기쯤 추적해 가면 마르코 복음이 있다.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복음서가 쓰이게 되었을까? 역사적으로 그럴듯한 추리를 따라가 보자. 우선 시리아 지역 어느 교회에서 기원후 60-70년경 예수님의 전기를 만들어 보자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교회는 적절한 사람을 집필자로 선택했고 그는 우선 자료를 모으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학계에서는 집필자를 두고 흔히 ‘복음서 저자 마르코’라 부른다. 마르코 주변의 많은 교우가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과 행적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기에 일이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심지어 30년경 예루살렘에 살았던 이에게서 예수님을 장례 지낸 무덤이 진짜로 비어 있었다는 증언까지 들었다(마르 16,1-8).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마르코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관한 자료들을 모았고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마르코 복음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과거 현대그룹을 이끌었던 정주영 회장의 일화를 꺼내 보자. 1992년, 당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이 나왔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왕회장》이라는 또 한 권의 책이 나왔다. 요즘 말로 하면 정주영 회장의 온갖 흑역사가 담긴 책이었다. 후일담에 따르면 당시 자서전 대필 작가가 처우에 불만을 품어 따로 보관했던 자료들을 꺼내어 출판한 것이라고 했다. 《왕회장》은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나왔다 하면 현대그룹에서 싹쓸이하는 바람에 서점에 책이 남아나지 않았던 까닭이다.

 

여기서 잠시 생각을 해보자. 대필 작가는 정주영 회장의 자료들을 모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회장과 독대해 과거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들쑥날쑥, 오리무중이라 사건 내용은 생각나지만, 과연 언제 어디서 그 일이 있었는지 도통 종잡을 수 없는 때가 있다. 정 회장 역시 그랬을 것이고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둔 터라 대필 작가는 가능하면 정 회장이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며 얼마나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는지 알려 주는 일화만 골라 자서전에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노라니 정 회장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일화들을 따로 모아 둘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모인 수치스러운 일화들이 《왕회장》이라는 책으로 나올 거라 정 회장은 상상이나 했을까.

 

마르코 역시 예수님에 관련된 자료를 부지런히 모으기는 했으나 정작 그 자료들의 뿌리는 오리무중이었다. 이를테면 하혈하는 부인의 치유 기적 사화(5,25-34)가 정확히 언제 어디서 일어났으며,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4,24)는 말씀을 한 대상과 상황을 분명히 알 수 없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최초로 만들어진 연대와 장소, 대상과 상황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마르코는 이들 자료에 적절한 자리를 잡아 주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마르코는 우선 기적 사화들을 전진 배치했다(1,21-28.29-31.32-34.40-45; 2,1-12). 이를 통해 독자에게 예수님은 놀라운 능력을 지닌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셈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비유들을 따로 모아 비유 집성문을 만들었는데(4,1-20.21-25.26-29.30-32), 여기서는 하느님 나라의 속성들이 드러난다. 이로써 놀라운 기적 능력의 소유자이자 훌륭한 가르침을 베푸는 교사로서 예수님의 모습이 부각된다. 이제 편집 과정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기적 사화의 시작에 예수님이 회당에서 악령 들린 자를 고친 구마(驅魔) 기적 사화(1,21-28)와 베드로의 장모를 고친 치유 기적 사화(1,29-31)가 나란히 나온다. 과연 이 두 이야기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었을까? 열쇠는 29절에 있다. “그들은 회당에서 나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갔다.” 21-28절에서 회당에 머물며 귀신을 쫓아낸 예수가 시몬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려면(1,30-31) 회당에서 나와 곧바로 시몬의 집으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같은 예는 마르코 복음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마르코 복음의 전기적, 공간적 정보는 복음서 저자의 편집 작업이다.

 

알렉산드리아 사본을 포함한 고대 사본들을 보면 ‘마르코 복음’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지 않다. 그러니 원래 복음서를 집필한 사람이 ‘마르코’라는 이름을 가졌는지도 전혀 모를 일이다. 마르코라는 이름은 4세기에 활동했던 교회 역사가 에우세비우스가 쓴 《교회사》와 리옹의 이레네우스 교부가 쓴 《이단 논박》에서 마르코가 베드로의 통역관이라고 한 데서 기인한다. 비록 본인이 복음서를 집필했다는 말이 나오진 않지만 신약성경에 무려 10회나 등장하는 요한 마르코가 바로 그 사람(사도 12,12.25; 13,5.13; 15,37-39; 필레 24; 콜로 4,10; 2티모 4,11)이라는 게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이다. ‘장님 문고리 잡는다’는 표현은 바로 이런 때 하는 말이다.

 

비록 복음서 저자의 이름과 전력은 모른다 할지라도 그의 됨됨이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마르코는 예수님의 일생을 엮으면서 그리스도교 역사상 처음으로 복음서라는 전기(傳記) 양식을 도입했다. 그는 교회를 통해 내려온 자료들(통틀어 ‘교회 전승’이라 부름)을 수집해 시간, 장소 등의 맥락을 부여함으로써 각각의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마르코는 교회 전승들을 동시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에 도움이 되도록 조종하여 예수님의 일생을 정리했고, 이 작업을 통해 복음서가 탄생했다. 예수님에 관해 그가 갖고 있던 시각이 바로 복음서의 편집 원칙이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우리는 흔히 복음서의 역사의식(사관)이라 부르고 마르코 복음의 역사의식은 두말할 나위없이 ‘신앙’이다. 그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위대함을 부각시키며 그분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만 드러내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자신의 이름이나 지위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보나 마나 1세기 그리스도교의 저명한 지도자였을 텐데 말이다.

 

우리는 앞으로 1년 동안 마르코 복음을 벗 삼아 신앙 여행을 할 것이다. 더불어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이 예수님에게 품었던 믿음과 애정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눈먼 이를 보게 하고 귀먹은 이를 듣게 하고 더러운 영을 바다에 빠뜨리고 하느님이 누구인지 알려 주고, 결국에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죽음의 힘을 떨쳐 내고 부활한 분. 마르코 복음은 예수님의 전기이자 놀라운 신앙의 교과서이다.

 

* 박태식 신부는 대한성공회 소속으로 월간 <에세이>로 등단, 월간 <춤>을 통해 영화평론가로 입문했고, 현재 서강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성공회대학교에 출강하며, 대한성공회 장애인 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으로 있다.

 

[성서와 함께, 2017년 1월호(통권 490호), 박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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