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마르코 복음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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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5 | 조회수7,364 | 추천수0 | |
[말씀과 함께 걷는다 - 마르코 복음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본디 십자가형이란 예수님 당시 로마 세계에서 아주 끔찍한 일로 취급받았다. 그래서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십자가 처형이란(단지 생명의 박탈일 뿐 아니라) 눈과 귀와 생각마저도 말살시키는” 것으로 간주했으며, 점잖은 사람이라면 입에 올리기조차 꺼렸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던 1세기 교회 유랑선교사들의 고민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메시아이며 하느님의 아들로 받들어진 그분은 전혀 죄가 없었다고 하는데, 왜 그런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을까?
마르코 복음에는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보도를 담은 이른바 ‘빈 무덤 사화’(16,1-8)가 실려있다. 사실 새벽에 무덤을 찾은 여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예견하고 간 것은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장례 풍습에 따라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러 갔다. 사흘쯤 지나면 시신이 썩기 시작해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시신이 있어야 할 무덤은 비어 있었다. 그리고 무덤 안에 있던 흰옷을 입은 젊은이가 전해 준 말인즉슨, 예수님이 이곳에 없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십자가에 매달려 험한 꼴을 보고 돌아가신 것이 불과 사흘 전인데,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창에 찔린 것까지 보았는데, 시신을 돌무덤에 안치하고 큰 돌덩이로 입구까지 튼튼하게 막아 놓았는데, 무덤이 비어 있다니….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습관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이지만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에게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마르코는 분명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복음서를 끝낼 생각을 하진 않았다. 이는 자신의 신앙을 바르게 반영하지 못할뿐 아니라, 1세기 그리스도 교회의 전반적인 신앙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시의 ‘부활 신앙’을 그럴듯한 형태로 복음서 내에 어떻게 구현시킬 수 있을까? 그는 우선 빈 무덤 사화에 집중했다. 이 사화가 예수님 부활에 대한 원초적인 증언으로서의 가치가 있어서였다. 무덤이 비어 있으려면 일단 시신이 사라져야 하고, 시신이 사라졌다면 시신의 행방을 물어야 하며,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물어야 했다.
상황을 좀 더 그럴듯하게 그려 보겠다. 예수님은 기원후 30년경 예루살렘 근교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골고타는 원래 사형 터로 유명한 곳이라 그날도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처형 장면을 목격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이 처리되는 과정도 더불어 지켜보았다. 어찌 됐든 예수님은 당시 이스라엘 전역에서 유명세를 몹시 탔던 분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사흘이 지나자 갑자기 시신이 없어졌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실제로 같은 소문이 있었으리라는 가능성은 마태오 복음에 상세히 나온다.
수석 사제들은 원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 이 소식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그를 설득하여 너희가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해 주겠다.”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킨 대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 말이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마태 28,12-15).
복음서 저자 마르코는 예수님의 시신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말았다는 사실에서 무엇인가 막강한 기운을 느꼈음에 틀림없다. 빈 무덤이란, 설혹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였기 때문이다.
마르코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미 갈릴래아로 가셨고 여인들을 통해 제자들에게 자신을 만나러 갈릴래아로 오라는 특명을 내린다. 그렇다면 왜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이 아니라 굳이 갈릴래아로 가셨을까? 이 부분에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마르코 복음의 해석이 그 찬란한 빛을 발한다.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 이렇게 일러라.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마르 16,6-7).
갈릴래아가 어떤 곳인가? 바로 ‘요한이 잡힌 후’(마르 1,14)에 예수님이 독자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신 곳이 아닌가? 거기에서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고 마귀를 내쫓고 비유를 설파하고 제자들과 생활공동체를 이끌어 갔으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다. ‘예수’라는 이름을 내걸고 활동을 처음 시작한 곳이 바로 갈릴래아다. 따라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갈릴래아행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표시로 볼 수 있다.
마르코에게는, 십자가라는 모순 속에 숨어 있는 하느님의 진정한 뜻을 독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할 사명이 있었다. 예수님의 생애는 결코 실패로 끝나지 않았으며 구원사적으로 결정적 의미가 있는 삶이었음을 밝혀야 했다. 빈 무덤 사화에 등장하는 흰옷 입은 젊은이의 말 한마디로 예수님의 부활이 분명해졌으며, 십자가의 처참했던 죽음도 그 무차별적인 권위를 빼앗기고 말았다. 죽음의 언어가 생명의 언어로 탈바꿈했으며 이로써 예수님의 복음 역시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 것이다.
루카 복음과 그 후속편인 사도행전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꼼짝 말고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고 명령하신다. 성령이 내려와 장차 교회가 탄생할 때를 내다본 포석이다(루카 24,49; 사도 1,4). 그에 비해 마르코가 부활을 바라보는 시각은 무척 다르다. 이를 두고 성경의 모순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제자들이 일단 갈릴래아로 가서 예수님과 하직인사를 한 후에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 교회를 창립했다든가, 교회가 예루살렘에서 탄생한 후에 제자들이 갈릴래아 현지 교회 창립을 도우러 몰려갔다든가 하는 식의 주장을 내놓는다. 그러나 죄다 부질없는 시도일 뿐이다.
성서학을 공부하다 보면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생각이 갑자기 깨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선입견이 사라지는 때인데, 내게는 성경에 인간의 오류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가 그러한 첫 경험이었다. 그러나 빈 무덤 사화를 읽으면서 그 선입견은 다시 한 번 깨졌다. 복음서 저자 마르코의 편집 작업을 통해 예수 사건이 갖는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난 까닭이다. 이를 통해 마르 16,1-8, 아니 성경 자체가 성령과 인간의 합작품임이 여실히 드러난다.
마르코는 십자가 사건의 기존 이미지를 깨뜨리고 그 의미를 전복시켰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예수님의 삶과 그분이 전한 복음은 결코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
* 박태식 신부는 대한성공회 소속으로 월간 <에세이>로 등단, 월간 <춤>을 통해 영화평론가로 입문했고, 현재 서강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성공회대학교에 출강하며, 대한성공회 장애인 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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