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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탈출기와 거울 보기3: 구원 계획이 무르익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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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7,298 추천수0

탈출기와 거울 보기 (3) 구원 계획이 무르익는 시간

 

 

지난달에 살펴본 바와 같이 생명을 사랑하는 연약한 여인들의 긴밀한 협력을 통하여 살아남은 아기 모세는 파라오의 궁정에서 자라나 성년기를 맞게 됩니다. 탈출 2,11-25은 모세의 성년기를 다루는 본문입니다.

 

 

폭력을 폭력으로 응징한 모세

 

이 대목(2,11-25)을 세 단락으로 나눌 경우, 첫 단락(2,11-15ㄱ)은 이집트인의 폭력에 시달리는 히브리인의 현실 앞에서 모세가 보인 반응을 소개합니다. 그는 자기 동포의 강제 노동의 모습과 이집트인 십장의 횡포를 목격합니다. 모세는 이집트인 십장을 때려죽이고 모래 속에 묻어 버립니다. 그다음 날에는 히브리 사람 둘의 싸움을 목격하고 그것을 중재하려다 자신의 살인 행위가 드러난 것을 알고 두려워합니다. 이 일이 파라오에게 알려져 죽을 위험에 처하자 모세는 미디안 땅으로 피신합니다.

 

이 짧은 단락은 성년이 된 모세가 자신의 신원을 깨닫고, 자기 동족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을 인식했음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는 히브리인을 억압하는 폭력 앞에서 폭력으로 대응하였고, 그것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모세는 폭력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을 겁니다.

 

이 이야기는 폭력을 폭력으로 응징하는 것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보여 줍니다. 그것은 바로 폭력의 끝없는 악순환입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은 무엇일까요? 폭력을 응징하는 올바른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요? 모세는 긴 세월에 걸쳐 그것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하느님의 보살핌

 

둘째 단락(2,15ㄴ-22)은 미디안 땅으로 도주한 모세의 삶을 소개합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모세가 그곳에 정착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안배하셨습니다. 미디안 땅에 도착한 모세는 어떤 우물가에 앉아 있다가 양들에게 물을 먹이려고 그곳에 왔던 미디안 사제 르우엘의 일곱 딸을 만나게 됩니다. 다른 목자들이 이들을 방해하자 모세는 이 여인들이 양들에게 물을 먹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이를 알게 된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의 초대를 받아 그들의 집으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르우엘의 딸 치포라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정착합니다.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하느님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모세의 삶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이 그분의 존재는 철저하게 배경에 가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무사하고 안전하게 미디안 땅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느님은 모든 것을 배려하셨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미디안으로 도주하는 동안 어떤 위협도 받지 않은 채 그 긴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미디안이라는 낯선 땅에서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많은 부분도 그럴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뚜렷한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선물이나 도움을 주시는 순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오늘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하느님은 수많은 도움과 배려를 베푸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만났던 숱한 위기의 순간에 만약 하느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때로는 위기인 줄도 모르고 지나왔고, 그저 ‘다행이었다’는 말로 넘긴 수많은 일도 사실은 하느님의 도움과 보호, 보살핌이었음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큰 감사를 그분께 드려야 할까요? 지금 여기서 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느님의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 삶은 하느님에 대한 감사로 가득 차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루를 정리하면서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릴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길을 배우며 구원 계획이 무르익는 시간

 

탈출기 2장의 마지막 단락(2,23-25)은 모세가 미디안에 정착하여 안정되게 사는 동안 이집트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은 어떠하였는지를 소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억압하던 파라오가 죽었어도 그들의 고통과 고역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고통으로 탄식하며 하느님께 부르짖었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신음 소리와 도움을 청하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들의 상황을 보셨고, 그들의 처지를 아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맺으신 계약을 기억하신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분명히 무엇인가를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응답이 오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지나야 했습니다.’ 사도 7,23에 따르면 미디안으로 도망갈 때 모세의 나이는 40세였습니다. 탈출 7,7에 의하면 모세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미디안 땅을 떠난 때가 80세이므로, 거의 40년 동안 모세는 미디안 땅에 머문 셈이 됩니다. 이 40년 동안 모세가 무엇을 생각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성경은 침묵합니다. 성경이 침묵하는 40년은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느님의 철저한 부재를 의미할까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시기일까요? 만일 그렇다면 그 긴 세월은 허무하고 무의미한 시간일 것입니다.

 

그러나 곧 알게 되겠지만, 이 40년은 하느님의 부재도, 침묵도 아닌 시간이었음이 드러납니다. 이 40년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무르익는 시간이었고, 그것이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나기 위해 꼴을 갖추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40년은 폭력을 폭력으로 응징하는 방법밖에 몰랐던 모세에게 다른 길을 보여 주는 시간이었을 것이고, 인간의 길이 아닌 하느님의 길을 배우게 하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모세가 하느님의 도구로 파라오 앞에 나설 수 있도록 그의 내적인 힘을 키우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굳건히 믿는 이들은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을 희망으로 견딜 줄 압니다.

 

* 김영선 수녀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소속으로, 미국 보스톤 칼리지에서 구약성경을 공부하였으며,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구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3월호(통권 480호), 김영선 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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