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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탈출기와 거울 보기7: 세상의 주인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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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7,478 추천수0

탈출기와 거울 보기 (7) 세상의 주인은 누구인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모세는 아론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과 파라오를 만나 하느님의 뜻을 전달합니다.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을 전달받은 순간부터 그 뜻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 파라오에게 이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던 파라오가 하느님을 알아보고, 그분의 권위에 굴복하게 되는 과정이 열 가지 재앙 이야기(7-12장) 안에 담겨 있습니다. 이 열 가지 재앙 사화는 두 쪽으로 된 거울처럼 하느님 앞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서로 다른 두 가지 태도를 보여 줍니다. 한쪽이 모세라는 거울이라면 다른 한쪽은 파라오라는 거울입니다. 이달에는 파라오라는 거울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고, 다음달에는 모세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파라오의 완고함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에게 가서 “내 백성을 내보내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위하여 축제를 지내게 하여라”(5,1)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자, 파라오는 이렇게 응답합니다. “그 주님이 누구이기에 그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내보내라는 것이냐? 나는 그 주님을 알지도 못할뿐더러, 이스라엘을 내보내지도 않겠다”(5,2). 인생에 대한 파라오의 자세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말입니다. 그는 자신을 세상의 주인이라고 여기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삶도 자신이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파라오는 자기 삶의 주인이고 이스라엘의 주인일까요?

 

파라오는 늘 하던 방식대로 모세와 아론에게 응수합니다. 강제와 억압이 유용한 통제 수단이라고 믿는 그는 이스라엘을 더욱 모질게 박해합니다. 벽돌 제작에 필요한 짚을 제공하지 않은 채 동일한 벽돌 생산량을 요구하는 파라오의 억압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모세와 아론의 영도력을 약화시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너는 내가 파라오에게 어떻게 하는지 보게 될 것이다. 정녕 그는 강한 손에 밀려 그들을 내보낼 것이다”(6,1). 이어지는 열 가지 재앙 사화는 주님의 강한 손이 파라오를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파라오는 하느님을 알아보는 데 굼뜨고, 하느님은 그런 파라오가 당신을 알아보도록 이끄시는 데 한결같으십니다. 그것이 열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바입니다.

 

 

재앙을 통해 하느님을 알아보게 되는 파라오

 

처음 나타나는 피와 개구리, 모기 등 세 가지 재앙은 하느님의 종인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의 마술사들보다 훨씬 뛰어남을 보여 줍니다. 세 번째 재앙이 일어났을 때 이집트의 마술사들은 이 재앙이 “하느님의 손가락이 하신 일”(8,15)임을 알아채고 파라오에게 알립니다. 그러나 파라오는 꿈쩍하지도 않습니다. 이어서 등에와 가축병, 종기의 재앙이 일어나는데, 이것들은 이집트인들에게만 일어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당신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느님의 분명한 의지가 드러납니다. 넷째 재앙이 일어났을 때 처음으로 파라오는 타협하기 시작합니다. “이 땅 안에서 너희 하느님께 제사를 드려라”(8,21). 모세는 이스라엘의 제사 방식을 혐오하는 이집트인들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파라오는 광야로 가는 것은 허락하되 멀리 가지 말라는 조건을 붙입니다. 하지만 재앙이 사라지면 파라오의 마음은 다시 완고해집니다. 다섯째 재앙으로 이집트의 온 가축이 흑사병에 걸려 죽었는데, 이스라엘인들의 가축은 모두 무사하였습니다. 파라오는 이 사실을 확인하고도 주님 앞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여섯째 재앙으로 파라오의 마술사들은 완전히 무력해집니다. 그들마저 종기에 걸려 꼼짝도 못하게 되었지만, 파라오는 여전히 완고합니다.

 

이어서 유례없던 우박과 메뚜기, 어둠의 재앙이 발생합니다. 이 재앙들은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하느님의 놀라운 권능을 드러냅니다. 파라오는 마침내 잘못을 인정하고 타협을 제안합니다. “장정들이나 가서 주님께 예배드려라”(10,11). “다만 너희 양 떼와 소 떼만은 남겨 두어라. 어린것들은 너희와 함께 가도 좋다”(10,24). 파라오의 신하들은 파라오가 졌음을 알아차리고 그에게 포기할 것을 권유합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께 온전히 굴복하기 위해서는 그의 맏아들이 죽는 열 번째 재앙이 일어나야만 했습니다. 그제야 파라오는 다급해집니다. 한밤중에 모세와 아론을 불러 “너희가 말하던 대로, 가서 주님께 예배드려라”(12,31)고 합니다. 비로소 파라오는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계신 하느님을 알아보게 된 것입니다. 주님 앞에 자신의 권위를 온전히 내려놓을 만큼 겸손해진 것은 아니지만, 그는 모세와 아론이 처음 만났던 그 파라오는 더 이상 아닙니다. 자신을 능가하는 힘이 세상에 존재하며,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완고한 파라오의 이야기는 우리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나도 파라오처럼 마음이 굳어져 일상에서 하느님의 표징을 읽어 내지 못하고 있지 않나? 기존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려는 고집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교만이 나를 마비시키고 있지 않나? 나는 지금 어디쯤 있을까? 하느님을 모른다고 고백하던 그 파라오인가? 아니면 전부가 되시려는 하느님 앞에서 적당히 타협을 시도하는 파라오인가? 아니면 하느님 앞에 온전히 굴복하고 자신의 왕관을 그분 앞에 내려놓은 겸손한 파라오인가? 이 거울 앞에 서려면 용기가 필요하지만, 나의 진실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진실은 참으로 나를 자유롭게 합니다.

 

* 김영선 수녀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소속으로, 미국 보스톤 칼리지에서 구약성경을 공부하였으며,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구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7월호(통권 484호), 김영선 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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