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탈출기와 거울 보기13: 마싸와 므리바의 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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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5 | 조회수11,828 | 추천수0 | |
탈출기와 거울 보기 (13) 마싸와 므리바의 물
말씀의 거울은 참 신비합니다. 거울이 오래되면 반사 기능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말씀의 거울은 전혀 낡지 않습니다.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점점 더 세밀하게 우리의 모습을 되비춥니다. 이달에 우리가 읽을 말씀은 탈출 17,1-7입니다. 이 짧은 말씀이 얼마나 우리의 모습을 속속들이 드러내는지를 깨닫게 되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의 말씀에 따라 신 광야를 떠나 르피딤이라는 곳에 진을 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오아시스가 없었습니다. 가지고 있던 물이 다 떨어져서 목이 말라 있었던 백성에게는 가혹한 시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달려들어 물을 내놓으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왜 그들을 이집트에서 데려 내왔느냐고 모세에게 불평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모든 기적을 망각하고 또 이렇게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누구도 쉽게 비난할 수 없습니다. 마실 물 이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그들의 목마름이 다급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죽음의 위기에 처했던 것입니다. 이 짧은 단락의 마지막 구절인 7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이 위기 앞에서 하느님의 존재마저 의심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
“이 백성에게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17,4)
모세는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백성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어째서 나와 시비하려 하느냐?”(17,2) 모세의 이 말은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합니다. 모세의 말처럼 왜 백성은 모든 것을 모세에게 기대합니까? 과연 모세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존재입니까? 우리는 누구에게 모든 기대를 걸고 있습니까? 이 기대는 합당한 것일까요? 누군가에게 건 나의 기대가 혹시 지나친 것은 아닐까요? 상대방이 채워 줄 수도 없는 기대를 그에게 잘못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그러므로 아주 가끔은 우리 자신의 기대에 대하여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을 향해 걷는 여정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존재이고, 또 그럴 수 있는 존재입니까? 그들이 겪는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존재입니까? 내가 기대를 걸고 있는 누군가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존재입니까? 나의 행복은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 우리는 자신의 불행에 관한 책임을 다른 이에게 전가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자신에게 모든 기대를 걸고 있을 때 모세 역시 유혹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곧 전능자가 되고 싶은 유혹, 백성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싶은 유혹 말입니다. 이런 유혹을 느낄 때 우리는 자신의 무능함이나 무력함을 견디기 어려워집니다. 혹은 헛된 약속으로 사람들을 속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될 수 있는 존재라고 착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끝까지 하느님께 의탁하고, 하느님께로 향합니다. “이 백성에게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17,4) 모세의 이러한 모습은 백성이 누구를 향해야 하고, 누구를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배우게 합니다. 부모로서, 교사로서, 지도자로서의 우리 모습은 어떠합니까? 모세처럼 자녀가 하느님을 향하도록 안내합니까? 그들을 살게 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이끌어 줍니까? 혹은 모두가 나만 우러러보기를 바라고, 자신이 무엇이나 된 것처럼 보이려고 애씁니까?
“그대로 하였다”(17,6)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의 원로 몇 사람을 데리고 가서 주님께서 서 계신 호렙의 바위를 지팡이로 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면 그 바위에서 물이 쏟아져 나와 백성이 마실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의 원로들 앞에서 ‘그대로 하였습니다’(17,6). 바위를 지팡이로 치라는 하느님의 명령 앞에서 모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물이 나오지 않으면 백성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염려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명령에 단순히 순종합니다. 이것이 쉬운 일일까요? 모세의 모습에서 진정한 순종의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만약 모세가 자신의 영광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이 명령을 따르는 일에 주저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온전히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것, 그분의 의지에 따라 사는 것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그 말씀에 그대로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순종은 자신을 잊은 종에게만 가능합니다.
모세의 순종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께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들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인식하도록 안내해 주었습니다. 르피딤의 바위에서 솟아 나오는 물로 그들의 타는 목을 축이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목마름을 채워 주시는 하느님, 그들의 물이 되어 주시는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첫 번째 광야 여정 중에 이스라엘은 그들을 살려 주시는 하느님을 다시 만난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 사실을 망각하지 않도록 그곳의 이름을 ‘시험과 시비’를 의미하는 ‘마싸와 므리바’로 부릅니다.
마싸와 므리바가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도 하느님의 길은 열립니다. 하느님이 세상의 주인이심을 알고 순종하는 이들의 굳건한 선택을 통하여, 하느님의 물길은 바위를 뚫고 터져 나옵니다.
* 김영선 수녀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소속으로, 미국 보스톤 칼리지에서 구약성경을 공부하였으며,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구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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