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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탈출기와 거울 보기14: 주님은 나의 깃발(야훼 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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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8,319 추천수0

탈출기와 거울 보기 (14) 주님은 나의 깃발(야훼 니씨)

 

 

이스라엘 백성의 첫 번째 광야 여정은 광야 삶의 고단함을 잘 보여 줍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이 광야를 달구고, 밤이면 칠흑같은 어둠과 함께 급격히 식어 버린 대지가 한기를 뿜어냅니다. 광야의 혹독한 기후는 식물이나 동물에게도 가혹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문에 광야를 지나는 이들은 목마름과 굶주림을 피할 수 없습니다.

 

 

구원의 사다리인 광야 여정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도 광야로 들어선 첫 순간부터 시련에 부딪쳤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여정은 광야가 그저 고통스러운 장소이기만 한 것이 아님을 잘 보여 줍니다. 그들은 광야의 곤란 가운데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하시는 하느님, 물과 음식이 되어 주시는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또 광야에서 자신들의 부끄러운 민낯을 마주하였고, 약속의 땅을 향한 그들의 결단이 얼마나 허약한 것이었는지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광야는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발견하는 장소입니다. 이 두 가지 앎이 결여된다면 진정한 신앙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광야는 참된 신앙에 이르기 위해 누구나 거쳐야만 하는 장소요 시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성숙한 신앙에 이르기 위하여 광야를 거쳐야 했다면 오늘 우리가 거쳐야만 하는 광야란 무엇일까요? 오늘 내가 경험하고 있는 시련과 고통이 혹시 그 광야는 아닐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걸었던 광야 여정은 오늘 내가 겪고 있는 시련과 아픔, 고통과 쓰라림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피하고만 싶고,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시련이나 아픔이 하느님의 구원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나를 마주하게 하고, 그 가난한 나를 당신의 부요로 품어 주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구원의 사다리가 됩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느님

 

이달에 우리 거울이 되어 줄 탈출 17,8-16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경험한 새로운 시련을 소개합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시련이 굶주림과 목마름이었다면, 이번에 이스라엘 백성이 겪는 고통은 적의 공격으로 인한 생존의 위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의 고된 행군에 지쳐 르피딤이라는 곳에 진을 치고 있을 때, 곧 그들이 무방비 상태였을 때, 아말렉족이 그들을 공격하였습니다. 아말렉족은 가나안 남부 지역에 해당하는 네겝이라는 광야를 차지하고 활동하던 유목민들인데,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존재를 위협하는 것으로 여겼던 모양입니다. 과연 이스라엘 백성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였을까요? 그들은 무장을 갖추지도 못했고, 그들 대다수는 어린이와 노인, 여자들이었습니다.

 

성경 저자는 이 전쟁에서의 승리가 인간의 힘에 달린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우선 모세는 여호수아라는 젊은이를 뽑아 다른 장정들과 함께 아말렉족과 싸우게 합니다. 모세 자신은 하느님의 지팡이를 들고 아론과 후르와 함께 언덕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모세가 팔을 들고 있으면 전세는 이스라엘에 유리해지고, 지쳐서 팔을 내리면 다시 전세는 불리해집니다. 그리하여 아론과 후르가 모세의 팔을 해 질 때까지 받쳐 주었고, 마침내 이스라엘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강조하는 바는 이 전쟁의 승리가 여호수아의 용맹함이나 훌륭한 지도력 때문도 아니요, 모세의 공로 때문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승리는 전적으로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그들을 위험에서 보호해 주고 지켜 주시는 하느님에 대한 신뢰로 인한 것입니다. 이를 분명하게 알고 있던 모세는 자신이 팔을 쳐들고 있었던 그 자리에 제단을 쌓고, “야훼 니씨”라고 불렀습니다. ‘주님은 나의 깃발’이라는 뜻을 지닌 이 말은 전쟁의 승리가 오직 주님으로부터 왔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위기 가운데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이 크게 드러나셨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드러나심은 모세와 여호수아, 아론과 후르의 겸손이라는 거울을 통하여 가능했습니다. 이들 중 그 누구도 이 기적적인 사건에서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느님 덕분에 그들이 무사할 수 있었음을 정직하게 고백하였습니다. 그들의 겸손으로써 이 모든 사건을 주관하신 하느님이 크게 드러나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위기 속에서 그들과 함께하시는 구원의 하느님을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었습니다.

 

르피딤이라는 광야에서 야훼 니씨를 고백하였던 모세와 여호수아, 아론과 후르의 거울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봅시다. 하느님의 일을 자신의 업적으로 돌리고, 하느님의 것을 자신의 것인양 자랑하는 내 모습이 거기에 있지는 않나요?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두고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고 말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이런 고백을 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참으로 겸손하다면 세상의 모든 일, 우리 주변의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이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기적임을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일도, 오늘 무사히 귀가하게 된 일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을 되풀이할 수 있는 것도 다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일임을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에게 되물어야 합니다. 지금 나는 어느 깃발 아래 서 있는가? 나의 이름도, 그 누구의 이름도 아닌 주님의 이름이 적힌 깃발 아래 서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김영선 수녀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소속으로, 미국 보스톤 칼리지에서 구약성경을 공부하였으며,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구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7년 2월호(통권 491호), 김영선 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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