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탈출기와 거울 보기15: 짐을 나누어 져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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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5 | 조회수7,137 | 추천수0 | |
탈출기와 거울 보기 (15) “짐을 나누어 져라!”
18장은 첫 번째 광야 여정 중에 발생한 마지막 사건, 곧 모세의 장인 이트로의 방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미디안의 사제이며, 모세의 장인인 ‘이트로’의 이름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가 목격한 하느님의 현현(懸現)을 소개할 때(3,1) 처음 언급되었습니다. 모세는 이 사건 이후 친척들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이집트로 돌아가겠다고 장인에게 말합니다(4,18).
이트로는 모세가 편히 떠날 수 있게 해 주었고, 모세는 아내와 아들들을 데리고 이집트 땅으로 돌아갔습니다(4,20). 이렇게 서로 헤어진 후 이트로가 다시 모세를 찾아옵니다(18,5). 친정에 가 있던 모세의 아내 치포라와 그의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제르를 데리고 모세에게 온 것입니다. 모세가 언제 자신의 아내와 아들들을 이트로에게 돌려보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트로가 치포라와 손자들을 모세에게 데려오게 된 계기는 그가 하느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모든 일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18,1). 모세는 장인을 맞아들이고, 그간에 일어났던 일들을 그에게 직접 전해 줍니다. 이트로는 모세로부터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파라오와 이집트에서 하신 일들과 그들이 광야 여정 중에 겪었던 고생, 그리고 주님께서 베푸신 도움에 대해 들은 후 ‘주님께서 하신 이 모든 고맙고 좋은 일들’에 대해 기뻐하며, 이토록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또, 주님이 그 어떤 신들보다 더 위대하신 분임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어서 이트로는 하느님께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바치고, 하느님 앞에서 아론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모든 원로와 함께 친교 제물을 나누어 먹습니다. 이는 이트로가 계약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미디안의 사제인 이트로가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발견하고 그분 앞에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트로는 모세에게 새로운 리더십에 대해 조언해 줍니다(18,13-26).
18,13-26은 이스라엘의 사회 조직이 확립된 배경을 소개하는데, 민수 11,11-20과 신명 1,9-18을 함께 비교하며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동일한 사회 조직의 확립 과정을 설명하는 서로 다른 세 가지 이야기입니다. 먼저 민수기에서는, 백성에 관한 무거운 책임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던 모세가 이를 주님께 하소연하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원로 일흔 명을 뽑아 만남의 천막 주위에 둘러서게 하고, 모세의 영의 일부를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민수 11,11-30). 즉 모세의 짐을 나누어질 원로들의 선정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이뤄졌습니다. 한편 신명기에서는, 주님의 강복으로 백성의 수가 늘어나자 그들에 관한 책임을 혼자 질 수 없다고 생각한 모세가 각 지파에서 ‘지혜롭고 슬기로우며 지식을 갖춘 사람들’을 뽑아 각 지파의 천인대장, 백인대장, 오십인대장, 십인대장과 관리로 삼습니다(신명 1,9-18). 즉 이스라엘 사회 조직의 확립은 모세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탈출기에서는, 이스라엘 사회 조직 정비가 이트로의 제안에 따른 것으로 나타납니다(18,13-26). 모세가 일하는 모습을 온종일 조용히 지켜본 이트로는 모세가 행하는 리더십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모세는 주님의 뜻을 물으러 온 백성을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일일이 만나고, 하느님의 규정과 지시들을 가르치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이트로는 그런 리더십은 지도자도 백성도 모두 지치게 할 것이라며, 새로운 리더십 모델을 제안합니다. 이트로는 모세에게 ‘짐을 나누어 지라’고 말합니다. 백성의 대리자인 모세는 백성의 일을 하느님께 말씀드리고 그들에게 하느님의 뜻과 규정을 가르치는 일을 맡고, 백성의 송사는 대표들을 선출해 그들이 맡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뽑아 그들이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들이 다룰 수 없는 큰 송사만을 모세에게 가져오게 하라고 충고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모세도 지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고, 백성도 만족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장인의 충고를 받아들여 그대로 실천합니다.
이 사건 역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훌륭한 거울이 됩니다. 이트로의 지혜도, 그의 충고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는 모세의 겸손도 거울로 삼을 만합니다만, 이트로가 제시한 리더십의 형태 또한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 볼 좋은 거울이 됩니다. 모세만큼은 아니라도 우리 역시 각자가 속한 삶의 영역에서 크고 작은 책임을 지고 삽니다. 혹시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태도로 다른 이들이 설 자리를 내주지 않고 독불장군처럼 권위를 행사하는 것은 아닌지,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나누어 지게 해 놓고도 세세한 일까지 모두 참견하면서 협력을 받는 대신 지배하려 들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을 비추어 봅시다. 이트로는 모세와 작별하고 제고장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더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지혜로 모세를 구속하는 대신 뒤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갈 길을 훌훌 떠나는 이트로의 뒷모습도 아름답습니다. 우리의 뒷모습도 이렇게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 김영선 수녀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소속으로, 미국 보스톤 칼리지에서 구약성경을 공부하였으며,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구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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