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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탈출기와 거울 보기17: 계약 체결을 위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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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7,582 추천수0

탈출기와 거울 보기 (17) 계약 체결을 위한 준비

 

 

시나이 산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기 위한 준비에 들어갑니다(19,9-15). 하느님의 신현을 맞기 위해 그들은 사흘 동안 자신을 성결하게 하고 옷을 빨아 입고 성적 금욕을 실천합니다. 또한 절대적으로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시나이산에 임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침범하지 않도록 산 근처에 접근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이토록 엄정한 준비가 필요한 이유는 하느님의 거룩하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나이 계약을 통해 그들의 신원이 변화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일단 계약을 맺고 나면 그들은 계약의 백성이 됩니다. 계약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백성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계약을 준비하면서 이 계약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준비를 시작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아침, 그들은 하느님의 신현을 목격하였습니다(19,16-24). 하느님의 모습을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우렛소리와 함께 번개가 치는 가운데 짙은 구름과 연기로 뒤덮인 산 위에 불의 모습으로 오신 하느님만을 보았을 따름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실 만큼 그들과 가까운 분이시지만 여전히 그들이 다 파악할 수 없는 신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하느님의 모습에 큰 두려움을 느낍니다. 하느님께서 크고 두려운 모습으로 나타나신 목적은 그들이 하느님을 경외하여 죄짓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20,20). 시나이 산에 나타나신 하느님은 직접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이 맺게 될 계약의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십계명(20,1-17)입니다.

 

시나이 계약은 조건적인 계약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계약의 조건을 준수할 때만 그 효력이 유지됩니다. 이 계약의 효력이란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곧 하느님은 전적으로 이스라엘 편이 될 것이며,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오직 하느님께만 충성을 바치는 백성이 되어 그들이 하느님의 것임을 세상에 드러내게 됩니다. 십계명 뒤에 나오는 계약 법전(20,22-23,33)은 이 계약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되어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법을 준수한다면 하느님과의 계약은 언제까지나 유효합니다.

 

십계명은 ‘열 가지 말씀’을 뜻하며, 이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는 것인지를 명약관화하게 제시합니다. 이번 달에는 십계명의 첫 세 계명을 살펴보겠습니다. 십계명의 첫 세 계명은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친밀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조건을 알려 줍니다. 먼저, 이스라엘은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흠숭해야 합니다(20,2-6). 이 말은 그 어떤 것도 하느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거나 하느님보다 더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느님이 아닌 어떤 것을 두려워한다면 그 두려움의 대상을 하느님보다 더 우위에 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며 사는지, 누구의 눈치를 보며 사는지를 잘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 한 분만을 섬긴다는 말은 또한 그 어느 것도 하느님 자리에 두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으리라 여기며 애착하는 대상이 하느님인 사람은 정녕 행복합니다. 그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을 차고 넘치도록 누릴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명하신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천 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푸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당신을 미워하는 이들에게는 삼 대, 사 대에 이르기까지 그 죄를 물으신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 말씀에 걸려 넘어집니다. 하느님은 참 잔인한 분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 대와 삼사 대는 비교가 안 되는 숫자입니다. 그분의 자애는 심판보다 훨씬 더 큽니다.

 

두 번째 계명은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우리가 언제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지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하느님께 무엇인가를 간청하거나 그분을 찬미할 때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부릅니다. 다른 이들에게 그분을 선포할 때도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만약 거짓 맹세를 하거나 하느님의 이름을 모독하려고, 혹은 다른 이를 저주하거나 괴롭히려고 그분의 이름을 부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목적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되겠습니다.

 

세 번째 계명은 안식일을 지키라는 규정으로, 이는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는 온전히 주님을 위해 바치라는 것입니다. 창조 때 하느님께서는 엿새 동안 모든 것을 만드시고 이렛날에 쉬셨습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만드신 창조의 질서입니다. 이 질서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안식일에는 집안의 식구뿐만 아니라 남종과 여종, 집짐승과 이방인들도 모두 쉬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이 계약에 참여합니다. 이 세 계명을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성공과 성취를 하느님보다 앞세우며, 부와 권력을 숭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안식일의 쉼을 어떤 식으로 실천하고 있습니까? 다른 이의 쉴 권리를 강탈하는 세상에 협력하지는 않습니까? 십계명은 여전히 새로운 거울로 우리 모습을 비춰 줍니다.

 

* 김영선 수녀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소속으로, 미국 보스톤 칼리지에서 구약성경을 공부하였으며,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구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7년 5월호(통권 494호), 김영선 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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