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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모압 여인의 사랑과 도전, 룻기2: 룻기의 치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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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7,809 추천수0

모압 여인의 사랑과 도전, 룻기 (2) 룻기의 치밀함

 

 

드라마 대본을 쓰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시청자들이 다음 회를 보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들 수 있을까’ 머리를 쓰는 것 같습니다. 줄거리가 어떻게 전개될지 판가름이 나야 할 상황에서 꼭 그날의 분량이 끝나 버리지요. 예고편이 있으면 시청자들은 더 자극을 받습니다. 예고편은 다음 줄거리를 미리 알려 주는 듯하지만 사실 더 궁금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룻기는 바로 그런 치밀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습니다. 대략 알고 있을 룻기의 줄거리를 되짚어 보면서, 룻기의 저자가 얼마나 세밀하게 독자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있는지 주목해 보겠습니다.

 

 

룻기의 짜임새

 

1장은 나오미가 모압 땅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것을 전해 줍니다. 나오미는 본래 유다 베들레헴 출신이지만 기근을 피해 모압 지방으로 이주했습니다. 거기에서 나오미는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마흘론과 킬욘을 여의었습니다.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길을 떠나면서 모압 여인인 며느리 오르파와 룻에게 각자 제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 재혼하라고 권고합니다. 오르파는 떠나가지만 룻은 끝까지 나오미 곁에 남겠다고 하여,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은 보리 수확이 시작될 무렵이었다”(1,22). 이것이 1장의 마지막 말입니다. 그러니 독자들은 보리 수확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하며 다음 장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과연 2장은 보리 수확을 배경으로 전개됩니다.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모압 여인 룻은 추수하고 남은 이삭을 주우러 다닙니다. 그런데 룻이 이삭을 주우러 간 밭이 마침 엘리멜렉의 친척인 보아즈의 밭이었습니다. 보아즈는 룻이 시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룻에게 호의를 베풀어 자기 밭에서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보살펴 줍니다. 2장의 마지막 말은 “그래서 룻은 보리 수확과 밀 수확이 끝날 때까지 보아즈의 여종들 곁에서 이삭을 주웠다. 그러고 나서 룻은 시어머니와 함께 집에 머물렀다”(2,23)입니다. 다음 질문은, ‘보리 수확과 밀 수확이 끝났으니 이제 룻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수확 기간에 이삭을 줍는 일로는 1년 내내 안정된 삶을 보장할 수 없지요. 그러면 이제 룻과 나오미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요? 다시 궁금한 마음으로 3장을 펼칩니다.

 

3장에서 나오미는 룻을 보아즈에게 보냅니다. 룻은 나오미의 지시에 따라 밤에 타작마당으로 보아즈를 찾아가 그에게 접근합니다. 그리고 법률상의 구원자 의무를 다하여 친족인 자신을 돌보아 달라고 요청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자기와 혼인해 달라고 요청하지요. 보아즈는 룻에게 보리 여섯 되를 주어 나오미에게 보냅니다. 3장의 마지막 말은 나오미의 입에서 나옵니다. “내 딸아, 일이 어떻게 될지 알게 되기까지 잠자코 있어라. 그분은 오늘 안으로 이 일을 결말짓지 않고는 가만히 있지 못할 것이다”(3,18). 드라마에서 마지막 회가 다가올 때에 느끼는 예감, 그런 것이 느껴지지요? 이제는 ‘오늘’의 일만, 하루 분량만 보면 이 드라마의 긴장이 해소되리라는 것을 독자는 눈치챕니다(눈치를 못 챘다면 약간 둔한 독자입니다!).

 

4장에서는 보아즈보다 룻에게 더 가까운 친족인 다른 구원자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는 룻과 혼인하여 엘리멜렉의 대를 이어 주려 하지 않았으므로, 보아즈는 룻과 나오미를 맡기로 하여 룻과 혼인하고 엘리멜렉에게 속한 밭을 삽니다. 그 후 룻은 오벳을 낳았고, 그 오벳이 다윗의 할아버지가 됩니다. 이렇게 탄탄하게 짜인 4장의 줄거리가 끝을 맺습니다. 룻기는 하나의 뛰어난 문학 작품으로, 마치 단편소설 같은 모습을 보여 줍니다.

 

 

다윗의 족보?

 

4장의 마지막은 좀 특이합니다. 4,18-22에서 ‘페레츠의 족보’가 나오는데, 이 족보는 페레츠에서 시작하여 헤츠론, 람, 암미나답, 나흐손, 살마, 보아즈, 오벳, 이사이, 다윗으로 이어집니다. 이 족보에서 룻은 보아즈의 아내이고 오벳의 어머니이며, 다윗의 증조모가 됩니다.

 

과연 다윗의 실제 족보에 룻이 들어 있었을까요? 일단 제가 검색해 보았는데 구약성경에서 ‘룻’이라는 이름은 룻기에만 등장합니다. 룻기 마지막 부분의 족보와 병행하는 1역대 2장의 족보에도 룻은 언급되지 않습니다. 물론 그 족보에 어머니들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으니 크게 문제될 일은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러면 지난 호에 소개한 룻기에 대한 여러 해석 가운데 ‘다윗의 조상 가운데 모압 여인이 있다는 것에 대한 비판을 막기 위해서 썼다’고 보는 첫 번째 해석은 별로 가능성이 없게 됩니다.

 

다윗의 족보에 룻이 들어 있어 문제를 일으켜야, 그 문제에 답하기 위해 룻기가 작성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실제로 룻기 밖에서 룻의 존재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윗의 족보에 들어 있는 룻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룻기가 작성되지 않았다면, 이 족보는 달리 이해해야 합니다. 룻기의 작성 연대가 다윗 시대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유배지에서 돌아온 에즈라-느헤미야 시대였다고 할 때, 다윗에게는 룻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반대이지요. 룻기에서 다윗이 필요합니다. 룻기의 저자는 자신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이야기의 마지막을 다윗의 족보로 끝내는 것입니다.

 

지난달에 다루지 않은 룻기 입문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탄탄한 문학 구성을 갖춘 룻기가 실제 역사의 기록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답부터 말씀드린다면 룻기는 역사 기록이 아닙니다. 룻기의 등장인물 가운데 구약성경의 다른 부분에 언급된 사람은 보아즈뿐입니다(1역대 2,11.12 참조). 더구나 등장인물은 대부분 상징적 이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오미는 ‘나의 감미로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은 ‘나의 하느님은 임금’, 나오미의 아들 마흘론은 ‘질병’, 킬욘은 ‘허약함’을 뜻하고, 며느리인 오르파는 ‘목덜미’, 룻은 ‘원기 회복’을 뜻합니다. 과연 실제 인물의 이름일까요? 또 룻기에서 객관적으로 말해 너무나 가능성이 적은 우연한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도(물론 이러한 우연성은 하느님의 섭리를 드러내는 신학적 의미를 갖습니다) 룻기가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방증합니다. 룻이 이삭을 주우러 간 밭이 엘리멜렉의 친척인 보아즈의 밭이었다든가, 보아즈가 다른 구원자를 말하고 나서 다음 날 아침 그 구원자가 보아즈. 앞을 지나간다든가 하는 장면은 실상 룻기가 허구임을 독자에게 말해 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룻 이야기는 역사 기록이 아니라 저자가 만든 이야기입니다. 저자가 이 이야기를 다윗의 족보로 끝나게 한 것은 그가 다윗의 권위에 의지하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압 사람이고 여성인 룻이 에즈라-느헤미야 시대의 이스라엘에게 던진 도전에, 다윗의 권위로 힘을 실어 주려한 것이었습니다.

 

 

마태오 복음서의 룻

 

그런데 신약성경에서 룻이 다시 족보에 등장합니다. 잘 알다시피 마태 1장에 실린 예수님의 족보에는 다섯 어머니의 이름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유다의 며느리로서 창녀로 가장하여 시아버지에게서 아들들을 낳은 가나안 여인 타마르이고, 둘째는 예리코의 창녀였던 라합이며, 셋째는 모압 여인 룻입니다. 넷째는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 밧 세바이고, 마지막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여기서 마태오 복음서는 그 맥락으로 룻기를 해석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족보에 외국 여인들의 이름이 언급되었다는 것은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마태 1,1)가 유다인만의 구원자가 아니라 모든 민족의 구원자라는 의미입니다. 둘째, 이 여인들은 빈틈없이 일정하게 이어지는 족보의 도식을 깨뜨려 역사가 인간의 계획대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선택과 개입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여기에서도 모압 여인 룻은 도전적입니다. 인간의 계획과 계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하느님의 결정으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이제 모압 여인의 도전장을 받으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 도전이 나를 전복시킬 수 있도록, 누구의 말이라도 들을 준비를 하십시오.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성 도미니코 말씀의 은사》,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 등 여러 책을 옮겼다.

 

[성서와 함께, 2013년 8월호(통권 449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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