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모압 여인의 사랑과 도전, 룻기5: 네 효성을 전보다 더 훌륭하게(룻 3,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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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5 | 조회수7,348 | 추천수0 | |
모압 여인의 사랑과 도전, 룻기 (5) 네 효성을 전보다 더 훌륭하게(룻 3,10)
추리소설을 끝부터 읽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재미가 다 없어질 테니까요. 그렇지만 추리소설의 결말을 알고 나면 앞부분을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탐정이 추리 과정을 설명할 때에 독자는 “아하!” 하면서 앞에서 나온 이야기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이 사람은 왜 이런 말을 했고, 저 사람은 왜 저런 행동을 했는지 눈앞에 드러납니다.
같은 원리로, 저는 성경을 끝부터 읽는 방법을 자주 씁니다. 물론 저자는 우리에게 그렇게 읽으라고 하지 않지요. 공감하고 몰입해서 읽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분석을 하려면 끝부터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룻기 3장 전반부에는 이상한 일이 많이 벌어집니다. 며느리를 밤에 타작마당으로 보내는 나오미, 밤에 잠들어 있는 보아즈를 찾아가는 룻, 잠든 남자 발치에 누워 있는 여자. 남의 눈을 피해 해야 하는 위험한 행동. 독자의 눈에 기이하게 보이는 이 행동을 가리켜 보아즈는 룻에게 “네 효성을 전보다 더 훌륭하게 드러낸 것”(3,10)이라고 말합니다. 여러 차례 언급한 바와 같이, 여기에서 효성으로 번역된 단어도 ‘헤세드’입니다. 3장의 문제는 또다시 룻의 헤세드인 것입니다.
“어르신은 구원자이십니다”(3,9)
보리 수확과 밀 수확이 끝날 때까지 룻은 보아즈의 밭에서 이삭을 줍습니다. 수확이 끝나면 어떻게 살아갈까요? 룻의 미래는, 나오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나오미는 룻에게 “네가 행복해지도록 내가 너에게 보금자리를 찾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3,1) 하고 말합니다. 앞서 나오미는 오르파와 룻에게, “주님께서 너희가 저마다 새 남편 집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하도록 배려해 주시기를 바란다”(1,9)고 말했습니다. 이제 나오미는 다른 방식으로 그 하느님의 배려를 실행합니다.
나오미 편에서 추구하는 것은 룻의 행복입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타작마당으로 보아즈를 찾아 가라고 말하지만, 그에게 무엇을 요구하라고 상세히 지시하지는 않습니다. 보아즈가 먹고 마시기를 마칠 때까지 숨어 있다가, 그가 누운 자리에 가서 발치를 들치고 누워 있으라고만 합니다. “그분이 네가 해야 할 바를 일러줄 것이다”(3,4).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가 시킨대로 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 달라고 보아즈에게 요청합니다. “저는 주인님의 종인 룻입니다. 어르신의 옷자락을 이 여종 위에 펼쳐 주십시오. 어르신은 구원자이십니다”(3,9).
룻의 이 말에는 법적 문제가 들어 있습니다. 이삭을 주우러 간 룻이 나오미에게 돌아와 보아즈의 밭에서 호의를 입었다는 것을 전했을 때, 나오미는 “그분은 우리 일가로서 우리 구원자 가운데 한 분이시란다”(2,20)라고 말했지요. 여기서 ‘구원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고엘’은 한 가정의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 그 가정의 가족을 보호할 의무를 지닌 사람을 가리킵니다(《주석 성경》 참조). 빚 때문에 가족이 종으로 팔려 가면 그를 속량하고, 한 집안에 속한 땅이 다른 집안에 넘어가게 될 경우에는 그것을 다시 사들여 그 집안의 재산을 지켜 주어야 하며, 친족이 살해되면 피의 복수까지 하는 것이 고엘의 역할입니다.
“어르신의 옷자락을 이 여종 위에 펼쳐 주십시오”(3,9)
그렇다면 “어르신의 옷자락을 이 여종 위에 펼쳐 주십시오”라는 말은 “어르신은 구원자이십니다”라는 말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옷자락을 펼쳐달라는 말은 자신을 아내로 맞아 달라는 뜻입니다. 에제 16,8에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너는 사랑의 때에 이르러 있었다. 그래서 내가 옷자락을 펼쳐 네 알몸을 덮어 주었다”라고 하시는 것도, 신랑이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신부로 맞아들이듯 당신 백성으로 삼아 주셨음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남편과 자식이 없는 과부와 혼인하는 것은 본래 고엘의 임무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룻은 보아즈가 고엘인 것을 내세워 결혼을 요구합니다.
이 요구를 이해하기 위해 잠시 4장으로 건너가겠습니다. 4장에서 나오미는 엘리멜렉에게 속한 밭을 팔려고 내놓습니다(4,3 참조). 고엘이 나서야 하는 때는 오히려 여기입니다. 고엘은 엘리멜렉의 밭이 다른 집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그 밭을 사들여야 합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고엘이 밭을 사는 목적은 한 집안에 속한 상속 재산이 다른 집안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지켜 주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엘리멜렉과 나오미에게는 고엘이 밭을 사준다 해도 그 땅을 물려줄 후손이 없습니다. 그러니 고엘이 정말로 나오미를 위해 엘리멜렉의 상속 재산을 지켜 주고자 한다면, 그 땅을 물려받을 후손까지 낳아 주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다른 법률 조항이 연관됩니다. 신명 25,5-10에 따라 어떤 사람이 후손 없이 죽었을 경우 그 아내를 죽은 사람의 형제가 아내로 맞아들여 그의 대를 이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장에서 나오미가 며느리들에게 “내 배 속에 아들들이 들어 있어 너희 남편이 될 수 있기라도 하단 말이냐?”(1,11)라고 물은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말입니다. 나오미에게 다른 아들이 있었다면 그가 룻을 아내로 맞아 아들을 낳게 해 주었겠지요. 이것이 시숙의 의무였습니다. 그러나 나오미의 아들들은 모두 죽었으니 이제는 다른 가까운 친척이 그 의무를 이행해 주어야 합니다.
룻은 보아즈에게 크나큰 요구를 합니다. 엘리멜렉 집안의 사람으로서, 나오미와 자신이 살아갈 수 있도록 후손을 낳아 엘리멜렉의 대를 이어갈 수 있게 해 주고, 그의 재산이 될 땅도 지켜 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엘에 관한 법과 시숙의 의무에 관한 법을 연결하는 것은 구약성경의 룻기에만 나타납니다. 여기에는 룻의 독특한 율법 해석이 들어 있습니다.
“네 효성을 전보다 더 훌륭하게 드러낸 것이다”(3,10)
보아즈는 룻을 칭찬합니다. 룻이 젊은 남자를 쫓아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룻이 보아즈에게 찾아온 것은 나오미에 대한 헤세드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룻은 큰 모험을 했습니다. 보아즈가 룻을 받아 주지 않는다면? 나오미는 지금까지 보아즈가 룻을 돌보아 준 모습을 보고 그를 믿은 모양입니다. 그러나 보아즈가 에즈라-느헤미야 시대의 열심한 유다인들처럼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율법에 충실하기 위해 모압 여자 룻을 내쳤다면? 밤중에 찾아온 룻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 수치를 당하게 했다면? 추수의 즐거움에 아마도 술을 마다하지 않았을 보아즈가, 목욕하고 향유를 바르고 온 룻을 하룻밤 데리고 지내고는 돌아보지 않는다면?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룻은 보아즈에게 갑니다. 룻은 다른 사람을 찾아 가정을 이루기보다 엘리멜렉의 집안을 살리려 합니다. 보아즈는 룻의 이러한 행위가, 홀로 남은 나오미 곁에 남기로 한(1장 참조) 이전의 효성보다 더 훌륭한 효성이라고 말합니다.
보아즈가 룻에게 “네가 말하는 대로 다 해 주마”(3,11) 하고 약속하는 것은 그러한 룻의 헤세드가 불러일으키는 반향입니다. 보아즈에게도 희생이 요구됩니다. 모압 여자를 받아들여야 하고, 엘리멜렉의 밭을 사 주어야 합니다. 보아즈는 시험을 치르는 듯합니다. 모압 여자가 이스라엘을 시험합니다. 율법의 해석에 관한 시험입니다. 율법을 어떻게 해석해야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요?
룻은 고엘에 관한 율법의 핵심을 꿰뚫었습니다. 상속을 받을 사람이 없는데 상속 재산을 되사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이 모압 여자 룻의 도전장입니다. 그리고 보아즈는 시험을 통과합니다. 주님의 날개(히브리어 ‘카나프’) 아래로 피신한 룻에게 보아즈는 자신의 옷자락(카나프)을 덮어 줍니다. 다시 한 번 그는 하느님 헤세드의 도구가 되어 한 철의 양식을 마련해 주는 데 그치지 않고, 후손을 이어 주어 나오미와 룻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룻의 도전장은 예수님의 도전장과 닮았습니다. “안식일에 …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마르 3,4)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이들의 완고함을 보시고 몹시 슬퍼하십니다(마르 3,5 참조). 율법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율법과 거리가 멀 것 같은 모압 여자가 이러한 율법의 정신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칩니다.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성 도미니코 말씀의 은사》,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 등 여러 책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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