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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가톨릭 서간에서 보물 찾기: 야고보 서간 (4) 예수님 말씀의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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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7,444 추천수0

가톨릭 서간에서 보물 찾기 - 야고보 서간 (4) 예수님 말씀의 메아리

 

 

야고보서를 읽다 보면 우리 귀에 친숙한 가르침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의심하지 말고 청하라’(1,6), ‘형제를 심판하지 마라’(4,11), ‘녹슬고 좀먹는 재물’(5,2-3), ‘하늘을 두고도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5,12) 등. 이 말씀들은 모두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야고보서는 신약성경의 그 어느 서간보다도 충실하게 예수님의 말씀들을 직접 사용하여 가르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완전함에 이르게 되는 길은 무엇인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잘 닦아 진실만을 전하고, 세상과의 관계에서는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오히려 그 주인이 되어 재물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바로 잡음: ‘혀의 통제’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말은 무엇일까? 말은 ‘사람됨의 표출’이다. 말은 사람 안에 있는 것이 바깥으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야고보서 3장과 4장에는 말에 관한 가르침이 모여 있다. 말조심은 구약의 지혜 전통에서 오랫동안 가르쳐 온 것이다. 집회서 28장은 혀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지혜서 1장은 지혜로운 삶은 혀의 단속에 있다고 강조한다.

 

구약성경의 여러 가르침을 배우며 자라셨을 예수님 역시 복음서 곳곳에서 말을 신중히 하라고 가르치신다. 형제에게 분노하여 막말하는 것만으로도 지옥 불에 떨어질 것이라 하셨고(마태 5,22), 남을 함부로 심판하지 말라고 하셨다(마태 7,1). 특히 헛맹세를 엄히 금지하여 아예 맹세 자체를 하지 말라고까지 이르셨다(마태 5,34). 거짓 맹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웃에게 해를 끼칠 뿐 아니라 하느님마저 팔아넘기려는 악행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가벼이 여기는 것을 개탄하시며, “예” 또는 “아니요”로 군더더기 없는 진실만을 말하라고 가르치셨다(마태 5,37).

 

야고보서는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말에 관한 가르침을 펼친다. 교사로서 그릇된 가르침을 전하는 것(3,1)과 시기심이나 이기심에서 하는 거짓말(3,14)은 하느님을 거역하고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이다. 형제에 대한 험담(4,11)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그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혀만 놀려서도 사람은 자신과 이웃을 망가뜨릴 수 있다. 야고보서는 우리 몸에서 가장 길들이기 어려운 지체가 혀이기에(3,8), 혀를 잘 다스리는 사람이 자기 몸 전체를 다스릴 수 있으며 완전한 사람이라고 가르친다(3,2). 섣불리 자신의 생각을 얹어 남을 헐뜯거나 판단해서도 안 되며, 오직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라고 권고한다(5,12).

 

 

재물과 세상에 대한 올바른 태도

 

“너희는 가진 것 팔아 불쌍한 자 도와주어라. 그 재물을 하늘에 쌓아 주님 상급 받아라. 천국에는 좀도 없고…”(가톨릭 성가 459장). 이 가사는 마태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온 것이다(마태 6,19).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려면 재물이 꼭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재물로 선행을 베풀 수도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사람은 남을 속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재물을 독차지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그렇게까지 해서 쌓아둔 재물이라 할지라도 결국엔 녹슬어 버리고, 정작 자신은 그것을 써 보지도 못한 채 하느님의 심판을 맞게 될 수 있음에도 말이다.

 

루카 복음서에는 모아둔 재산을 곳간에 가득 채워 넣고 흐뭇해하는 부자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은 그를 어리석다 하셨다(루카 12,18-20). 바로 그날 밤 그 부자는 죽어 하느님 앞에 서게 될 터인데, 그는 자신의 재물을 쌓아 놓기만 했을 뿐, 그 어떤 선한 일을 하는 데에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고보서에서도 세상의 이익을 좇아 삶을 설계하는 것이나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는 허세의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좋은 일을 할 수 있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까지 하였다(4,17). 한꺼번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가르침(마태 6,24)에 따라, 야고보서 역시 하느님과 세상의 이익은 양립할 수 없으며, 지금이라도 세상과 사귀지 말고 하느님과 사귀라고 권고한다(4,4).

 

 

생명을 낳는 말씀의 길로

 

물질적 재화와 마찬가지로 말에도 양면성이 있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구원에 이르기도 하고 화를 입기도 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는가 하면, “세 치 혀가 사람을 잡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느님을 공경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간직한 이들이라면, 말로 인하여 자신과 이웃을 곤경에 빠뜨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야고보는 하느님께서 주신 입에 어떻게 찬미와 저주를 동시에 담을 수 있느냐며 탄식한다(3,9). 이러한 현실이 비단 초대교회 시절에만 국한된 것이었을까? 오늘날은 더욱더 교묘한 방식으로 말 때문에 숱한 사람이 피해를 보고 심지어 인생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기도 한다. 진위가 확인되지도 않은 악의에 가득 찬 말들이 화살처럼 공중을 날아다닌다. 참으로 무서운 현실이다. 하느님께서 오직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인간이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하느님의 속성을 닮은 것이고, 그분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는 것이다. 말은 보이지 않는 것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힘이 있다. 오늘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말은 사람을 살리는 말일까, 죽이는 말일까?

 

* 강은희 님은 미국 The Graduate Theological Union에서 수학하였으며(성서학 박사),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와 동 대학교 신학원에서 성경 전반에 걸쳐 강의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5월호(통권 482호), 강은희 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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