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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가톨릭 서간에서 보물 찾기: 베드로의 첫째 서간 (5) 순종과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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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7,584 추천수0

가톨릭 서간에서 보물 찾기 - 베드로의 첫째 서간 (5) 순종과 존중

 

 

2장에서 베드로는 새로 태어나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해가는 이들이 악에 물들지 않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범을 보여줄 길을 제시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단죄하고 세상에서 고립되어 독선적 삶을 사는 이들이 아니라 세상과 더불어 모범적으로 살며 세상이 변화될 기회를 줌으로써 세상의 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다. 3,1-7은 성화의 원동력이 될 가정생활에 관한 내용이다. 베드로는 특히 주님 안에서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제시한다.

 

 

썩지 않는 것으로 치장하십시오(3,4)

 

“아내들도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남편들도 아내인 여러분의 말 없는 처신으로 감화를 받게 하십시오”(3,1-2). 이 구절에 저항감을 느끼는 여성들도 많을 것이다. 아내와 남편 간의 관계는 대등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순종이라니? 게다가 믿지 않는 남편의 회심의 책임을 그 아내에게 지우자는 것인가? 하지만 베드로의 가르침을 찬찬히 읽어 가노라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순종은 노예가 주인의 뜻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그런 순종은 아닌 것 같다.

 

당시의 상황에서 따져 보자면, 남편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부인 혼자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다면 그 자체로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베드로가 아내들은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명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 믿지 않는 남편을 따라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거부하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베드로가 명하는 ‘순종’이란 두 사람을 한데 맺어준 부부간의 도리에 관한 좀 더 근본적인 차원의 것이다. 두 사람이 부부로서 함께 살아가기로 했다면, 서로 상대방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 배우자에 대한 충실함, 부부간의 신뢰일 것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믿는 여인들이 실천해야 할 아내로서의 순종은 바로 이 부분이라고 가르친다. 결혼하였음에도 남편 외 다른 이들의 눈길을 끌고자 하며, 외모를 치장하고 가정생활을 소홀히 한다면 그 자체가 남편에 대한 불순종이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여성으로서의 정숙함과 신앙인으로서의 경건함으로 치장하라고 가르친다(3,3-4).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살던 거룩한 부인들의 순종(3,5)

 

이러한 아내의 삶에 감화되어 그리스도를 믿지 않던 남편이 그리스도께로 인도되면 좋겠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 바라는 대로 되지는 않는다. 아내의 경건한 삶에도 남편이 돌아서지 않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정성과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자책하며 남편의 불신앙마저 아내의 탓으로 돌려야 할까?

 

함께 사는 가족이 저마다 다른 신앙을 가질 때, 대립과 충돌을 피하고자 마음의 담을 쌓고 살아갈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을 미리 방지하는 길은 자신의 힘으로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섭리에 맡기며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는 함께 좋은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되리라는 희망. 그 희망의 힘으로 경건함과 품위를 잃지 않으며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기를 베드로는 가정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외로이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사람에게 권고하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 – ‘생명의 은총’의 공동 상속자(3,7)

 

남편들을 향한 베드로의 권고는 세 가지이다. 원문 그대로를 직역하면 아내의 연약함에 관한 지식을 갖고 살아가며, 아내에게 존경을 표하고, 아내를 ‘생명의 은총’의 공동 상속자로 여기라는 것이다(3,7). 이는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으며, 결혼한 여성들을 남편의 소유물로 여겼던 당시 상황을 고려한다면 매우 놀라운 가르침이다. 베드로는 아내가 연약한 존재임을 이해하라고 가르친다. 이는 남녀 간의 차이점을 인식해 자신의 기준을 아내에게도 똑같이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신체적이든 기능적이든 간에 인간은 자신에게는 가능한 것을 타인이 못하는 경우, 쉽사리 그를 업신여기게 된다. 다시 말해 모든 일에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된다. 가장의 권한을 지닌 남편이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가족 구성원들이 저마다 달리 부여받은 창조의 선물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가정의 평화는 깨어질 것이다. 또한, 아내를 존중하라는 것은 아내를 자신이 거느린 존재가 아니라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하라는 것이다. 덧붙여, 아내를 영원한 생명의 공동 상속자로 여기라고 가르친다. 당시의 세속적 상속 관습은 아버지로부터 맏아들 중심으로 이어졌을지라도, 영원한 생명의 상속은 여인들에게도 똑같이 열려 있으며, 남편은 그 아내를 동일한 상속 지분을 받는 거룩하고도 귀한 존재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그들이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베드로는 경고한다.

 

가정이 신앙생활의 요람이 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앙생활은 어렵다. 결국 성당이라는 한정된 공간과 주일이라는 한정된 시간에만 신앙인으로서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삶의 기본 단위인 가정의 중요성을 꿰뚫어 보며 특별히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를 강조한다. 존중과 순종, 이는 비단 부부간의 도리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약하거나 열등한 위치에 있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다가갈 때 당연히 지녀야 할 태도이기도 하다.

 

* 강은희 님은 미국 The Graduate Theological Union에서 수학하였으며(성서학 박사),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와 동 대학교 신학원에서 성경 전반에 걸쳐 강의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12월호(통권 489호), 강은희 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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