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가톨릭 서간에서 보물 찾기: 요한의 첫째 서간 (2) 그리스도의 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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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5 | 조회수8,077 | 추천수0 | |
가톨릭 서간에서 보물 찾기 - 요한의 첫째 서간 (2) 그리스도의 적
요한의 첫째 서간은 그리스도 공동체를 박해하는 물리적 위협보다는 그리스도 공동체 내면을 흔드는 문제에 직면하여 저술된 것이다. 누군가가 직접적으로 신앙 공동체를 박해한다면, 공동체는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경계심을 갖출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에 관하여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공동체 안에 있거나 공동체로 접근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위험하다. 그들은 스스로의 삶뿐 아니라, 그들의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일 다른 이들의 삶까지도 잘못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적
이 서간의 저자는 자신과 다른 가르침을 펴는 이들을 ‘그리스도의 적’이라 부르고 있다(2,18; 4,3). 구체적으로 어떤 이들이었을까? 본문에 의하면 그들은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 아니었다.” 여기서 과거 시제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와 함께했던 ‘그때도’ 이미 우리에게 속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외적으로는 한울타리에 머물렀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함께’가 아니었다면, 무엇이 그들의 문제였을까?
저자는 그들을 ‘거짓말쟁이’라 칭한다. 그들의 거짓말이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함으로써 아버지 하느님마저 부인하는 것이었다(2,22). 그리스도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한다는 것이 가능했을까? ‘그리스도의 적’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부인한 것이 아니라, 입으로는 아버지와 아드님을 고백하면서도, 그 본질에 관해서는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가르침과 다른 내용을 주장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했으며 이 사안은 요한의 둘째 서간에 가면 더욱 명백해진다(2요한 1,7). 인간이며 하느님이신 온전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반쪽짜리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은 그분을 부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거짓과 세상
인간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만이 당시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의 전부는 아니었다. 서간의 저자는 신자들의 삶이 거짓된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경고한다. 서간에서 언급한 행위들이 매우 구체적인 것으로 보아 당시 공동체 안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경우들을 그대로 지적한 것 같다. 그 예는 다음과 같다. 빛이신 하느님과 친교를 나눈다고 말하면서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행위(1,6), 스스로 죄 없다고 말함으로써 우리의 속죄를 위해 희생하신 주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행위(1,8-10), 하느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행위(2,3-4),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눈에 보이는 형제는 사랑하지 않는 행위(4,20) 등이다. 그 모든 사항의 공통점은 말과 행동이 어긋난다는 데 있고, 서간의 저자는 그러한 행위를 저지르는 이들을 ‘거짓말쟁이’로 비판한다.
더 나아가 이 서간의 저자는 하느님과의 관계가 진실하지 못할 때 인간은 세상과 손잡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하느님의 창조를 믿는 신앙인으로서 ‘세상’에 대하여 말할 때는 참으로 조심스럽다. 세상 역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작품 아닌가? 이 서간에서는 참 그리스도인들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세상이란 하느님을 반영하는 피조물로서의 세상이 아니라, 오히려 그 피조물을 어지럽히는 욕망과 자만으로 이루어진 세상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세상을 사랑하는 이들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알지도 못하고, 따라서 그분께 속해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도 알지 못한다. 오히려 미워한다. 이러한 위협 앞에 놓인 그리스도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서간의 저자는 하느님께 속한 이들은 하느님의 승리를 함께 누릴 것이라고 용기를 북돋운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요한의 첫째 서간의 문제는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그리스도를 믿느냐의 문제였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하나의 공동체 안에 속해 있었던 그들 모두가 처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동일한 복음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리스도가 우리와 완전히 똑같은 인간이었을 리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소위 ‘그리스도의 적’들은 자신들이 인간 예수를 부인하는 것이 곧 그분을 보내신 하느님마저 부인하는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지나치게 신성시하려 했던 그들의 의도는 예수를 업신여기려 했거나 불신해서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공경하는 마음에서 그런 생각을 발전시켰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들 마음속 더 깊은 곳에서는 자신들이 믿는 분이 좀 더 우월한 존재이기를 바라는 인간적인 욕심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주님은 우리에게 2천 년 전 베드로에게 던지셨던 똑같은 질문을 하신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내가 믿고 고백하는 그리스도는 어떤 그리스도인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서도 그분의 적으로 살아가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않도록, 세상이 끌어당기는 욕망이나 내 안의 자만을 맑은 영으로 경계하며 깨어 있을 것을 이 서간의 저자는 깨우쳐 주고 있다.
* 강은희 님은 미국 The Graduate Theological Union에서 수학하였으며(성서학 박사),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와 동 대학교 신학원에서 성경 전반에 걸쳐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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