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가톨릭 서간에서 보물 찾기: 요한의 첫째 서간 (3) 의로움과 사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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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5 | 조회수8,024 | 추천수0 | |
가톨릭 서간에서 보물 찾기 - 요한의 첫째 서간 (3) 의로움과 사랑
요한의 첫째 서간은 ‘그리스도의 적들’을 강한 어조로 비난하고 있지만, 서간의 저자가 궁극적으로 염두에 두는 것은 그들의 회심이 아니다. 그러기에는 이미 그들과 이 서간의 수신 공동체 사이에 너무나 큰 간격이 벌어져 있었던 것 같다. 이 서간의 진정한 독자는 속이는 자들의 그릇된 주장에 넘어가지 않은, 아직 교회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는 이들이다. 서간의 저자는 처음부터 주어진 가르침에 충실히 남아 있는 이들이 죄를 피하도록(2,1),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올바른 행위를 실천하도록 인도한다.
주님과의 친교
서간의 저자는 이 글을 읽는 이들이 하느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진정한 친교를 통하여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고 밝힌다. 저자는 ‘하느님과의 친교’를 ‘빛 속에서 살아감’으로 정의한다(1,5-7). 빛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빛이 있는 곳은 밝다. 어둠 속에선 보이지 않던 작은 티끌 하나까지도 또렷이 보게 된다. 여기서 인간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위하여 다시 어둠 속으로 숨어들거나, 아니면 자신의 허물을 드러내어 씻을 수 있는 밝음 속에 머무르거나.
저자는 빛 속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당혹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스스로를 무죄하다 여기는 것의 큰 오류를 지적한다(1,8). 이 세상에는 인간이 씻어낼 수 있는 오염이 있는가 하면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오염도 있다. 인간의 죄는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씻을 수 없다. 오직 용서로써만 씻어 낼 수 있다. 그리고 용서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죄를 고백할 때 주어지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응답이다. 저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 없음을 강조하여, 밝음 속에 머무를수록 자신의 과오를 더 잘 보게 되고, 자신의 어둠을 청산하고자 용서의 원천이신 주님을 더욱 찾게 되며, 죄의 용서로 깨끗하게 된 인간이 주님과의 친교에 들게 되는 과정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이끈다.
이처럼 주님과의 진정한 친교를 누리는 이들을 서간의 저자는 다양한 표현으로 격려한다. 그들은 ‘강하고 진리의 말씀을 간직하였으며, 악한 자를 이겼다’(2,12-14). 죄를 용서받고 빛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강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속적으로 악을 이겨 왔기 때문이다. 악을 이기는 힘의 근원은 무엇이 선하고 옳은 것인지를 아는 데서 출발한다. 선함과 올바름, 그 진리의 근원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든 진리의 근원을 그리스도에게서 발견한다.
서간의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어 오셨다는 것을 부인하는 그리스도의 적들에게 절대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고 누차 경고한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과 함께 머무시는 동안 말씀으로 가르치시며, 몸소 그 가르침을 실천하셨다. 특히 십자가상 죽음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사랑의 극치였다. 그런데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한다면 그분의 모범이 참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신이 인간의 흉내를 낸 것에 불과하게 된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모든 위대한 사랑의 행위는 신이었기에 가능했을뿐, 평범한 우리 인간들이 따라 할 수는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의로움과 사랑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셨으며 어떤 길을 가셨던가? 서간의 저자는 그분을 의로움과 사랑의 모범으로 제시한다. 지나친 단순화일 수도 있겠지만, 신약의 이상적 덕목이 사랑이라면 구약의 이상적 덕목은 의로움이다. 그 의로움은 하느님의 명에 따라 충실히 살아갈 때 얻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흔히 ‘율법’을 떠올리게 되는데, 하느님의 명은 율법이 맞다. 그러나 율법은 편협한 율법주의를 훨씬 뛰어넘는 가르침이다.
실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명하신 것들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느님을 사랑(신명 6,5)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레위 19,18)는 것으로 요약된다. 여기서의 사랑은 로맨틱한 감성적 영역의 것이 아니라 내가 싫은 것은 이웃에게도 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은 이웃에게도 실천하는 올곧음과 배려의 총체이다. 따라서 의로움과 사랑이란 개별적 덕목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붙어서 가는 것이다. 의로운 이는 사랑을 실천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이는 의로운 이다. 그리고 서간의 저자는 그 의로움과 사랑의 근원이자 정점인 예수 그리스도께로, 그분을 따르려는 이들의 시선이 향하도록 이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이기에 의로움의 근원이신 하느님의 본성을 그대로 지니셨으며, 또한 인간이기에 그분의 의로움은 그대로 인간의 본성이 된다(1,9; 2,1.29; 3,7). 서간의 저자는 의로움과 사랑을 동일 선상에 둔다. 하느님을 닮은 이라면 의롭게 살아갈 것이며, 그 의로움은 이웃을 사랑하는 데서 드러나기 때문이다(3,10; 4,21; 5,1-5).
믿음의 삶은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삶이다. 보이지 않는 것에 관하여 가치 평가를 하며 삶을 투신해야 하기에 눈에 보이는 역할 모델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의 역할 모델은 응당 그리스도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그리스도를 보고 있느냐이다. 그에 따라 실천 행위의 기준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 빛, 진리 등 보이지 않는 것을 알아보게 하고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현실적 척도는 품성으로 드러나는 의로움과 행위로 드러나는 사랑이다. 의로움과 사랑이 우리 인간에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까닭은 그것이 신의 묘기로서 기적처럼 인간 앞에 펼쳐진 것이 아니라, 인간 예수께서 어려움과 희생을 치르며 몸소 실천하셨기 때문이다.
* 강은희 님은 미국 The Graduate Theological Union에서 수학하였으며(성서학 박사),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와 동 대학교 신학원에서 성경 전반에 걸쳐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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