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창세기 인물 열전: 니므롯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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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5 | 조회수10,683 | 추천수1 | |
[창세기 인물 열전] 니므롯
니므롯은 대홍수 이후 세상에 처음 등장한 장사(壯士)이자 사냥꾼이다. “니므롯처럼 주님 앞에도 알려진 용맹한 사냥꾼”(10,9)이라는 속담까지 생겼을 만큼 상고 시대에는 유명한 인물이었다. 바벨 탑 사건(11,1-9)과도 관련 있다고 추정되므로, 그 심상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이번 호에서는 니므롯에 얽힌 전설을 알아보고, 그가 바벨 탑 사건에 어떻게 연관되는지 그 배경을 살펴보겠다.
메소포타미아의 시조
니므롯은 에티오피아의 아들로 태어났다(10,8). 족보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노아의 아들 함에 이르므로(함은 아버지를 추행한 죄로 저주받은 바 있다: 9,18-27), 앞으로 묘사될 니므롯의 활동이 그다지 유익한 것이 아님을 짐작하게 해 준다. 창세기는 니므롯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임금이 되었다고 전하고(10,10-12 참조), 미카 5,5도 “아시리아”를 “니므롯 땅”이라 칭한다. 다만 에티오피아가 메소포타미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지역이 아니므로, 에티오피아의 후손이 어떻게 메소포타미아의 조상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에티오피아는 히브리어로 ‘쿠쉬’이다. 그런데 메소포타미아 전승에 따르면, 대홍수 이후 메소포타미아에서 왕조가 다시 시작된 장소는 ‘키쉬’라는 성읍이었다. ‘쿠쉬’는 ‘키쉬’와 동형이의어로 볼 수 있다. 둘째, 기원전 16세기부터 4세기 동안 바빌론을 다스렸다는 ‘카사이트’ 왕조를 ‘쿠쉬’의 동형이의어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둘 가운데 어떤 걸 택하든, 니므롯이 메소포타미아의 시조임을 간접적으로 설명해 준다.
니므롯의 정체
창세기가 전설적 호걸로 전하는 니므롯은 정확히 누구였을까? 그의 정체를 규명하려는 시도가 여럿 있었다. 먼저, 아카드 왕국 사르곤 1세의 손자 ‘나람-신’을 꼽는다. 나람-신은 기원전 3000년대 후반 고대 근동에서 많은 영토를 차지했다. 그리고 고대 근동 문헌에서 최초로 ‘세상 끝을 다스리는 임금’이라 일컬어졌으며, ‘강한 남자’라는 칭호가 그를 따라다녔다. 신들에게 도전장을 내밀어 끝내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고 옛 전승은 전한다. ‘니므롯’이라는 히브리어 이름이 ‘반란’을 뜻하므로, 니므롯은 나람-신의 운명을 풍자한 인물로 해석될 수 있다. 둘째로는, 아시리아 임금 ‘투쿨티-니누르타 1세’로 풀이한다. 투쿨티-니누르타 1세는 기원전 13-12세기 임금으로서, 최초로 바빌론을 정복해 아시리아와 통일했다. 마지막으로, 바빌론인들이 창조주로 추앙한 ‘마르둑’ 신을 니므롯의 본으로 풀이한다. 니므롯(Nimrod)의 어근 m, r, d는 마르둑(Marduk)의 이름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위 인물 중 누구라고 한정하기보다, 그들의 특징을 복합적으로 입혀 메소포타미아의 시조를 묘사했다고 보는 게 가장 적합하겠다.
바벨 탑, 인류의 반란
유다 전승은 니므롯을 인류 최초의 사냥꾼이자 처음으로 육식을 한 자로 보았다(대홍수 이전엔 인류가 채식을 했다: 1,29. 육식을 허락받은 건 홍수 이후다: 9,2-3). 홍수 이후 최초로 전쟁을 일으킨 자로도 풀이했다(미드라쉬 아가다 10,8). 그의 용맹함은 하느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 주신 가죽옷(3,21)에서 나왔다고 한다. 노아가 그 옷을 방주 안에 보관해 두었는데, 니므롯이 그 옷을 입을 때마다 짐승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탈무드 현인들은 니므롯을 반란의 대명사로 보았다(하기가 13a). 이 해석은 그의 이름 뜻(‘반란’)과도 어울린다. 탈무드 전승은 바벨 탑을 지은 자도 니므롯이라고 전한다(아보다 자라 53b). 탈무드 현인들은 니므롯이 우상 숭배 목적으로 쌓았다고 보고 바벨 탑을 ‘니므롯의 신전’이라 칭했다. 창세기도 니므롯의 왕국이 ‘신아르 지방의 바벨, 에렉, 아카드, 칼네에서 시작했다’(10,10)고 소개한 후 바벨 탑 사건(11,1-9)을 기록하고 있다.
요세푸스도 니므롯에 대해 비슷한 전승을 전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니므롯은 … 하느님이 또 한 번 땅을 홍수에 잠기게 하시면 복수하겠다고 위협했다. 물이 올라올 수 없을 만큼 높은 탑을 쌓아, 홍수 때 멸망한 조상들에 대해 복수하려 했다. … 그렇게 그들은 탑 건설에 착수했으며 … 그 탑은 모든 이의 예상을 뛰어넘는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유다 고대사》 I, iv, 2-3).
창세기가 바벨 탑 건축에 관해 밝히는 인간의 죄는, 세상에 흩어져 온 땅을 채우라 하신 하느님 말씀(1,28; 9,1)에 그들이 반기를 들었다는 점이다. 곧, 그들은 강한 요새를 지어 한곳에 모여 살면 흩어짐을 막을 수 있다고 여겼다(11,4). 하느님은 당신 뜻을 거스르는 인류를 보시고, 언어를 뒤섞어 그들을 세상에 흩어 버리셨다(11,8). 이렇듯 니므롯 시대에 노아의 자손 일부가 악한 본성을 누르지 못하고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곧 아브람이 셈의 열째 후손으로 세상에 등장함으로써(11,10-26),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의 서막을 올리게 되었다.
* 김명숙 님은 예루살렘의 히브리대에서 구약학 석사 ·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루살렘의 홀리랜드대와 가톨릭대 문화영성대학원과 수도자 신학원에서 구약학 강의를 하였고,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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