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성경의 세계: 사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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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25 | 조회수12,495 | 추천수0 | |
[성경의 세계] 사제 (1)
구약성경엔 이집트 탈출 때부터 사제들이 등장한다. 그 이전엔 가족의 가장이나 부족의 우두머리가 사제 역할을 수행했다(창세 31,54). 어느 날 주님께선 모세의 형 아론을 사제로 임명하신다(탈출 28,1). 이스라엘 사제직의 출발이다. 이후 그의 직계는 사제 혈통으로 인정받고 세습되었다(민수 25,13). 아론은 레위 지파였다. 그의 직계가 아닌 레위인은 사제를 돕는 일에 서서히 정착하게 된다. 하지만 판관 시대에도 레위 지파가 아닌 사제들이 있었다(판관 17,5). 족장이 사제 역할 하던 모세 이전 풍습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사울과 다윗도 왕의 신분으로 제사를 바치곤 했다. 솔로몬은 왕이 되자 차독(Zadok)을 대사제로 명하고 전권을 맡겼다(1열왕 2,35). 이후 제사는 사제만의 영역이 되고 차독 가문은 대사제 계보를 독점했다. 예수님 때의 대사제 카야파(Caiaphas)도 차독 직계였다. 사두가이파 어원도 차독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제의 본업은 제사에 있었지만 특수 사건에선 재판관이 되기도 했다(신명 17,8). 사제는 기름 부음을 받아 성별 되었고(탈출 28,41) 이 전통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름은 올리브 열매에서 짜낸 것으로 향료를 섞어 사용했다.
착복 예식과 기름 바르는 예절이 끝나면 칠일 동안 속죄제를 바치며 근신했고 이후 사제의 삶을 시작했다. 초기엔 30살이 넘어야 임명되었다. 사제 수가 부족해지자 25살로 낮추었고 솔로몬 시대엔 20살이 되면 임명한 적도 있었다. 50세가 되면 당연히 은퇴를 받아들였고 은퇴 뒤엔 제사를 드릴 수 없었다. 사제 옷을 입지 않고 제사드리면 죽임을 당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사제는 늘 예언자의 견제를 받았다.
사제단 으뜸을 대사제라 했고(레위 21,10) 유일하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일반 사제보다 규제가 많았고 특수 제복을 입었다. 개신교에선 대제사장이라 한다. 원래 한 사람이었고 종신직이었다. 하지만 식민 시대를 거치면서 바뀌기도 했다. 산헤드린(유대 최고 의회) 대표를 겸했기에 정치세력이 개입했던 것이다. 로마시대 헤로데 왕은 대사제를 자주 교체했고 차독 가문이 아닌 사제도 임명했다. 이렇게 해서 수석 사제란 용어가 등장했다. 전직 대사제와 대사제가 될 자격을 갖춘 사제를 일컫는 말이었다. 예수님 시대 유대교 사제는 18,000명 정도였다고 한다. 이들은 24조로 나누어져 있었고 각조는 1년에 2번 일주일씩 성전에서 제사를 바칠 수 있었다(루카 1,5). [2018년 6월 24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 연중 제12주일 가톨릭마산 12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신안동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사제 (2)
사제를 뜻하는 프리스트(Priest) 어원은 희랍어 프레스비테로스(presbyteros)다. 연장자란 의미다. 장로(長老) · 원로(元老)로도 번역된다. 나이 많고 덕망 있는 사람을 존칭하는 말이다.
16세기 종교개혁을 주도한 루터는 만인사제(萬人司祭)설을 주장했다. 교인은 누구나 사제라는 이론이다. 장로교(presbyterianism)란 용어는 이렇게 해서 등장했다. 초기 그리스도교 기초이론을 확립한 이를 교부(敎父)라고 한다. 이들은 프레스비테로스를 라틴어로 음역하여 프레스비텔(Presbyter)이라 했다. 이후 사제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주교는 에피스코푸스(Episcopus)라 했다. 이 역시 희랍어 에피스코포스(episkopos)의 라틴어 표기다. 직역하면 감독관이다. 초기 한국교회는 감독하는 목자란 뜻으로 주교를 감목(監牧)이라고도 했다. 영어는 비숍(Bishop)이다. Episcopus가 Bishop으로 축소된 것이다. 일본가톨릭은 주교(主敎)를 시쿄(司教)라 부른다. 신품성사를 집전하는 직분이며 사도로부터 계승되어 온 신분이다. 그런 이유로 주교를 성품 할 땐 최소 3명 이상의 다른 주교가 안수해야 된다. 사제란 칭호도 처음엔 주교에게만 적용되었다. 10세기 이후부터 주교와 신부에게 공통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서품(敍品)은 사제직을 주는 것이고 수품(受品)은 받는 것이다. 서품은 주교만이 할 수 있다. 한편 신품(神品)성사는 신부 품만을 뜻한다고 볼 수 있기에 성품(聖品)성사로 바뀌었다. 주교와 신부와 부제에게 어울리는 용어를 찾아낸 것이다. 성직자란 위의 세 직분을 일컫는 말이지만 사제는 주교와 신부에게만 적용된다. 부제는 미사 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가톨릭과 정교회는 남자에게만 사제직을 허락했다. 성공회는 여자에게도 개방했다. 한국 성공회는 2001년 처음으로 여성 사제를 배출했다. 대한성공회 부산교구 소속 민병옥(카타리나) 사제로, 당시 55세였다. 미국 성공회에선 여성 주교를 2006년 6월 배출했다.
중국, 일본, 한국에선 사제를 신부(神父)라 부른다. 영적 부친이란 의미다. 영어도 아버지란 뜻의 파더(Father)다. 서양에선 레버런드(Reverend)란 말도 쓴다. 줄인 글자가 Rev. 존경한다는 뜻이다. 가톨릭과 정교회 사제, 개신교 목사까지 사용하고 있다. 박해시대엔 덕을 행하도록 이끈다는 뜻에서 탁덕(鐸德)이라고도 불렀다. 수선 탁덕 김대건 신부님이란 표현이 남아 있다. [2018년 7월 8일 연중 제14주일 가톨릭마산 12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신안동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사제 (3)
가톨릭 사제는 독신을 지킨다. 교회 초기엔 독신 규정이 있었지만 강제하진 않았다. 교회법으로 강제조항이 된 것은 11세기 이후다. 교권의 세습이 원인이었다. 5세기부터 고위 성직자 일부는 자녀에게 성직을 물려주기 시작했다. 11세기가 되자 세습 폐단은 심각했다. 특정 가문이 지역교회를 독점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권력을 행사하며 교회의 독이 되었다. 독신 규정의 강제법이 등장하게 된 역사적 배경이다. 동방교회는 초기전승에 따라 서품 전 혼인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성직자가 된 뒤의 혼인은 인정하지 않는다. 아내를 사별한 경우에도 재혼은 금지되어 있다.
초대교회 사제들은 유대율법과 희랍문화 영향으로 대부분 혼인했다. 그들은 미사 봉헌이 있는 전날 밤엔 아내와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던 불문율이었다. 4세기 후 박해가 종식되자 평일미사가 보편화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내와 잠자리를 하고 미사 드리는 사제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교회는 제재조치를 취했지만 실효성이 약했다. 이 또한 독신규정을 강제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박해 때는 신앙을 드러내는 최고행위가 순교였다. 박해가 끝나고 순교가 사라지자 새로운 행위를 추구했다. 극기였다. 본능의 절제가 순교에 버금가는 신앙 행위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많은 이들이 금욕생활을 시도했다. 속세를 떠나 광야로 숨어드는 독신자들이 늘어났다. 은수자들이다. 이들이 공동생활을 하면서 후대의 수도자로 변신했다. 차츰 교구 사제 중에도 독신을 택하는 이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마침내 1139년 2차 라테란공의회는 사제 독신을 의무화했다. 이렇게 해서 1139년 이후부터는 미혼자만 사제가 될 수 있게 된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제 독신을 금욕 계명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위한 자유로운 선택이라 재해석했다.
독신제를 폐지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성소 감소를 막기 위해서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미풍에 불과하다. 한국인으로 처음 사제되신 분이 김대건 신부님이다. 1845년 8월 상하이에서 서품되었다. 두 번째 사제 역시 상하이에서 1849년 서품된 최양업 신부님이다. 이렇게 시작해서 2017년 9월 30일 기준으로 서품된 한국인 사제는 6,188명이다. 주교회의에서 2018년 1월 발간한 사제 인명록에 따른 자료다. 김대건 신부님 이후 170년 동안 서품된 사제 수가 1년에 목사 안수 받는 개신교 목사 수와 비슷하다. [2018년 7월 22 연중 제16주일 가톨릭마산 8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신안동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사제 (4)
교황청은 2015년 전 세계 가톨릭교회 통계자료를 2017년 4월 6일 발표했다. 성직자는 46만 6,215명이며 주교 5,304명, 신부 41만 5,656명, 종신 부제 4만 5,255명이었다. 종신 부제가 주교보다 9배 많았다. 종신(終身) 부제는 글자 그대로 평생 부제로 살겠다는 분들이다. 대신 혼인이 허락되어 있다. 한국 가톨릭엔 없는 제도다. 사도행전 6장엔 초대교회 어려움이 등장한다. 늘어나는 교인들을 사도들이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문제해결을 위해 전담 봉사자 7명을 뽑았는데 이들이 종신 부제의 원형이다(사도 6,5). 순교자 스테파노는 일곱 봉사자 중 한 분이었다.
초대교회는 그들을 디아코누스(Diaconus)라 했다. 영어는 디컨(deacon)이다. 어원은 희랍어 디아코(Diaco)이며 동사로 심부름한다는 뜻이다. 섬기고 봉사한다는 의미로도 쓰였다. 가톨릭은 부제(副祭)로 번역했고 개신교는 집사(執事)로 번역했다. 로마서는 일꾼으로 표현했고(로마 13,4) 요한복음은 주방에서 일하는 하인이라 했다(요한 2,7). 부제들은 사도와 주교들을 보좌하며 폭넓게 일했다. 특별히 재정 관리인으로 많이 발탁되었다. 그런 이유로 박해시대 체포되어 혹독한 심문을 받았고 장렬하게 순교했다. 교회 재산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세를 거치면서 부제 역할은 서서히 사라져갔고 사제품을 위한 준비과정으로 축소되었다.
현재의 종신 부제 제도는 1962년 시작된 2차 바티칸공의회 때 부활했다. 사제가 부족한 나라에서 현실적 대안이 되도록 초대교회 부제 역할을 되살린 것이다. 자격은 35세 이상 미혼 또는 기혼남자로 직장을 가져야 한다. 혼인한 경우 배우자 동의는 필수조건이다. 수련 과정부터 아내와 함께 참석하며 부부가 소정의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부제인 남편을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다. 부제품을 받은 후 배우자와 사별하면 재혼할 수 없다. 독신자는 부제 과정 시작 순간부터 평생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 아시아에선 인도와 베트남 그리고 일본에만 있다.
교회 초기부터 부제의 주된 업무는 행정과 재산관리였다. 당연히 일정한 자격이 요구되었고 끝까지 보조자로 남게 했다. 사도들은 안수를 통해 신분을 인정했고(사도 6,6) 이후 성직 제도의 독립된 품계가 되었다. 로만칼라를 할 수 있는 이유다. 미사와 고백성사는 할 수 없지만 혼인과 장례 및 축복예절은 주도한다. 영대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늘어뜨려 매는데 천사의 날개를 상징한다. 달마티카(dalmatica)라는 독특한 예복을 입는다. 앞뒤가 막혔고 위로만 뚫려 있는 화려하면서 헐렁한 옷이다. 로마시대 겉옷으로 편하게 입던 옷이었다. [2018년 8월 12 연중 제19주일 ·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 8월 19일 연중 제20주일 가톨릭마산 8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신안동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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