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사제와 신자간의 문제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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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경호 | 작성일2011-10-06 | 조회수709 | 추천수0 | 신고 |
†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어준선님의 정의를 위한 외침을 보면서 화가 많이 나 계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사제와 신자 간의 관계는 제2의 예수님인 사제와 나, 그리고 사제직, 왕 직, 예언 직을 받은 신자와 또 다른 예수님으로 받아들일 비신자와의 관계일 것입니다.
따라서 서로 불신을 이룬다면 무조건 내가 떠나거나 상대방이 떠나는 것 또한 은총이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미사를 통하여 처음 보는 누구에게도 평화를 비는 인사를 나눕니다.
이 또한 내가 아닌 하느님의 메시지이며 때론 하느님과 나의 합심 어린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고 겉과 속이 다르기도 할 때의 내 모습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도 첫 인사로서 누구나 겸손된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는 인사를 나눌 수 있기에 이 자체는 또 하나의 성호경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업친 데 덮치는 격으로 힘들어 죽겠는데 슬프고 괴로워 죽겠는데 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가 대화의 타이밍도 모르고 돈으로 성공 척도를 재시며 나를 박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는 하느님께 그것을 내어 맡긴다면 이웃에겐 잘하려고 바둥거리거나 침묵을 병행하며 기도의 에센스인 세 마디 정도만 전하고 정작 어머니께는 같이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런 가운데 기십년 숙원이 하루아침에 망가졌다가 다시 원상태로 복귀되는, 주님의 기적을 만나고는 다시 희희낙락해지는 것이 또한 우리 자신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때의 사제 성소를 닮고자 노력하는 우리들의 결혼 성소 때의 늘 다짐하던 부부싸움의 원리(상대방 손을 잡고 눈을 바라보며 절대 화를 내지 않는다.)는 조금씩 더 회복 기운으로 지향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악은 이 틈새를 노리고 이 방법을 빌어 새것을 좋아하는 인간 심리 즉 엄청난 은총을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또 다른 이성을 꼬이는데 이용하라고 부추기기도 합니다.
사제는 교회에서 시끄럽게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을 박해하고 내 쫓기보다는 ''잠시 쉬시는 것이 어떨까요?''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열정적으로 일했다는 그 사람은 쫓겨난 것으로 스스로 여기며 동네방네 사제 흉을 보고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의 우리 자신이 무얼 하겠습니까? 그래서 세상사 인생은 고달프기 짝이 없었나 봅니다.
우리 안의 사제 잘못은 마땅히 용서가 되어야 합니다. 성체조배 원리로 용안을 마주하는 마음도 용서(얼굴 용, 마주할 서)일 테고 누구나 더 깊이 그리고 넓게 바라보려는 스스로 훈련을 통하여 어느덧 다만 용서하고 새 출발 이룰 수 있을 때 기쁜 환희를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늘로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은 이방인 가운데 선행을 많이 한 사람도 천국을 갈 수 있다고 하였다가 율법주의 분들에게 호된 질타를 받기도 하셨을 것입니다. 이때에 우리는 미사 입문 시 또다시 내 탓이오!로 가슴의 창을 세 번 두드릴 것입니다.
결국, 너와 내 안의 사제는 평신자와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는 분들입니다. 사제는 현세의 고통을 면케 해달라는 기도를 하느님께 올렸을 때 고통을 너 스스로 이겨내는 것이고 나는 가지만 쳐줄 뿐이기의 말씀을 따라 그 가지만 쳐주시는 분임을 믿으십시오. 결국, 사제는 현세와 양다리를 자주 걸칠 수밖에 없는 평신자와 달리 더욱더 깊이 그리고 넓게 영원한 생명으로 주소를 두고 기도 지향을 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와 주파수가 달라 서로 아프게 할 수도 있고 이때에 흥분이나 화냄은 금물일 때가 잦습니다. 화를 내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나약한 우리 평신자들은 화냄보다 부드럽고, 때론 설득조차 어려운 불합리한 세상사 속에서 그 사람 안의 예수님께 다만 무엇을 말할까, 무엇을 생각할까의 의지조차 체념 가운데 주님께 의탁함으로써 커다란 역전의 기적을 체험하기도 할 것입니다.
가끔 한꺼번에 정리 해고를 하는 사제들도 있을 수 있지요. 이때에도 보다 충분한 기도를 통한 사제와의 대화가 어렵다면 다시 침묵하십시오. 그리고 사제와의 대화 또한 예수님과 성모님의 대화를 묵상하시어 절대 화를 내거나 흥분하지 않도록 냉정함을 유지하시어 매듭을 풀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흥분이나 화냄으로 대사를 그르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악에 물든 졸부들을 보면 이러한 냉정성이 강하여 순진하고 저돌적인 한국인들 특히 서민들을 많이 짓밟는 것을 봅니다. 그렇지만 우리 신자들은 이때의 냉정보다 온정이 더 중요함을 믿을 것입니다.
냉정은 결국 유아독존 또는 고립감으로 이어질 때가 잦고 온정은 웃음, 엔도르핀 등과 함께 잠자는 이웃들도 깨우는 효과가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자들이 잘못했다. 나가라! 하면 작전상 후퇴도 좋다고 봅니다. 그리고 되돌아와 다만 선과 악의 영적 싸움 의지로 언젠가 찾아오던지 말든지 할 대화의 타이밍을 맞춰 열 배의 공격을 하면 그뿐일 것입니다. 그런데 성사생활이라는 용서와 화해의 탄창으로 이뤄진 사랑의 총의 성능이 아무래도 사제의 그것보다 약할 수 있으니 칼을 제대로 가르셔야 할 것입니다.
쌍날칼이신 주님의 권능에 내어 맡기면 그것이 진실이고 또한 과정이 아니겠습니까? 1당 100, 1당 1,000인 사제와의 과정과 결과를 맞힌다는 것은 아무래도 평신자로서도 또한 보이지 않는 수많은 배려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요즘 아이들 우리 아들도 그렇고 친구 따라 욕설도 입에 자주 담는 모습을 보는데 저 같은 경우는 방관에 가깝도록 기도만 하고 있습니다만 때론 엄한 사제를 두려워하여 성당 가기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사제이기 이전에 부모 책임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보편 신자인 우리는 그 부모가 성 부모님으로 보는 과정이기도 한데 과연 누구 책임일까요? 저는 이때에 답이 과연 필요한지 모르겠다. 생각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른들인 우리 싸움에 아기 예수님을 낙태, 또는 발달 장애로 태어나게 하시거나 신앙의 초보인 기복신앙으로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면 이는 분명히 우리 자신의 책임입니다. 그런 관점에서는 감정적이었던 베드로과인 어준선님은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하늘나라는 즉 주님의 나라인 이곳 또한 양도 질도 필요 없을 경우가 더 많다는 것도 기억해 두셔야 할 것입니다.
정리하건데 과연 사제에게 아이를 맡겨야 할 것인가? 내가 아이를 돌보아야 할 것인가? 가 관건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이 이렇게 지지고 볶으며 맛있는 마음의 양식을 구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으나 사제의 성체 지향과 평신자 부모들 또한 사제와 수도자들에게 가중시키고 있는 주일학교 내 아이들 문제도 함께 반성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학교보다 세상사 더 큰 걱정거리를 가중시킬 수 있는 학원 우선, 장차 돈 잘 벌기 우선의 아이 양육도 근본으로 재고해야 할 것이기에 우리가 또한 작은 관심으로부터 기적을 주님과 함께 창(창은 항시 주님 몫)출(조력은 ''나''의 몫)해야 할 것입니다. 이로써 악 속에서도 선이 내재해 있음을 보며 그 사람인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선교 또는 전교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결국, 어준선님의 지론은 선교보다 더 위대한 이 전교성월이자 묵주기도 성월에 보내주시는 주님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지 못하는 또 다른 내 자아들 역시 선교보다 우월한 전교로 이끌어야 할 것인데 묵주기도와 미사로서 푸시길 권고 드립니다.
문제지를 제출해주신 사제와 문제를 거론해 주신 어준선님께 감사를 전하며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 횟수는 삼 분의 일로 줄이심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입니다. 부족하고 죄 많은 우리이기에 삼위일체 원리로 세 가지를 한가지 횟수로 줄이자는 이야기지요. 특히 사제에 대한 성토가 그렇다고 봅니다. 왜냐면 전교 성월의 우리의 그 의지를 역행하게 하는 점입가경의 마귀의 공작들을 통한 성당을 더 멀리하게 하는 사람들의 양산 또한 만만치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라 봅니다. 이를 또한 우리 안의 마각(마귀의 생각)이라 할 수 있잖습니까?
아무튼, 한국 사람들 낙태, 제왕절개율, 교통사고, 이혼율이 세계 1, 2위면서 은하수, 시나브로, 사랑으로라는 세 개의 단어를 가장 좋아하는 것은 놀라우신 천주존재 은총이라 사료됩니다.
海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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