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예수님 이야기74: 성전 파괴 예고와 재난의 시작(루카 21,5-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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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7-28 | 조회수8,951 | 추천수0 | |
[이창훈 위원의 예수님 이야기 - 루카복음 중심으로] (74) 성전 파괴 예고와 재난의 시작(루카 21,5-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9)
- 루카 복음사가는 종말에 관한 예수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박해와 혼란의 시기를 어떻게 극복해내야 하는지를 제시하려고 했다. 사진은 소아시아(터키) 밀레토스 유적. 가톨릭평화신문 DB.
성경학자들은 루카복음 21장 5절에서 36절(또는 38절)까지를 ‘종말론적 담화’라고 부릅니다. 세상 종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성전 파괴 예고와 재난의 시작에 관한 대목을 살펴봅니다.
성전 파괴 예고(21,5-6)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하고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예고하십니다.(21,5-6)
이스라엘 역사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것은 모두 두 차례입니다. 첫 번째는 기원전 587년(또는 586년) 바빌로니아 제국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였습니다. 솔로몬 임금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버렸고 성전 기물들을 모두 노략질당했습니다.
기원전 538년(또는 537년) 바빌로니아로 유배됐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돌아오고 나서 유다 총독 즈루빠벨이 기원전 515년 파괴된 옛 성전 터에 새 성전을 지었습니다. 이를 제2성전이라고 부릅니다.
이 제2성전을 증ㆍ개축한 사람이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당시 유다 지방을 비롯한 이스라엘 전 지역을 다스린 헤로데 대왕(재위 기원전 37~기원전 4)이었습니다.
에돔(이두메아) 출신인 헤로데 대왕은 유다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기원전 20~19년에 제2성전의 증ㆍ개축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성전 구역만 기존의 두 배가 되는 대대적인 사업이었습니다. 이 성전은 기원후 64년에야 완공됐다고 하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정화하시며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에도 부분적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예수님께 성전이 46년 걸려 지어졌다고 말한 것(요한 2,20)을 고려하면, 예수님 당시에 헤로데 성전은 이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이 완전히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실제로 예루살렘 성전은 완공된 지 6년 후인 기원후 70년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 군대에 의해 파괴되고 불에 타 일부 벽만 남습니다. 그 후 당시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재위 69~79)의 명령으로 벽마저도 허물어버렸는데 서쪽 벽 일부만 오늘날까지 남아 있습니다. 이를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지요.
예수님 당시에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란 미래의 일이었습니다만, 루카가 복음서를 집필했을 때는 이미 예루살렘 성전 파괴가 역사적 현실이 되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학자들은 루카복음이 집필 연도를 기원후 80년쯤으로 잡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를 고려하면서 그다음 부분을 살펴봅시다.
재난의 시작(21,7-19)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것임을 예고하시는 예수님 말씀에 사람들은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하고 묻습니다.(21,7) 이 질문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가 언제 일어날 것이며 또 그때 어떤 표징이 나타날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성전이 지니는 의미를 생각할 때 예루살렘 성전 파괴는 유다인들에게는 파국, 곧 종말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따라서 이 물음은 종말의 때가 언제 올 것이냐 하는 질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먼저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고 말씀하시면서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지만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고 당부하십니다. 자신을 그리스도 곧 메시아라고 칭하는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 종말이 가까웠다고 현혹하겠지만 속아 넘어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고 하십니다.(21,8-9) 전쟁과 반란이 사회 혼란을 가져다주지만 그 자체가 종말의 표징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21,10-11) 민족 간 또는 나라 간 전쟁, 큰 지진과 기근, 전염병, 하늘의 표징들은 묵시문학에서 종말과 관련해 사용하는 표현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종말을 알리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라면서 그때에 제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박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과 복음을 “증언할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해서는 안 됩니다.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21,12-15)
제자들은 또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에 의해 넘겨져 더러는 죽기까지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라시면서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하고 당부하십니다.(21,16-19)
생각해 봅시다
예루살렘 성전 파괴 예고와 재난의 시작에 관한 예수님 말씀을 정리하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함께 그리스도를 자처하는 거짓 메시아들이 나타나 종말이 왔다고 사람들을 현혹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기원후 1세기에는 이스라엘 땅에서 그런 이들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그런 인물을 우리는 셋이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 테우다스와 유다 그리고 자객 4000명을 이끌고 광야로 나간 이집트인이 그들입니다.(사도 5,26-37; 21,38)
또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도 들리겠지만, 그 소문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전쟁과 반란은 나라를 분열시키고 혼란에 빠뜨립니다. 역사 안에서는 늘 전쟁과 반란이 있었고 그로 인한 정치 사회적 혼란이 따랐습니다. 종말이 오기 전에 겪어야 할 일이지만 그것이 종말이 왔다는 표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종말이 오기 전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먼저 박해를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때에 부모와 형제 친척과 친구에게서도 버림을 받고 더러는 죽기까지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에게 박해는 또한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하려고 미리 나서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어떤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해를 당할 때에, 심지어 죽임을 당할 때라도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루카 복음사가가 복음서를 썼을 때는 이미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였고, 로마 제국 곳곳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루카는 비 유다계 그리스도인들로 이뤄진 자기 공동체 신자들에게 사회적 혼란과 박해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예수님 말씀을 통해 제시하려고 했다는 것이 성경학자들의 일치된 해석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7월 29일, 이창훈 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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