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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이스라엘의 예언자, 오늘날의 예언자: 예수님을 쏙 빼닮은 예레미야와 그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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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8-14 조회수9,309 추천수1

[이스라엘의 예언자, 오늘날의 예언자] 예수님을 쏙 빼닮은 예레미야와 그 제자들

 

 

이번 호는 대 예언자 예레미야와 유배 때 그의 제자들의 활약을 알아보자.

 

 

고대적 본문의 상황

 

예레미야서 그리스어 본문(JerG)은 히브리어 본문(JerH)보다 상당히 짧다. 구약 성경은 대개 히브리어 본문(MT)을 그리스어로 번역(LXX)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 자체가 낯설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예레미야서의 그리스어 본문(JerG)에만 있고 히브리어 본문(JerH)에는 없는 단어가 3백 개 정도 되고, 그 반대의 경우가 3천 개 정도된다. 게다가 25장 이후부터는 아예 장의 배열이 무척 다르다. 한마디로 본문 자체가 상당히 불일치하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대개 그리스어 본문(JerG)이 번역했던 본디의 히브리어 본문(Vorlage)이 더 오래된 것이고 현재의 히브리어 본문(JerH)이 전승 과정에서 확장된 것이라고 본다.

 

둠(B. Duhm)은 예레미야서의 이런 상황이 “이를테면 관리자 없는 숲이 자라고 넓어지는 것처럼” 서서히 확장되어 전승되었다고 표현했다. 이런 의미에서 예레미야서는 고대 문헌의 일반적 본문 상태를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예레미야서 본문은 이 ‘비탄의 예언자’와 그 제자들이 살았던 어지러운 역사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 같다.

 

 

어지러운 시대의 외로운 예언자

 

예레미야는 망국 직전의 어지러운 시대를 살았다. 예레미야서에 따르면 아나톳 사람 힐키야의 아들 예레미야는 요시야 임금 13년에 예언 활동을 시작하여 여호야킴 임금과 치드키야 임금까지, 곧 유배 직전까지 활동하였다(1,1-3). 하느님 백성이 세운 나라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요시야 임금의 개혁과 그 개혁이 꺼져 가는 것을 체험하고 망국의 비참함을 보았다.

 

예레미야가 살았던 시대에 이스라엘 내부의 분열과 반목의 상황을 간략히 살펴본다. 요시야 임금과 백성과, 예레미야 등 신명기계 신학자들과 예언자들이 모두 주님의 뜻에 따라 나라를 개혁하길 원했다. 그 반대편에서 배타적 바알 숭배자, 주님과 바알 숭배를 동시에 허용하자는 이원주의자, 그 밖에 다른 종교혼합주의자 등이 친이집트파나 기득권층 등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상황이었다.

 

편의상 이렇게 크게 두 세력으로 구별하지만, 사실 이들 세력을 각각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각 정파나 개인들은 상황에 따라 서로 반목하거나 갈등했다. 그저 우왕좌왕하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망국 직전의 나라가 그러하였듯 분열과 이합집산이 일상적이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부와 권력에서 소외된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시대에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예언자는 고독했다. 그는 혼란스런 망국의 상황에서 홀로 깨어 있는 사람이었다. 종교혼합주의자나 친이집트파 등의 보수파들은 그를 따돌리고 조롱하였으며 심지어 박해하였다.

 

그런데 그의 고독의 원인은 따지고 보면 하느님 때문이었다. 예레미야는 하느님께 “주님, 당신께서 저를 꾀시어 저는 그 꾐에 넘어갔습니다.”라고 고백하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제가 날마다 놀림감이 되어 모든 이에게 조롱만 받습니다.”(20,7) 하고 탄식하였다. 예레미야는 저수 동굴 진흙 바닥에 여러 번 갇혀 있기도 했다(37,16; 38,7 참조). 그는 집에도 가지 못하고 “예루살렘이 점령당하는 날까지 경비대 울안에서 지냈다”(38,28).

 

그렇지만 아무리 외롭고 힘들어도 하느님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예레미야는 오직 하느님의 말씀을 가슴에 품은 채 시대와 불화하고 권력자들을 경고했으며 그 때문에 박해받은 하느님의 의인(義人)이었다.

 

 

비유를 통해서 백성을 깨우치다

 

예레미야는 이를 돌파할 수단으로 새로운 방법을 썼다. 그것은 독특하고 흥미로운 상징 행위와 비유로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었다. 몇 가지 비유를 예로 들면서 그가 썼던 방법의 의미를 짚어 보자.

 

예레미야서 13장에는 아마포 띠의 가르침이 있다(1-11절 참조). 아마포 띠는 당시 속옷의 기능을 했다. 예레미야는 아마포 띠를 물에 적시지 말고(=세탁하지 말고) 그저 강가의 바위에 숨겨 두어 보라고 한다. 그러면 곧 썩어 버려 본디 속옷으로서 기능을 못할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 백성이 주님의 말을 듣지 않고 다른 신을 섬기면 결국 썩어 버려 아무 쓸모없이 될 것이다.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 경고하셨다. “이 띠가 사람의 허리에 붙어 있듯이 내가 온 이스라엘 집안과 온 유다 집안을 나에게 붙어 있게 한 것은 … 그들이 내 백성이 되어 명성과 칭송과 영광을 얻게 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 않았다”(11절).

 

하느님 백성은 자기 자신을 늘 새롭고 정결한 상태로 유지하여 하느님께 붙어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노력을 통해 하느님 백성은 명성과 영광을 얻게 된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고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살면 몸과 마음이 썩어 버려, 결국 악취만 진동하게 될 뿐이다.

 

예레미야는 이처럼 일상적이면서도 쉽게 이해되는 언어를 사용하여 비유를 들었다. 이스라엘의 공식적 기관이라 할 수 있는 왕실 관리, 성전의 사제, 주류 예언자들의 언어는 훨씬 더 개념적이고 이론적이며 우아하였을 것이다.

 

그들의 언어에 비해 예레미야의 비유와 상징 행위는 어떤 면에서 자극적이고 천박하다고 폄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가난한 민중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즐겨 썼고, 그들이 듣고 그들 사이에 하느님의 가르침이 가장 쉽게 확산될 수 있는 방법을 사

용하였다.

 

예레미야가 하느님 백성의 ‘공식 통로’에서 소외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썼을 것이다. 그는 주류 사회에서 따돌림과 박해를 받았기에 이스라엘의 공식적 설교나 제1 성전의 업무 등에서 좋은 기회를 얻지 못하였을 것이다.

 

또는 그 스스로 그런 기회에 대한 기대를 접었을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백성들에게 직접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방법은 가장 쉬운 일상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는 하느님과 백성을 직접 이어 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비유는 그 자체로 훌륭한 신학이다

 

예레미야의 비유는 효율적 수단이었을 뿐 아니라 신학을 담는 훌륭한 그릇이기도 했다. 예레미야서 18장과 19장에는 옹기그릇과 옹기장이의 비유가 나온다. ‘옹기그릇과 옹기장이’(18,1-12)에서 옹기장이는 물레를 돌리며 그릇을 만든다. 그런데 자기 마음에 드는 그릇이 나오지 않으면, 그릇을 뭉개 버려 다시 진흙으로 만든다(심판). 그리고 계속해서 그릇을 다시 만든다.

 

이런 비유를 통해 예레미야는 하느님(옹기장이)의 영원한 창조의 권능에 대해 피조물(옹기그릇)인 우리 인간의 겸손을 촉구한다. ‘질그릇을 깨며 예언하다’(19,1-15)는 비유는 더 직접적이다. 옹기장이가 질그릇을 부숴 버리는 상징 행위를 통해 예레미야는 임박한 재앙, 곧 예루살렘 함락과 이스라엘 민족의 유배를 경고한다. 이 비유에서 하느님은 “옹기장이가 다시는 주워 맞출 수 없게 질그릇을 깨 버리듯이, 내가 이 백성과 이 도성을 그렇게 부수겠다.”(11절)며 경고의 말씀을 내리신다.

 

두 번에 걸친 옹기장이의 비유에서 예레미야의 주된 목적은 하느님의 경고뿐 아니라 당신의 자비로운 사랑과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옹기장이 하느님은 “눈에 드는 다른 그릇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그 일을 되풀이”(18,4)하신다. 곧 하느님의 창조와 심판의 최종 목적은 인간을 다시 진흙으로 되돌리시는 것이 아니다. 본디 원하셨던 아름다운 그릇을 완성하시는 것이다. 그 일에서 인간의 순명과 협조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는 근본적으로 하느님 손에 있는 진흙 같은 운명임을(18,6 참조) 깨달아야 한다.

 

이 비유들은 구약 성경의 창조 신학 발전에 매우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히브리어로 ‘창조주’를 뜻하는 단어는 ‘요체르’이다. 그런데 요체르는 본디 ‘옹기장이’라는 뜻이다. 구약 성경의 여러 곳에서 요체르는 그저 옹기장이로 옮긴다(시편 2,9; 애가 4,2; 1역대 4,23 등 참조). 요체르가 ‘옹기장이’라는 뜻을 넘어서 ‘창조주’라는 의미를 획득하게 된 신학적 발전 과정에서 예레미야의 역할은 부정할 수 없다. 가장 쉽고 일상적인 언어로 하느님의 신비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신학적 개념이 도약하고 심화된 것이라는 점은, 현대의 신학자들에게도 큰 귀감이 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대목에서 세상의 오해와 박해를 받은 한국 순교자들이 가난한 옹기장이였음이 떠올랐다. 그리고 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호 ‘옹기’도 새삼스레 생각나 우리 교회를 향한 하느님의 깊은 사랑과 섭리를 느꼈다.

 

 

예수님을 예고하다

 

예레미야의 비유와 상징 행위는 이 밖에도 무척 다양하고 풍부하다. 본문의 상황이 고대 문헌의 모습을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 주기에 이런 비유들의 진정성은 오히려 더 높아진다.

 

그런데 그런 비유와 상징 행위를 꼼꼼히 읽고 성찰하면 필연적으로 예수님이 떠오른다. 동시대 동포들의 오해와 모진 박해를 무릅쓰고 하느님의 참뜻을 전한 점도 그렇고, 쉬운 비유와 상징 행위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신비를 직접 전달하려고 끝까지 노력한 점도 그렇다. 그의 삶과 신학은 구원자를 쏙 빼닮았다. 예레미야를 묵상할 때마다 예수님의 그림자가 선명히 비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유배 중의 제자들

 

예레미야의 제자들은 유배 중에 스승 예레미야의 일을 계속했다. 알베르츠(R. Albertz)는 본디 예레미야 예언자들과 신명기계 신학자들이 깊은 유대 관계를 맺었고 신학적으로 무척 가깝기에 유배 중에 그의 제자들도 신명기계 신학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라 보았다.

 

그래서 유배 중의 제자들을 ‘예레미야-신명기계’(JerD) 신학자들이라고 불렀다. 신명기계 신학자들(DtrG)은 유배 중에 신명기계 역사서를 편찬하여 후손들에게 역사적 교훈을 물려주려고 노력하였다. 그 반면, 예레미야-신명기계(JerD)는 그런 문서 활동 보다는 유배 중의 백성들 사이에서 주로 설교와 친목을 통해 백성들을 직접 가르치고 교화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두 집단의 활동 방식이나 초점은 조금 차이가 나지만, 근본적인 신학은 같다. 망국과 유배의 교훈을 깨닫고 오직 주님만 섬기라는 것이다.

 

* 주원준 토마스 아퀴나스 -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고대 근동과 구약 성경을 연구하는 평신도 신학자이다. 주교회의 복음선교위원회 위원이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 위원이다. 저서로 「구약 성경과 신들」, 「신명기 주해」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8년 8월호, 주원준 토마스 아퀴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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