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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솔로몬의 일천번제란? 카테고리 |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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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07 조회수688 추천수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솔로몬이 파라오의 딸과 혼인하다.(1열왕3,1-3)

1절 : 솔로몬은 이집트 임금 파라오와 혼인 관계를 맺었다.;
이 혼인은 무엇보다 정략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솔로몬은 이 혼인으로
나중에 파라오에게서 해안 길을 통제하는 성읍 게제르를 얻게 된다(9,16).
그런데 여기 나오는 파라오가 누구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는 파라오의 딸을 맞아들여, 자기 집과 주님의 집과 예루살렘을 에워싸는
성벽을;
 예루살렘은 여러 세기를 두고 계속 확장되었다. 솔로몬이 도성을 어떻게 튼튼하게 만들었는지는 불완전하게 알려졌는데, 이 공사는 예루살렘의 초기 건립
단계에 속한다. 

다 짓기까지 그 아내를 다윗 성에 ;
다윗 성은 다윗이 정복한(2사무5,7-9) 예루살렘의 옛 성체를 가리킨다.
이곳에 파라오의 딸을 위한 특별한 집이 세워진다. (1열왕7,8)

머무르게 하였다. 2절 : 주님의 이름을;
이름은 히브리 사상에서 그 주체와 동일한 기능을 갖는다.

위한 집이 그때까지 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은 산당에서 ;
산당은 (1사무9,12 각주 참조) 정상에 있는,자연적이거나 인위적인 높은 곳을말한다. 이곳에서 가나안 사람들은 늘 자기네 신들에게 제사를 바치고, 풍산 신 숭배와 죽은 이들에 대한 예배와 그리고 아세라 여신이나 남근을 상징하는 신성한 말뚝이 마련되었다. 산당은 흔히 풍산을 상징하는 신성한 나무들과 연관된다. 산당의 기원은 아마도 유목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팔레스티나에 정착할 때에 가나안 사람들의 풍습에 강한 영향을 받아, 이 산당에서 주님께 그들의 제사를 즐겨 바쳤다. 그러나 이런 종교 형태는 당연히 예언자들의 혐오와 비난을 사게 되는데 (예레 3,2; 에제 20,28-29; 호세 10,8; 아모7,9 등), 그들의 비판 운동과 정신이 열왕기에 반영되어 있다. 산당을 지배하던 혼합주의는 거기서 숭배되던 신의 정체나 성격과 관련하여 그 숭배자들에게 늘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솔로몬 시대에는 산당이 이스라엘의 신앙에 가져올 위험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나 히즈키아 통치 시대부터 (2열왕18,4) 특히  기원전 622년 요시아 종교 개혁 때부터 산당에서 바치는 제사를 금하게 되었다. (2열왕22,23;특히 23,5.15.19). 그리고 모든 경신례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거행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런 결정들은 매우 형식적이고 임시적이었다. 산당의 이용이 완전히 근절된 계기는 바빌론 유배였다.

제사를 드렸다. 3절 : 솔로몬은 주님을 사랑하여, 자기 아버지 다윗의 규정을 따라 살았다. 그러나 그도 여러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향을 피웠다.
2절과 3절은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제사를 바친 잘못을 변명하고자 쓰인 것처럼 보인다.

솔로몬이 기브온에서 꿈을 꾸다

4절 : 임금은 제사를 드리러 기브온에 갔다. 그곳이 큰 산당이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그 제단 위에서 번제물을 천 마리씩 바치곤 하였다.;
(2역대 1,7-12참조)

솔로몬은 그곳 주님 앞, 곧 만남의 천막 앞에 있는 청동 제단으로 올라가 그 위에서 번제물 천 마리를 바쳤다. (2역대 1,6 참조);
번제물의 수가 엄청난 것으로 보아 솔로몬 자신이 직접 이 제물을 바친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겠다. 히브리 말 본문의 표현도 솔로몬이 다른 사람들을 시켜 이 많은 번제물을 바치게 한 것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출처: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주석성경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묵상을 하셔서 주님과 함께 복된 삶이 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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