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수난의 신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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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9-22 | 조회수8,248 | 추천수0 | |
수난의 신비
재판받으실 때 그분이 보여주신 의연함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은 유다 이스카리옷의 배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배반자는 마음이 지극히 완고해져서 최후의 만찬 때의 친밀함도, 그리스도의 겸손한 봉사의 행위도, 그리스도의 감미로운 말씀도 그의 악한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이에게도 변함없는 사랑과 애정을 보여주십니다. 악의에 가득 찬 유다의 입술이 한 점 거짓도 찾아볼 수 없는 당신의 입술에 닿는 그 순간까지 그러셨습니다. 그분은 유다에게 완고한 마음을 돌릴 모든 기회를 제공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예수님의 몸값을 흥정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겟세마니 동산에서 수난을 준비하십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이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라고 하시며 번민하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님의 인간적인 마음과 정신은 심판하고 보복하는 하느님의 얼굴 앞에서 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철저히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죄를 향한 아버지의 분노가 죄를 스스로 짊어진 자신에게로 향함을 보았고, 아들을 ‘버리는’ 거룩한 아버지의 등 돌림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겟세마니에서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되었습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예수님께서 고뇌에 싸여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졌다.”(루카 22,44)
이제부터 수난의 장미가 진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피땀으로 우리는 나약함을 벗어버리게 되었고, 우리의 영적인 몸 전체, 즉 교회의 상처는 치유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구세주 하느님에 의하여 죽음의 형벌에서 구원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하시며 하느님 뜻에 온전히 순명하셨습니다. 배반자가 피에 굶주린 이들을 인도하여 나타났을 때 그분은 그들에게 “내가 당신들이 찾는 그 사람이오”라고 의연히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대사제 가야파의 장인 안나스에게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안나스는 예수님에게 아무런 질문도, 지시도 하지 않고 가야파에게로 보냅니다.
이제 첫 심판이 이루어집니다. 이 첫 심판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否認)하게 됩니다. 마지막 부인의 말이 입에서 떨어지는 순간 예수님의 눈이 그의 눈과 마주칩니다. 그리고 수많은 병사에게 매 맞으시고 조롱감이 되십니다. 이렇게 그분의 심판은 인간의 비열함과 나약함, 잔악함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심판에서 예수님은 가야파 앞에서 의연함을 잃지 않고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였다. 나는 언제나 모든 유다인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다. 은밀히 이야기한 것은 하나도 없다. (…) 내가 잘못 이야기하였다면 그 잘못의 증거를 대 보아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선하신 분임을 드러내셨습니다.
학대받으실 때 그분이 보여주신 인내심
예수님이 잡히시자 도망친 제자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충실했던 베드로의 부인, 그분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호하던 유대인들의 거부 속에서 가야파에게서 빌라도에게로 넘겨집니다.
제관들은 그리스도를 결박하여 빌라도 앞으로 끌고 가서 “죄를 모르는”(2고린 5,21) 그분을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분이 재판관 앞에 털을 깎이는 어린 양처럼(이사 53,7참조) 고요하고 온순하게 서 있을 때 거짓말쟁이들과 악당들은 여러 거짓 죄목들로 그분을 고발하였습니다.
사악하고 어리석은 그들은 빌라도의 제의에서 어린 양이 아니라 늑대를, 생명이 아니라 죽음을, 빛이 아니라 어둠을 선택했습니다. 빌라도는 그분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그리스도를 증오하는 그들의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사형에 처할만한 죄목을 찾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심판을 내립니다.
하지만 이러한 심판의 권능 또한 하느님으로 나오는 것이기에 예수님은 모든 것을 인내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인내심은 우리도 복된 성부께서 내리는 매질을 용기 있는 인내심을 가지고 견딜 수 있도록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에서 도망치려 애쓰지 말고 오히려 껴안아야 합니다.
이제 그분의 몸은 로마 병사들에 의해 살이 찢어지고 피가 흘러넘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우리가 파멸이라는 정당한 선고를 받지 않게 하시기 위해, 흠 없는 어린 양이 기꺼이 부당한 선고를 받으심을 보아야 합니다. 그분이, 당신이 훔치지 않은 것을 우리를 위해 보상해주심을 보아야 합니다.(시편 68,5참조)
우리는 그분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경의와 동정심을 그분께 보여 드리지 못하고 있음을 반성하여야 합니다. 선한 일을 오랫동안 지속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인내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통당하실 때 그분이 보여주신 용기
빌라도는 사악한 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사형 선고를 내렸습니다. 불경한 병사들은 예수님을 총독 관저로 데리고 가서 그분 주위에 전 부대를 모았습니다. 그분의 옷을 벗기고, 그분에게 붉은 망토를 둘러 걸치게 했습니다. 또한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서 그분의 머리에 얹어 놓고 그분의 오른손에는 갈대를 그리고 그분 앞에 무릎 꿇고 조롱하며 “유다인의 왕, 만세!” 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또 그분에게 침을 뱉은 다음 갈대를 빼앗아 그분의 머리를 쳤습니다.(마태 27,27-30)
우리의 왕이요 하느님이신 분이 우리를 영원한 비참에서 구하기 위해, 교만이라는 대죄에서 구하기 위해 마치 나병 환자처럼, 또는 가장 비참한 사람처럼(이사 53,4; 3 참조) 취급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조롱과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보여주신 지극한 겸손, 인내를 통하여 드러나는 용기로 그분 안에서 우리의 비참한 삶을 이겨낼 힘을 얻게 됩니다.
이제 예수님은 손수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십니다. 병사들은 그분의 손과 발을 날카로운 못으로 꿰뚫어 그 잔인하게 찢긴 육신을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전리품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그분의 옷을 한 몫씩 나누어 가지고 솔기 없이 통으로 짠 속옷은 제비를 뽑아 한 사람이 가졌습니다.
우리는 죄 없으신 예수의 손과 발이 못에 뚫리었을 때 흘러내린 성혈에서 그분의 깊은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피로 물든 그분의 육체는 가장 열렬한 사랑의 표징으로 드러납니다. 십자가 위에서 사랑과 수난은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하나는 더 열렬하고자, 다른 하나는 더 진홍빛으로 물들고자 겨루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강도들 사이에 높이 매달려 계십니다. 예수님께 당신이 왕이심을 고백하고 자비를 간청한 강도는 그분에게서 영원한 천상 행복을 약속받지만, 그분을 다른 무지한 이들과 마찬가지로 조롱한 다른 강도는 어두운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죽고 맙니다.
‘Passion of Christ’에서 이 부분을 묘사할 때, 예수님을 조롱한 강도가 까마귀에게 두 눈을 파먹히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이는 당시의 진리에 눈 먼 이들이 얼마나 영적으로 메말라 있었는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든 수난을 왜곡하지 않고 온전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수난은 예수님이 우리의 사랑이며 우리를 치유하기 위해 무수한 상처를 받아 돌아가셨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그러한 모든 고통에서 구하기 위해 고통의 물결이 당신의 영혼까지 흘러들어오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죽음에 대한 그분의 승리
그리스도의 수난은 이제 그 절정, 곧 죽음에 다다랐습니다. “다 이루었다! 제 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기나이다”라는 말을 마치시고 숨을 거두시자 하늘은 그 빛을 잃었고, 샘은 말라 버렸으며, 땅은 뒤흔들리고, 바위들이 갈라졌습니다. 그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습니다.”
옛 아담으로 인해 끊어졌던 하느님께 나아가는 다리가 이제 새 아담의 십자가,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다시 이어진 것입니다. 이제 우리 안에, 교회 안에 하느님이, 주님이 머무시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힘없이 매달리신 예수님의 옆구리로부터 교회가 형성되도록, 또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보리라”고 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하느님의 섭리는 한 병사가 그분의 신성한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 구원의 대가로 피와 물이 철철 흘러내렸습니다. 그것은 그분 심장 깊은 곳에 있는 샘에서 용솟음쳐 나와 교회의 성사들이 은총의 생명을 베풀 수 있도록 풍부한 효력을 제공하였고,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이들에게는 생명의 물이 되었습니다.
주 그리스도는 한없이 흘러내리는 당신 자신의 피로 붉게 물들었습니다. 고뇌의 땀으로, 병사들의 채찍질과 가시관으로, 못으로, 마지막으로 창에 찔림으로 인해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군중의 외침에 따름으로써 덧없는 영광을 구하기보다는 육신이라는 옷을 박탈당하고 죽음의 감옥으로 내려가기를 택하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무덤 안에, 죽음의 깊은 어둠 속에 묻히셨습니다.
[성모기사, 2018년 9월호, 한규희 보나벤투라(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 관구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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