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왜 예수님을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라 하는가?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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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1-12-15 | 조회수921 | 추천수1 | 신고 |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그리스도의 사제직 교리와 관련하여 히브리서가 한 기여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신비를 사제직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것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사실 신약성경 전체에서 유일하게 히브리서에서만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사제와 대사제라는 칭호가 쓰인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바로 이 사실을 통하여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고 경신례라는 구약 성경 전통의 주요 흐름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가 표현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제사와 전례, 사제직,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모시는 성소 등이다. 언뜻 보기에, 예수님과 그분의 업적은 경신례라는 종교의 외형적 표현 방식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예수님께서는 사제 계층에 속하지도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사제의 어떤 직무를 수행하겠다고 나서신 적도 전혀 없다. 골고타 동산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장면에서도 겉으로는 아무런 경신례의 특성을 볼 수가 없다. 구약 성경의 제사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과 그분의 백성을 하나로 연결해 주는 의식이다. 반면에, 예수님의 죽음은 법적인 형벌의 결과이다. 십자가는 그 벌을 받는 사람을 하느님의 백성에게서 치욕스럽게 잘라 내는 사법 행위이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 지니는 희생의 성격을 완전히 파악하려면 이중 '도약'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경신례의 거행과 결부된 전통적 개념의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겉으로 벌어지는 모습 너머의 그 깊은 뜻을 헤아려야 한다. 예언서와 예수님의 말씀에서 영감을 받고 (이사 53,10; 1코린11,25) 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파스카와 일치하는 것과 몇몇 정황에서 착상을 얻은 초대 교회에서, 바로 그러한 쪽으로 이해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로마3,25; 1코린5,6; 에페 5,2; 1베드1,19 참조). 그리고 히브리서에서 가장 명료하게 밝혀진다. 이러한 결론은 예수님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짐승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비롯한 구약 성경의 여러 경신례와 면밀히 비교한 끝에야 비로소 얻어진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대로, 이러한 이른바 '옛것들'을 읽어 가려면 현대의 독자들은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신자들을 새로운 것으로 이끌어 가려고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새것' 으로 올라가려면 '옛것'을 통과해야만 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수난 끝에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에게서 사제직이 완벽히 실현되었음을 깨닫는다. 영광스러운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동시에 사람들의 맏이로서, 그들에게 하느님 아버지께 이르는 길을 열어 주신다. 이로써 그리스도께서 대사제이심이 분명해진다. 그분께서는 아론의 사제직을 이어받으시기는 하지만 (히브5,4-5), 그분의 사제직은 아론의 것을 뛰어넘는다. 시편 110편의 증언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멜기체덱의 뒤를 잇는' 새로운 부류의 사제를 세우기를 원하셨다(히브7,1-28). 그리스도의 죽음과 영광스러운 부활은 진정한 희생이다. 그리고 이 희생이야말로 구약의 모든 제사를 대체하는 유일한 참 제사이다. 사실 구약의 제사는 현세적이고 지상적인 차원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관습적인 행위로 이루어진 그것은 인간의 양심을 근본적으로 정화할 수도 없었고(히브9,9;10,1-4), 사람을 하느님에게까지 들어 올려 줄 수도 없었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죽음은 관습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니라, 당신 자신을 바치는 완벽한 희생이다(히브9,14).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온 인성으로 죽음을 받아들이시어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신다(히브5,8; 10,9-10). 그와 동시에 인간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고 하느님과 밀접한 관련을 맺게 해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통하여, 천상 사제가 되시고(히브9,24) 죄를 없애는 정화를 실현하셨으며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세우셨다(히브9,15; 13,20). 그분의 피는 우리가 하느님께 자유로이 다가갈 수 있게 해 준다(히브10,19). 이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하신 일로, 그분께서 사람들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하느님이 당신의 아드님을 통하여 인류에게 이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셨기 때문이다(히브2,10) 출처: 주석성경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 입문에서 발췌 이스라엘에서는 사제직이 세습제였기 때문에, 사제직에 오르려면 족보처럼 사제 가문임을 밝혀 주는 기록이 있어야 한다(탈출28,1; 레위21,13-15; 민수3,10; 18,1; 에즈 2,61-63; 느헤7,63-65). 그런데 창세 14장에는, 아브라함이 사제로 인정하고 경의를 표한 멜키체덱의 출생이나 집안 등에 관한 기록이 하나도 없다. 물론 성경 저자가 필요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브리서 필자는 라삐들의 주석 원칙에 따라, 성경에 없으면 실제로도 없는 것으로 해석하여 멜키체덱을 현세적 제도를 초월하는 신비스럽고 예언적인 인물, 곧 "하느님의 아들"과 같은 인물로 해석한다. 이러한 면에서 멜키체덱은 참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된다는 것이다. 창세기는 또한 이 멜키체덱의 죽음을 말하지 않는다. 히브리서 필자는 이 점에서도 라삐들의 주석 원칙에 따라, 멜키체덱의 사제직에는 시간의 제한이 없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것이 바로 멜키체덱을, 죽음과 함께 사제직도 끝나는 (민수20,24-28) 유다교 대사제와 구분 짓는 특징이다. 이 특징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사제직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그래서 히브리서 필자는 이 점을 여러 차례에 걸쳐 강조한다(히브8,15-17.23-25). 히브리서 필자는 아브라함이 멜키체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멜키체덱의 사제직이 아브라함의 후손인 레위 가문의 사제직보다 우월함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단락에서(히브7,11-28) 그리스도와 멜키체덱의 유사성이 시편 110,4로 입증될 때, 필자의 논증이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사제직 역시 레위인들의 사제직보다 뛰어나다는 것이다. 출처 : 주석성경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 7장 각주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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