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카인(Cain)이 자신의 동생인 아벨(Abel)을 살해한 것은 아벨에 대한, "envy[질투, 칠죄종들 중의 한 개]" 때문일까요, 아니면 "시기[jealousy, 열정(zeal)과 어원이 같음]"일까요?
답]카인의 시기[猜忌] 때문이다.
질투[嫉妬]와 시기[猜忌], 그 말이 그 말이라고 여기면 그만인 그 말을 굳이 따지려니 질투가 시기가 되지 않나 되레 걱정이다. 나의 질투가 시기로 발동하려기에 몇 마디 적어본다.
‘질투와 시기’, 아예 따지려면 우리말의 정의부터 따지자. 여러 기준을 이리 보고 저리 보고해도 그 기준이 그 기준이고 그게 그거다. 굳이 따지지 않는 게 맘 편하다. 우리말과 한자[漢字] 사이에 오는 문화적인 혼선이리라.
영어는 접어두자. 왜? 내 ‘스마트 폰’의 ‘한영사전’에는 시기도 [envy, jealousy]요, 질투도 [jealousy, envy]가 다 적혀 있기에. 한자어권[韓字語권; 특히 한.중.일]에 한국/중국/영어로 성경을 다 정의하려하니 이렇게 답답할 노릇이다.
한국 사람인 우리도 이렇게 답답할 터인데, 미국 사람은 우리보다도 더 답답했으리라. 그도 그러할 것이 아람/그리스/라틴어 등인 성경의 기록물을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더없이 답답했으리라.
영어권의 사람들도 이렇게 영어로 성경을 만들면서 더 혼돈했을 것이고, 지금의 우리 시기/질투 보다 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영어와의 비교는 여기에서는 나는 아예 빼련다. 그게 속 편하다. 그러한 면에서만 질투/시기의 그 속뜻을 차분히 정의해 보자.
1]나와 관련된 것이라면 질투이고 관련이 없다면 시기이다.
2]사랑과 연결된다면 질투이고 아니면 시기다.
3]발생 시점에 좋은 의미[사랑이 있기에]가 담긴 것이라면 질투이고 않았다면 시기이다.
이렇게 나와의 관계[그 문장의 ‘주어가 누구인가?’의 의미], 중요 내용의 의미, 그리고 표현 시점의 ‘좋고 나쁨’으로만 구분하면 그만이다. 이 큰 틀만 유지하면서 많은 쪽으로 적용하면 된다. 그리고도 틀리면 어떠냐? 이렇게 ‘묻고 답하기’에 글 쓰면 될 거다.
그런 관점에서 질문[카인(Cain)이 자신의 동생인 아벨(Abel)을 살해한 것은 아벨에 대한, "envy[질투, 칠죄종들 중의 한 개]" 때문일까요, 아니면 "시기[jealousy, 열정(zeal)과 어원이 같음]"일까요?]의 답을 풀어보자.
나와 관련이 없는 카인이라는 남이다.[그래서 ‘시기’] 사랑과는 관련이 없다.[그래서 또 ‘시기’] 발생 시점에 좋은 의미가 아니다.[그래서 또또 ‘시기’]
그래서 ‘카인(Cain)의 시기 때문에 자신의 동생인 아벨(Abel)은 살해당했다.’라고 표현을 해야 한다.
따라서 하느님에게는 질투뿐이지 시기는 없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순수한 겸손이 담긴 질투는 참 좋다. 그러나 이 질투가 사랑이 없는 시기로 변질하여 겸손을 아예 찾을 수 없어 가끔은 아쉬움을 남기곤 한다.
사랑이 넘치는 믿음의 사회는 겸손을 전제로 한 삶이 대부분이다. 그곳에는 양보의 미덕이 생겨 질서가 유지된다.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네 사회는 아직도 겸손이 부족하다. 사랑이 담긴 질투보다는 사랑이 결핍된 시기가 참 많다.
나의 이 글이 ‘사랑이 담긴 질투’로 이해되길 설날 이 연휴에 기대해 본다. 다들 풍성하고도 즐거운 설날 되십시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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