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1]3박 4일 대만 피정[말이 피정이지 여행이다.]을 막 끝내고 와 PC를 켰다. 참으로 답답하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다. 분통이 터져 말문이 막혀 이렇게 글로 쓴다. 사실 이번 일정은 ‘대만 피정’이 아니고 여행으로, 그것도 단면적인 장개석 총통의 개인 전기와 대만의 역사 공부나 다름없었다. 중정[中正]기념관, 즉 장 총통 기념관이 이 시각 가장 인상에 남는다. 그것도 역사적 사진으로. 장통과 루즈벨트 대통령/처어칠 경, 장통과 맥아더 원수, 장통과 죤슨, 장통과 레이건, 장통과 박정희(?)의 사진[사진 촬영시의 당사자 직함, 순서, 그 용도 등은 사실이 이 시각엔 일부 오기도 있을 것임을 밝힘.]이 기억된다. 대만의 역사에 중국의 역사는 없었다. 장통과 모택동, 장통과 주은래 등의 사진은 아예 없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것들의 많은 사진은 있었을 것이다. 신해혁명 후 장통, 모택동 주은래 등은 혁명 동지 아닌가? 그러나 역사는 그들을 적으로 갈라놓았고, 대만의 역사가 있는 그곳 전시관에는 본토[本土]의 현대사는 없었다.
주제 #2]이번 질문은 구약성서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큰 사건이 바로 탈출기인데, 이런 큰 사건이 ‘왜 이집트의 역사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지요? 만일 이집트의 역사에 탈출기가 기록되어 있다면 어디에 어떤 형태로 기록되어 있는지요?’이다. 구약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의 일부이다. 그리고 ‘탈출기’는 구약의 복음서나 다름없다. 창세기가 하느님과 개인[노아, 아브라함, 야곱]과의 관계라면 탈출기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이며, 신약에서의 복음서와 같이 탈출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의 기초가 되는 기쁜 소식이기에. 이 기쁜 소식을 역사성에 관련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 탈출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것은 이 탈출기가 현대의 ‘역사’개념에 맞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고백과 그것을 묵상하기위한 신학적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성경이외의 어떤 문헌도, 특히 이집트 문헌조차도 현재로서는 성경의 이야기를 확인해 줄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 책의 편집자들은 역사적 사실에 여러 의문을 가졌지만 그 의문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것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었다.
주제 #3]그런 관점에서 편집자조차 역사성의 일부를 인정하는 이 탈출기를 이렇게 폄하하면서, 심지어는 성경의 주인공인 예수님을 이렇게까지 무지막지하게 묘사할 수가 있겠는가? ‘댓글’이기에 ‘뺀글’로 보자면 그만이지만 울분에 겨워 일부 보완된 그 사례를 한번 나열해 본다.
댓글 #1]햇수로 이제 3년이 되어갑니다만 예루살렘 성지순례 시에, 이집트의 룩소르, 왕들의 계곡, 그리고 카이로 박물관 등등을 또한 들렀는데 관광 가이드의 설명이, "당시의 이집트 파라오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치적들, 잘한 일들을, 주로 비문 등의 형식으로, 기록으로 남기게 되는데, 따라서 탈출기에 등장하는 바는 당시의 파라오가 패배한 전쟁에 해당하였을 것이므로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있으며, 이 설명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댓글 #2] 그런데, 비문이나 신전 등에 주로 왕들(파라오)의 치적뿐만 아니라, 전쟁의 기록이 주를 이루는 것은 어떤 국가 어떤 문명이나 공통된 사항인데, 패배한 전쟁은 빼고 기록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라는 의문이 듭니다. 왜냐하면 왕이 기록하는 것만이 아니라, 주변국, 개인, 또는 전문적인 사관 등이 기록하는 것이 조금은(하나라도)남아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동북아의 역사기록물은 주로 중국의 사서에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에 왜, 동이 등의 기록이 있죠.
댓글 #3]예를 들어, 사관이 직무로서 모든 것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제도가 문화권이 다른 고대 이집트 사회에서 허용되었는지에 대하여서는 저도 모릅니다.
댓글 #4]탈출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의문 - 심지어는 부정까지 -이 생기는 것입니다. 모세라는 인물에서부터 탈출 시기, 탈출한 히브리인의 숫자 또는 탈출경로 등 단 한 가지도 증명은커녕 비슷한 역사적 유물 - 기록이나 유적 -도 발견되지 않았다는군요.
댓글 #5]전 세계적으로 유명한(현재) 예수님의 모습이 성경과 교회사외 일반 역사기록에는 거의 전무하며, 남아있는 기록조차도 신빙성이 없다는 것과 상통할 듯싶습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중요한 의미 VS 주변인들에게는 별 일 아니다.
댓글 #6이하 대부분]나열보다는 직접 읽으면서 ‘이럴 수가!’하면서 각자가 스스로 판단해 보시길 바란다.
주제 #4]이스라엘의 역사의 설명에 이집트의 역사하고 연관 시키는 것은, 이집트의 역사 기록에 이스라엘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기록해야 하는 것은 것은 과연 필요한가? 성경에 부처님의 이야기가 없듯이 그건 각자에게 서로의 관심 밖이다. 그러나 나는 감히 제언한다. 성경은 한 점 한 획도 어긋남이 없을 것이라고. 아니 단 한 점이라도 어긋난다면 계속 어긋날 것이고, 그것은 성경이 아니라고. 이런 관점에서 성경을 인정하고 우리는 이 ‘묻고 답하기’를 한다. 다시 더 이야기하지만 땅에 묻어두는 ‘묻고’가 아니다. ‘땅에 묻어둔 답하기’는 더더욱 아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인정하는 우리라면 이렇게까지 질문이 왜곡되어 ‘답하기’성의 댓글이 이렇게 비참하게 이어지질 않을 것이다. 그래, 지금은 우리 수준으로는 역사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라고. 아니 우리 인간의 수준으로는 밝혀질 수 없지만, 하느님 그분의 수준에서는 이미 밝혀진 것이었다고. 이렇게 이 탈출기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 우리는 이 질문을 묵상하면서 그분의 이 심오한 진리에 겸손해져야 하지 않을까?
주제 #5]성경은 성령의 도움으로 기록된 책이다. 잠시만 긍정적으로 보면 100%이해되는 게 성경이다.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마태 12,32] 성경은 역사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성령의 힘으로 기록된 책임을 단 1%라도 생각해 보자. 따라서 소생은 위 #5814 댓글 주인님들께 부탁드린다. 이런 댓글은 이 ‘묻고 답하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그래서 누가 먼저를 떠나, 스스로 ‘댓글’을 삭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댓글이 하나도 남김없이 삭제되는 그날 소생의 이 글도 삭제될 것임을 밝혀둔다. 거듭 부탁드리는 것은 이 ‘묻고 답하기’ 코너는 배움의 광장임을 각자가 십분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린다. 끝으로 어느 한 분도 이 댓글을 삭제하지 않을지라도 이곳 믿음의 독자들은 그것을 삭제하는 데 동의했음을 믿고 소생은 삭제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