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게 없다지만! 카테고리 |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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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02 조회수680 추천수2 신고

 이곳 소문난[? : 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짐.] 잔칫집의 ‘묻고 답하기’ 코너의 성격 구분의 이해가 선행되어야한다. 누군가가 중심을 잡아 주어야하지 않느냐며 많은 사람이 오해도 한다. 그렇지만 이곳 운영자님은 잠잖게 기다리기만 한다. 간혹 이곳 ‘클린 게시판’에서 운영자의 기본 지침에 반하는 것으로 잘못보이기만 하면 그것에 대해서는 당연한 조치를 취하곤 했다. 아니 지금도 하고 있다. 이것은 신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서로 묻고 답하는 가운데 신앙의 맛을 알차게 느끼고, 굿 뉴스를 많이 알리라는 뜻으로 소생은 이제 일부 이해는 하고 있다. 이건 나만의 생각일수도 있지만.  

 지금 문 경준님은 누가 누구를 잘못 가르친다고 대단한 불만이다. 그것도 정확한 것도 모르면서.
 사실 이곳은 누가 누구를 가르친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자기주장을 이야기 할 뿐이다.’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만사형통이다. 나와 다른 견해도 있구나 생각하면 그만이다. 판단은 각자가 할 것이다. 그런 나와 다른 의견 개진에 대해 고까와 할 사안이 아니다. 이곳 룰에 어긋난다면 운영자님이 판단할 것이다. 그분의 몫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정말 고깝다. 
 잠시만 참으면 참 좋은 내용이 많이도 올라온다. 맞는 것, 틀린 것, 그것들을 보태보면 그 맛이 꿀맛이다. 그러면서 성경을 보는 시각이 넓혀진다.
 여기는 가르치는 장소도 아니고 돈을 주고 배우는 곳도 아니다. 나의 의견, 남의 의견을 통해 더 알찬 나의 견해를 만드는 곳이다. 남의 의견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우긴다고 생각말자.
 그저 모르는 게 있으면 또 물어보고, 어쩌다 누군가가 언짢은 주장을 하면, ‘그게 아닌데’ 혼자만 안타깝게 생각하면 그만이다. 가르친다고 불만하면서 ‘가르치려는 사람’ 감시하는 사람으로 총대 맬 필요는 없다. 그냥 조용히 들어와서 좋은 의견 남기면 그만이다. 배우는 척 하면서 못된 의견 개진하는 것은 몰상식중의 몰상식이다. 내가 진정 가르칠 수준에 함량 미달이면 조용히 버티는 것도 방법이다. 남이 가르친다고 불만하지마라. 여기는 가르치는 강사도 없고 배우려는 학생도 없다. 그저 그분 말씀 어떻게 판단하는 게 좋은가를 부담하나 없이 느끼는 공간으로 여기자. 남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에 괜한 신경 접어두자. 정말 부탁한다.  

 그리고 소 순태 님께 제언한다. ‘성경 묻고 답하기’를 통해 하나의 질문에 여러 답변들이 게시된다. 이 물음과 답들을 통해서 성경의 일부분을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에 많은 믿음의 사람이 이 코너를 즐긴다.
 소생도 이곳을 누빈지가 이 달로 어언 40개월이 되었다. 그렇지만 가끔은 ‘성경 묻고’의 '묻고'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느낀다. 여기서 ‘묻고’는 ‘물음’의 ‘묻고’가 되어야 하는 데, 왕왕 ‘덮어버리는’의 ‘묻고’로 오해가 된다.
 특히 ‘성경 묻고’는 아예, 말 그대로 ‘성경은 덮어 버리고’, 아니면 ‘성경을 떠나서’라고 표현할 정도로 질문의 내용에서 한참 벗어나 ‘답답하기’의 ‘답변’으로만 끝내기로 일관하는 것도 한몫을 한다. 이럴 경우 그 답답함의 답변이 ‘훈시’ 또는 뽐냄‘의 결례를 자아내어 종종 오해를 불러온다.
 주어진 질문에 단답형으로 간단하게, 쉬우면서 재미나게, 이곳저곳 ‘클릭’없이 그 자리에서만 이해될 수만 있는 답이면 족하다. 이렇게 되면 ‘묻고’는 ‘물음’의 ‘묻고’가 되어, 왕왕 ‘덮어버리는’의 ‘묻고’로 가는 오해는 줄어드리라. ‘성경 묻고’가 아예 말 그대로 ‘성경은 덮어 버리고’, 아니면 ‘성경을 떠나서’라는 변질되는 그 예를 두 가지만 추려보자. 

 사례 #1]이 코너의 물음에 간혹 반종교적, 비 신앙적으로 부정적인 질문, 즉 답이 필요 없는 물음이 간혹 있다. 이 물음에 다들 제 잘난 답을 하려고 덤벼든다. 어느 게 제 잘난 답변인지는 다들 잘 알면서 막무가내 우기는 식으로 확산된다.
 어떤 때는 자기 잘남의 뽐냄이 남에게는 정말 답답함으로 비쳐진다. 여기에 나쁜 말로 패거리가 형성되어 동네 싸움이 되어 뜻 있는 이에게는 ‘성경 묻고’가 아니라 '성경 묻고'[성경 묻어 버리고, 또는 성경을 떠나서]가 되어간다. 참신한 질문들이 올라오지 않는다.  

 사례 #2]이 코너의 어떤 질문은 내용은 다소 복잡하지만 단답형으로 답할 수 있는 것도 ‘자기 지식 과시용 답’, ‘자기 책자 홍보용 답’이 너무 많다. ‘클릭한데 또 하고,’ 한참을 하다 보면 그게 그 말이고 그 말이 그 말이 되어 짜증이 난다. 그렇지만 그걸 못 참는 이가 신경을 건드려 그 단답형으로 답이 쉽게 도출이 될 질문도 이상한 질문으로 변질되어 짜증스럽게 끝내곤 한다. 아예 단답형인 그 답은 명함도 못내 보고서.
 그것도 자랑스러운 우리글[말]이면 몰라도 이상야릇한 외국어의 남발을 초래하면서까지. 그래서 ‘성경 묻고’가 아니라 '성경 묻고'[성경 묻어 버리고, 또는 성경을 떠나서]가 되어간다. 성경을 덮어버리고 이 코너를 떠나는 경우도 있다.  

 성경은 정말 진리이다. 성경을 떠난 곳에는 공허뿐이다. 성경을 묻어 두지 말고 진리를 펼치도록 하자. 그러기위해서는 성경을 펴서 정말 알고픈 성경의 내용을 질문하고, 그 질문에 최대한 성경적으로 간단히 답변을 하자. ‘성경 묻고[덮어 둠] 답하기[답답하기]’가 아닌 ‘성경 묻고[물음] 답하기[단답형으로 시원하게]’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차제에 이 코너에서 열띤 토론의 주인공이 되는 ‘소문난’의 그 말의 뜻풀이를 소개한다. 소 순태[이하 ‘소’선생님이라 칭함]/문 경준[이하 ‘문’선생님이라 칭함]님의 가열된 공방에 먼저 경의를 표한다. 두 분은 ‘난’사람이다. 이 ‘난’은 ‘못됨’을 의미하는 ‘난’이 결코 아니고 ‘좋은’의미의 ‘난’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오해가 전혀 없으시기를.
 소생의 속견으로는 한 분은 성경적/전례적[소]으로 그 근거를 명쾌히 제시하고 있다. 또 한 분은 성경적/이론적[문]으로 그 근거를 뚜렷하게 제시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성경의 일반적인 분야의 이해를 위해서는 이곳의 질문자나 이 코너를 즐기는 자는 두 분의 그 해박한 지식을 십분 아니 천만분도 이해를 한다.
 그렇지만 질문이 어디 일반적인 것만 있겠는가? ‘신비’에 가까운 신비스런 질문도 있다. 이 답에 관한 한 두 ‘소문’선생님이 제시하는 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선생님의 소문이다. 그 신비의 질문까지 신비스럽게 건드릴 생각은 접으면 어떨까? 그저 단답형으로 가볍게 탓치만 하자. 성경을 펴보자. 하느님의 신앙의 신비가 보이지 않는가!
 천지 창조에서 동정녀로부터의 예수님 출현, 십자가 죽음, 부활, 승천, 성령 강림, 앞으로 다가올 그분의 재림 등의 엄청난 신비에 ‘소문’선생님은 그저 성경을 펴고 창조주의 신비를 느껴야 한다. 그 신비를 전례적/이론적[역사적 포함]으로 아무리 접근해도 하찮은 우리 인간이 정답을 내릴 사안이 아니다. 신만이 아는 신비가 아닌가? 그분만이 아는 정답을 소문끼리 따진다고 따질게 못된다.
 쌍방이 ‘그래 내 것이 아닌 네 것이 맞다.’라고 하면 다 맞는 것 아닐까? 그러나 두 분은 종종 아니 너무 종종[가끔은 지겹지도 하지만 : 아래 #5814/5825/5829의 댓글을 대표적으로 참조만 해 보아도] ‘네 것이 아니고 내 것’만을 주장하는 우를 범하는 것 같다.  

 그분의 신앙의 신비는 무엇인가. 그 답은 단순하다. 그분 사랑과 이웃사랑이다. 성경은 이 두 가지 사랑만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 두 가지만이 진실이고 나머지는 소문일 뿐일 수도 있다고 감히 이야기해도 무방하리라. 우리는 이런 신비 분야에 있어서는 두 소문의 소문에 결코 현혹되지 않는다. 소문은 소문으로 끝낼만한 것은 단순 소문으로 끝내자.
 소생은 감히 제언한다. 신앙의 신비에는 내용과 형식이 가끔은 수반될 수 있다고. 교도권이 여기에 해당되리라. 믿음의 생활에서 지금의 전례력의 형식을 버릴 수도 없지만, 그분 신비의 그 내용 또한 저버릴 수 없다. 그것이 신앙인의 딜레마다. 이 딜레마가 소문을 낳고 이 소문이 결국은 신앙심을 부추긴다. 이것이 선교다. 따라서 딜레마 없는 신앙은 없다. 이것이 신비이다. 딜레마를 딜레마로 인정하는 것도 신비의 인정이요, 교도권의 인정이다. 

 지금 이곳 게시판에서 게시되는 ‘소문’선생님의 소문은 다 일리[완투:Onetwo]가 100% 있다. 여기에 결코 감정 개입의 여지가 없다면 그 소문의 정확도는 그 이상이라고 확신하다.
 감정을 부추기거나 감정적 소문 유포는 정말 비 신앙적이다. 성경을 묻지 말고 펴라. 소문난 잔칫집에서 먹을 게 없다는 소릴 듣지 않도록 하자. 이곳 소문난 집에서 씹히는 것은 결코 모두에게 바람직스러운 것은 아니다. 잔칫집 분위기 조성은 잔치에 초대한 주인장에게 맡기고 즐기기만 하자. 그리고 잔칫상에 차려진 김치의 맛이 샐러드[미국 식], 빵[불어 식], 스파게티[이태리 식], 짬뽕[중국 식]등과 비교할 필요도 없이 그 자리에서 간단한 대화로 즐기면 어떨까? 우리의 김치, 얼마나 감칠 맛 나는가!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것은 별반 없지만 듣고 묵상할 것은 참으로 많을 것이다. 이렇게 신앙에는 분명히 신비가 있다. 그 인간으로는 감히 풀 수 없는 신비에 우리는 고개 떨어뜨리고, 사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고개를 들자. 그리고 사랑의 대상을 바라보자. 하느님과 이웃이 웃으면서 보고 있지 않은가! 
 
 혹시 이곳 ‘묻고 답하기’가 소생의 이 진절머리 나는 내용으로 인해 ‘성경 묻고[덮어 둠] 답하기’로 오해되어 떠나는 사람이 결코 없으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아멘. ^^+ [주석 : 이 글은 이미 게시된 소생의 글 #5160/5174를 일부 보완한 것임을 미리 밝혀 둡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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