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에즈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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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11-27 | 조회수7,686 | 추천수0 | |
[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에즈라
요시야 임금의 사망(기원전 609년) 이후 유다 왕국은 쇠퇴의 길로 접어듭니다. 아시리아 제국을 무너뜨린 바빌론 제국은 더 강대한 세력으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는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임금과 지도자들을 끌고 갑니다(597년). 새로운 제국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발하던 유다왕국은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587년).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지고 성전은 약탈당한 후 파괴되고 이스라엘 백성은 긴 유배의 길을 떠나갑니다. 그들 중에는 ‘하느님의 집(성전)의 수석 사제 스라야’도 있었습니다(2열왕 24,29-25,21; 참조 2역대 35,20-36,21). 바빌론 유배(587-538년) 동안 이스라엘은 ‘무엇이 이렇게 참담한 사건을 불러왔는가?’ ‘이스라엘은 누구인가?’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누구신가?’ 등의 질문과 함께 역사를 깊이 성찰하며,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다지게 됩니다.
바빌론 제국은 얼마 가지 못하고 새로운 제국 페르시아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이전과는 다른 정책을 선포합니다. ‘자신의 땅으로 돌아가 살아라.’ 키루스 칙령은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을 해방하시는 하느님의 섭리로 이해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저 이집트에서 탈출하던 조상들처럼 자유를 얻어 조상들의 땅, 약속의 땅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들은 돌아와 하느님의 집-성전의 제단을 다시 쌓고 하느님께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고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움직입니다. 그러나 광야로 나간 백성이 이민족들의 괴롭힘을 당했듯이 귀환한 백성들도 주변 민족들로부터 방해를 받습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체되던 성전 공사는 다리우스 임금 때가 되어서야 완성됩니다(515년). 새 성전을 봉헌한 이스라엘은 저 광야의 백성들(민수 9,1-5)처럼 파스카 축제를 지내며 자신들을 해방시켜주신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에즈라 1장-6장] 유배로부터의 귀환한 이들은 이 사건을 ‘제2의 탈출’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이 귀환 공동체, 새로 형성된 백성들을 다시금 하느님의 백성으로 세우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 일을 위해 에즈라가 등장합니다.
에즈라(주님이 도우신다)는 유배에 끌려간 스라야 수석사제(대사제)의 아들(2열왕 25,18; 에즈 7,1)로 소개됩니다. 그의 족보를 전하는 에즈 7,1-5는 그가 모세의 형제 아론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또한 유배 이후에 세워진 제2성전에서 수석사제직을 수행한 ‘예수아’가 그의 조카이기도 합니다(1역대 6,40; 에즈 3,2). 그의 자손들은 이후 우두머리 사제가문 중 하나를 이룹니다(느헤 12,13). 이처럼 그는 정통 고위 사제가문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위관료로 임명되어 온 듯합니다. 페르시아의 임금이 그에게 유프라테스 서부 지방의 관료임면권과 재판권을 주었다(7,25-26)는 것이 이를 말해줍니다.
그를 지칭할 때 따르는 말이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능통한 학자’(7,6), ‘하늘의 하느님께서 내리신 법의 학자인 에즈라 사제’(7,12.21). 그는 사제이며 동시에 율법학자([공동번역 성서]는 ‘선비’로 옮겼다.)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제직을 수행하기보다 ‘하느님의 율법을 연구하고 실천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서 규정과 법을 가르치는 일’(7,10)에 집중합니다.
이를 반영하는 일화가 이민족과 결혼한 이들에 대한 조치입니다(에즈 9-10장). 그가 도착한 때가 아르타크세르크세스(재위 474-424) 통치 7년(에즈 7,7)이라면 성전을 봉헌하고도 거의 반세기가 지난 후가 됩니다. 그는 일차 귀환에 오지 못한 이들(남자만 1800여명, 8,1-20)을 데리고 네 달 동안의 긴 여정(7,9)을 거쳐 마침내 예루살렘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백성은 물론이고 사제들과 레위인까지’(9,1) 이민족들과 결혼해 살고 있었습니다. 신명기는 우상숭배의 위험을 경고하며 이민족과의 결혼을 금하고 있는데(신명 7,1-4), 이런! 율법학자 에즈라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며, 배신행위(9,4; 10,6)입니다. 에즈라는 ‘옷을 찢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뜯고는 저녁까지 넋을 잃고 앉아’(9,3.4) 있었습니다. 성전 앞에서 ‘쓰러져 울면서 기도하고 죄를 고백하는’(10,1) 에즈라의 모습을 본 백성들은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은 모두 모여 토론을 벌이고 이민족 아내들과 그 사이에서 난 아이들을 내보내기로 결의하고 실행합니다(10,1-44). 에즈라의 율법에 대한 열정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이스라엘에 에즈라와 같은 입장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민족이라도 주님을 섬기는 이는 이스라엘에 속한다.’는 주장, 곧 신명기와 에즈라의 입장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분명 있었습니다. 룻기의 룻은 결혼 금지 목록에 속하는 모압 출신이었습니다. 요나서의 하느님은 니네베 시민들도 ‘동정하시는 분’(요나 4,11)이시라는 주장은 에즈라와는 분명 다른 입장입니다.]
느헤 8장은 또 다른 장면을 전하고 있습니다. 높은 단위에 에즈라가 서서 (히브리어로 된) ‘하느님의 율법서’(느헤 8,18)를 읽어주면, 그의 수행인들이 이를 풀이해서(당대의 공용어인 아람말로 옮기고 설명한 듯) 백성들을 가르칩니다.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겠다던 그의 결심이 실행된 것입니다. 이 에즈라 때부터 유다교가 형성되고, 랍비(유다교 선생)의 시대가 시작된 것으로 봅니다.
에즈라기를 읽다보면, 하느님은 직접 등장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역사의 흐름을 일으키시고 이끄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고백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1,1; 6,22; 7,6) 새로운 탈출을 일으키셨고, 당신 백성이 다시금 계약의 삶을 살도록 이끄셨습니다. 역사의 주재자이신 주님은 뜨거운 열정의 에즈라를 당신 백성 가운데로 파견하셔서 이 새 시대를 사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열정을 안고 주님의 도구로 쓰일 이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2018년 11월 25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의정부주보 5-6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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