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십자가의 길의 의미와 변천에 대하여---오유성 신부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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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타한인성당 | 작성일2012-03-13 | 조회수2,484 | 추천수2 | ||||||||||||||||||||||||||||||||||||||||||||||
십자가의 길의 의미와 변천에 대하여 오유성 신부
가톨릭 신심행사 중에서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것 중의 하나인 이 십자가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형 선고를 받으신 후 십자가를 지고 갈바리아 산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14가지의 중요한 사건을 성화로, 혹 조각으로 표현하여 축성된 십자가와 함께 성당 양벽에 걸어둔 곳을 하나하나 지나가면서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1) 또한 이 십자가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의 구원 계획을 충실히 달성하여 인간들을 향한 당신의 위대한 사랑을 드러내시기 위해 이 지상에서 걸어간 마지막 여정의 발자취라 할 수 있다.2) 이 기도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에서 비롯되며, 이곳에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의 중요한 장면을 묵상하기 위한 순례를 함으로써 영신 생활에 도움을 얻으려는 데 그 의의가 있다.3) 그러나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는 것이 일반적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성지를 순례하는 것과 같이 성지 모형을 성화나 조각으로 만들어 각 처를 걸어가면서 주님의 수난과 고통이 어떠했는가를 생각하고 기도와 묵상을 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가톨릭 교회 안에서 다양하게 행해지던 신심행사들의 열기가 식어가는 가운데에도 세계적으로 비교적 열심히 행해지는 신심행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십자가의 길이라 할 수 있다. 예수의 생활은 이 지상여정에서 수난과 십자가상 죽음으로 요약해 볼 수 있는데4) 한 없이 자신을 낮춘 겸손으로써 예수께서는 인간에 대한 당신의 끝없는 사랑을 증거하시고 당신을 파견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순명을 보여 주시고자 수난과 죽음의 십자가의 길을 걷는다.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전 존재는 예수 수난에서처럼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고통받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며 구원을 베푸고, 또 자신의 온 힘을 쏟아 자신을 바치고 있다.5) 그리스도의 수난은 복음 안에서 근본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십자가를 통해서고, 희망과 영원한 생명을 회복할 권리를 받은 것도 죽으심을 통해서이다.
이렇게 그리스도교의 진리는 고통을 전제로 한 축복을 선포한다.6) 따라서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하느님의 은총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 고통과 고난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그리스도께 대한 올바른 이해와 직결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도 자신이 마굿간에서 태어나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까지 지상 생활에서 고난의 일생을 보내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마지막 유언으로써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고 하신 당신 말씀처럼 우리를 위하여 당신 생명을 내어 놓으셨다. 바오로 사도는 얼마나 생생하게 예수의 그러한 사실을 묘사하고 있는가!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은 빠스카 어린양7)의 희생제물을 이루는 것으로써(요한 19,36) 빠스카의 신비8)를 체험케 한다. 이렇게 예수의 수난과 죽음은 그리스도인의 핵심 신앙이며, 그 절정을 이룬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지니셨던 사랑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도록 이끄는 것이고, 빠스카의 신비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와 더불어 그분의 수난과 죽음의 사건들을 되새김으로써 그분 사랑에 대한 자각에 도달할 수 있기 떄문이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표시이며9), “예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버리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루가 9,23) 희생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수난과 당하셨던 고통을 깊이 묵상함으로써, 자신의 처지와 생활을 반성하고 예수의 수난에 참여하는 것이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는 목적이다. 그러나 이 수난의 묵상은 자기만을 위해서 뿐 아니라 사랑의 마음으로 고통을 당하신 예수의 이웃사랑을 생각하며, 자신이 이웃을 위해 봉사할 때 받는 고통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하는 모든 제자들은 필연적으로 고난과 희생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십자가는 마지막 말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만을 믿는 것도 아니고, 십자가없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아니며,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십자가의 길을 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묵상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핵심 체험인 빠스카의 신비를 체험하기 위한 것이다.10)
앞에서 말했던 바대로, 십자가의 길은 예수가 이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걸었던 지상여정이라 할 수 있다. 그 의의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11)에서 고난의 장소를 오르는 유순하고 비천한 주님의 종의 예언이 실현되었으며, 그분 스스로 속죄의 희생 제사를 완성하시고, 그 시신은 진지 밖으로 버려져야만(레위 16, 27) 했었던 버림받음의 신비가 완성되었으며, 끝내는 예수께서 당신 선교 사명을 완수하고 당신 제자들의 생명을 위해 취하신 “십자가의 신비”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12)
십자가의 길은 만남의 공간이다. 예수께서는 공생활 시기 동안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모든 질병과 모든 허약함을 치료하시면서”(마태 4,23) 팔레스티나의 길을 두루 다니셨다. 베드로 사도는 백부장인 고르넬리오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선한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린 모든 사람을 고쳐 주시며 두루 다니셨다”(사도 10,38)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그것은 :하느님이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길은 구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의 공간인 것이다. 예수님은 성모와 만나셔서 서로의 위안과 연민, 무엇보다도 깊은 일치의 눈길을 주고받으신다(제 4처). 또한 십자가의 짐을 나누는 키레네 사람을 만나시며(마르 15,21 참조) “영광의 무게”(2고린 4,17)를 나누어 주시기를 약속하신다(제 5처). 예수님은 자신을 보고 우는 예루살렘의 딸들을 만나시며 죄의 악에 대해 울라고 충고하신다(제 8처:루가 23,28 참조). 또한 자신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를 만나셔서 그중 한 강도의 모욕을 온화하게 참아 받으신 반면, 다른 강도의 간청에 용서와 우정과 생명의 말씀으로 응답하신다(루가 23,32 참조). 그리고 마침내 당신의 생을 마치면서 성부의 손에 자신의 영혼을 맡기심으로써(제 11처:루가 23,46 참조) “최상의 만남”인 성부와의 만남을 실현하신다.13)
3. 성령에 의해 인도된 길
예수님의 생애 전체는 성령에 의해 인도된 여정이다. 예수님의 이 마지막 여정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복음서 저자들은 사람의 아들이요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성부와 인간을 향한 당신 사랑의 여정으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간결하게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의 모든 발걸음은 구원 계획의 완전한 실현에 가까워지는 순간 순간이었다. 즉 보편적 용서(루가 23,34 참조)에 다다르는 때이며, 마르지 않는 은총의 샘이 열리는 예수님의 심장이 창으로 찔리며 열리는 때이며(요한 19,34 참조), 참된 빠스키 양이 뼈 하나 손상되지 않은 채 온전히 희생되는 때이며(요한 19,36 참조), 우리에게 당신의 모친 마리아(요한 19,26-27 참조)와 성령(마태 27,50)을 선물로 주시는 때인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겪으신 수난은 미래의 인간들을 위한 기쁨의 시작이며, 그분이 겪으신 모든 조롱은 영광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고통의 길에서 예수님과의 모든 만남, 친구들과, 원수들과, 무관심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최고의 가르침을 위한 마지막 기회이며 최후의 화해와 평화가 제공되는 기회인 것이다.14)
Ⅳ. 십자가의 길의 변천
십자가의 길은 신심행사로써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할 수 있도록 일정한 틀을 갖춘 것이다. 이 십자가의 길은 지금의 십자가의 길 14처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기를 거쳐 상당히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또한 예루살렘의 거리를 따라 있는 십자가의 길도 각 처의 숫자와 위치뿐만 아니라 그 길 자체도 예수시대 이후 여러 번 변화되어 왔다.15) 고통의 길이라고도 하는 십자가의 길은 초대 교회때에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던 순례자들이 실제로 빌라도 관저에서 갈바리아 산까지의 거리를 걸으면서 기도 드렸던 데서부터 출발한다.16) 그러나 이에 대한 직접적인 문헌은 찾기 힘들고 서기 381년에서 384년경에 쓰여진 “에떼리아 여행기”17)를 보면, 이 길에서 기도하며 순례하는 성 금요일 예식을 찾아볼 수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새벽 닭이 우는 소리가 들리면 주께서 기도하셨던 장소, 즉 “돌을 던지면 닿을만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다”는 장소로 간다. 그곳에서 그 날에 알맞는 기도를 하고, 알맞는 찬미가 하나를 외운 후, “유혹에 떨어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는 복음을 낭독한다. 복음 낭독이 끝나면 다시 기도를 바친다. 그리고 모든 이가 주교님과 함께 걸어서 겟세마니로 향해 찬미가를 부르며 아주 천천히 걸어간다. 겟세마니에 도착하면 해당 기도를 바치고 찬미가를 부르며 주께서 잡히시던 복음 구절을 낭독한다. 그 복음 구절을 낭독하면 모든 회중이 소리를 내어 곡을 한다. 그 다음 겟세마니에서 성문을 지나 시가지를 행렬하여 십자가에 도착하면 날이 완전히 밝는다. 거기서 주께서 빌라도 앞으로 압송되는 복음 구절을 낭독한다. 그런 다음 주교님은 회중들에게 “여러분은 집으로 돌아가 얼마 동안 휴식을 취한 후 2시경에 다시 여기에 모이라”고 통고한다. 이렇게 십자가에 대한 말씀과 파견이 끝나면 해가 돋기 전에 각자 자원해서 시온으로 간다. 그곳은 옛날에 주꼐서 기둥에 묶이어 매맞으시던 곳인데 그 기둥 앞에서 그들은 기도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 조금 휴식한 다음 모두 다시 모인다. 십자가에 세워져 있는 골고타 후면에서 십자가를 경배하는 예절이 2시부터 6시까지 이어진다. 6시가 되자 모두 십자가 전면으로 가서, 9시까지 수난에 대한 성서, 즉 수난에 관한 시편과 사도들의 서간이나 행적 그리고 복음을 낭독한다. 이렇게 예언된 것이 다 이루어지고 또 이루어진 사건은 다 예언 되었음을 회중들에게 3시간동안 묵상하게 한다. 독서와 기도를 할 때에는 모든 회중이 감정에 북받쳐 운다. 9시가 되면 주께서 운명하심을 기록한 요한 복음을 낭독한다. 그런 다음 즉시 파견이 있다. 이렇게 십자가 전면에서 파견이 끝나면 바로 “대성당 마르티리움”18)으로 간다. 거기서 평소에 9시에 바치던 일과를 늦게까지 바치고 파견이 끝나면 “아나스타시스”19)로 가서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청하여 주님의 시체를 받아 새 무덤에 안장했다는 복음 구절을 낭독한다. 그 낭독이 끝나면 기도를 마치고 예비자들에게 강복을 주며 파견한다.」20) 이 여행기를 통해 볼때 성지 순례객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초대 교회 때부터 주님이 수난하신 금요일에 겟세마니에서부터 갈바리아까지 걸어가면서 주님의 수난과 죽음과 묻힘을 묵상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머무는 장소인 ‘처’가 없는 상태였지만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어가는 이 행사는 우리가 추적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십자가의 기도로 볼 수 있겠다. 서기 70년과 135년 두 번에 걸쳐 로마인들은 예루살렘을 파괴하였고, 그 곳을 이교도의 도시로 재건하게 된다. 이러한 두 번의 대격변으로 인하여 2-3세기의 예루살렘 교회 역사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는다. 다행이 앞에서 언급했던 ‘에떼리아 여행기’를 통해 십자가의 길에 대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는데 이렇게 ‘처’의 개념이 잡히지 않은 십자가의 길의 형태는 이제 8세기에 들어와서 ‘처’의 개념으로 통례화되게 된다. 그리고 이 길은 가야파와 빌라도의 관저들을 포함하면서 더 길어졌다. 그 후에 자기들이 주장하는 십자가의 길이 옳은 길이라고 맞서는 그리스도교의 두 종파들에 의해 예루살렘을 통화하는 두 가지의 길이 제시되어 경합이 붙게 되었다. 13-14세기에는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도자들이 수난 사건들을 기념하기 위해 원래의 형태에 기도를 더 첨가하여 걸어가면서 기도를 바치게 된다.21) 수난 신비에 대한 경건한 신앙심의 기운이 팽배해져 있던 이 시대에 1233년경부터 예루살렘의 “거룩한 장소”들에 상주하고 있던 프란치스코회의 회원들이 이들 장소들을 연속적으로 엮어 표현하게 된 것이다. 1294년경 십자가 산의 리날도라느 도미니꼬회 수사는 자신의 저서 “순례의 책”에서 거룩한 무덤까지 그리스도 친히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길 중에 있는 여러 지점들을 상세히 묘사하고 이다. 즉 헤로데 궁전, 예수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신 빌라도 총독 관저 앞의 리토스트로토스, 예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만나신 장소, 키레네 사람 시몬이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지점 등이다.22) 그러나 이 행사는 갈바리아에서 시작하여 빌라도의 관저에서 끝나는 것으로 원래의 것과는 반대로 거슬러 내려오는 형태를 취하였다. 길을 따라 걷다가 기도하기 위해서 잠시 머무는 장소를 ‘처’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이러한 십자가의 길이 예수의 무덤과 갈바리아에서 끝나도록 방향이 다시 돌려진 것은 16세기에 접어들면서였다. 유럽에서도 이와 같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먼저 신심수련으로서의 형태는 세 가지 신심이 통합되어 나타나게 되었는데,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도중의 “그리스도의 넘어지심”에 대한 신심으로써 일곱 번까지도 열거되었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의 고통스러운 행로”에 대한 신심으로서, 고통의 매 단계들을 기념하는 일곱 개나 아홉 개 혹은 그 이상의 성당들을 지정하고, 차례로 경건한 행렬을 벌이는 신심 행위이다. 이것은 게쎄마니 동산에서 안나스의 집에 이르는 행로(요한 18,31 참조), 안나스의 집에서부터 대제관 가야파의 집까지의 행로, 그리고 빌라도의 관저에까지 이르는 행로와 헤로데 왕의 궁전에 이르는 행로 등을 포함하고 있다. 세 번째는 “그리스도의 지체하심”에 대한 신심인데, 이것은 예수님의 갈바리오를 향한 긴 십자가 행로에서 사형 집행인들의 저지에 의해서 혹은 극도의 피로 때문에 혹은 사랑의 마음으로 아직까지도 당신의 수난에 참여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하시기 위해서 지체하신 순간들에 대한 경배이다. 일반적으로 보통 “고통의 행로”와 “지체하심”은 그 숫자와 내용이 거의 일치되며, 각각의 행로는 하나의 처로 고정되게 된다. 그리스도의 머무심을 의미하는 각 장소에는 기둥이나 십자가로 표시되었으며 묵상의 대상이 되는 장면들을 그림이나 조각 등으로 꾸며 군중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다.23) 형태상의 변화로는 일찍이 15세기에 이태리 볼로냐에 있는 한 수도원에서 다섯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일련의 기도 방이 만들어졌다. 그 방들은 각기 그리스도의 다른 수난 사건들을 의미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의 초기 형태들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1세기와 12세기에 있었던 십자군 원정 후의 일이었다. 유럽으로 돌아온 몇몇 병사들은 자신들이 방문했던 성지의 여러 곳들을 기억하며 신심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상징물들을 세워놓았다. 이것은 유럽의 여러 도시에 세워졌던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상징물들 즉 성화나 조각들을 발전시키는 큰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행해졌던 십자가의 길은 일정한 틀은 갖고 있지 않았다. 장면, 즉 ‘처’의 숫자는 앞에서 언급했던 일곱 개에서 마흔 두 개까지 다양하였지만 각기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1584년 12처로 이루어진 십자가의 길에 대한 해설서가 유럽에 퍼지기 시작하였다. 이 12처는 오늘날 우리가 바치는 십자가의 길 중 처음 1처부터 12처까지의 내용과 같은 것이었다. 16세기 유럽에서는 14처 해설서들이 다양하게 출간되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럽의 반응과는 별개로 예루살렘에서는 그곳을 지배하고 있는 터어키인들의 억압에 못이겨 십자가의 길은 8처로 바뀌는 상황이 전개된다. 게다가 십자가의 길을 가면서 잠시 멈추거나 공동 기도를 드리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서 각 ‘처’들은 한동안 보이지 않게 된다. 반면, 유럽에서는 점점 커져가는 열정으로 십자가의 길 기도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유럽 전통의 영향은 결국 예루살렘에까지 파급이 되게 된다.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유럽 순례객들이 자기 나라에서 이미 익숙해진 십자가의 길 모습을 예루살렘에서도 발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거리를 통하여 따라가는 이 길은 18세기까지 계속해서 변하게 된다. 오늘날 예루살렘에서 수난 사건을 기념하는 장소 중 네 개의 ‘처’가 19세기 이전에는 현재의 위치에 있지 않았다. 공식적 기록은 보면 1686년에 교황 인노첸시오 11세는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도자들에게 이 수도회에서 관장하는 모든 성당에 십자가의 길을 세울 것을 허락하였고, 1688년에는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여 경건하게 이 기도를 바치는 자에게 전대사를 허락하였다. 1694년에는 교황 인노첸시오 12세가 이 특전을 확증했으며, 1726년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모든 신자들이 이 특전을 얻을 수 있게 하였고, 1731년 교황 클레멘스는 모든 교회에 십자가의 길을 설립하는 것을 허용하고 ‘처’의 숫자도 14처로 확정지었다. 그러나 모든 ‘처’의 제작만큼은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맡겼다. 1862년에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이 만드는 것보다 간단한 형태를 갖춘 ‘처’들도 만들 수 있도록 다른 지역 주교들이 승인해주었다. 이러한 발전을 거쳐 현대의 십자가 길의 형태가 완성되었는데 실지로 요즈음도 계속 발전되어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미 어떤 곳에서는 부활의 의미를 담은 15처를 사용하고 있고, 1975년에는 교황 바오로 6세가 최후의 만찬에서 시작하여 부활로 끝을 맺는 형태의 십자가의 길을 승인해준바 있다.24)
Ⅴ. 십자가의 길의 다양성
1. ‘처’의 다양성
십자가의 길이 형성되는 긴 과정에서 두 가지 요소가 주모을 끄는데, 하나는 제 1처의 변동에 관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각처들의 다양성에 관한 것이다. 십자가의 길의 시작인 제 1처와 관련하여 역사가들은 제 1처로 선택된 적어도 네 가지 다른 사건들을 제시하고 있다. ①“어머니께 인사드리는 예수”의 모습이 제 1처의 사건으로 취급되기도 했는데, 그렇게 널리 퍼졌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성서 상의 근거 문제가 원인일 것이라 추정된다. ②“발을 씻겨 주심”을 제 1처의 사건으로 삼는 것도 있었는데, 이것은 최후의 만찬 및 성체성사의 제정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으며 17세기 중반의 십자가의 길 신심에 나타나 널리 퍼지기도 했던 것이다. ③“게세마니에서의 격심한 번민”. 올리브 동산은 예수께서 성부께 대한 지극한 순명으로 수난의 잔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도 다 마시기로 결정하신 곳이다. 이 사건은 17세기의 짧은 십자가의 길(단지 7처까지로만 이루어져 있었다)의 제 1처를 구성하고 있는데, 성서적 배경이 확실한 관계로 널리 퍼졌으며 특히 예수회 수사들의 작품에서 많이 발견된다. ④“빌라도 총독 관저에서 판결 받으심”을 제 1처로 삼는 관행은 매우 오래 전부터 마지막 예수의 고통의 행로, 즉 총독 관저에서 갈바리오까지 이르는 여정의 가장 적절한 기점이라고 여겨져 초기교회부터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또한 14처의 각각의 주제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하였다. 특히 15세기에는 각 처의 내용과 그 숫자 및 순서에서 매우 다양하였다. 신심 수련으로서 전통적으로 통용되던 십자가의 길의 텍스트에 나타나고 있지 않는 내용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예수께서칼과 몽둥이를 들고 들이닥친 무리들에게 잡히심 --베드로의 부인 --채찍질 당하시는 예수님 --대제관 기야파의 저택에서의 모욕적인 심문 --헤로데의 궁전에서 혹은 총독 관저에서 병사들로부터 능욕 당하심
현재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십자가의 길의 14처와 순서는 17세기 중반경 스페인에서 확정된 것이며 특별히 프란치스코 수도자들에 의해 많이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베리아(스페인) 반도에서부터 이 십자가의 길이 사르데냐를 거쳐 스페인 왕정의 지배를 받던 이탈리아 반도로 전파되어 차츰 전세계 교회에서 사용하게 되었고 전통적인 텍스트로 인정받게 되었다.
2. ‘형태’의 다양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79년부터 매년 성금요일에 로마의 원형경기자(꼴로세움)에서 세계 각지에서 모여 온 순례자들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직접 주재하신다. 로마의 원형경기장은 초기 박해시대의 많은 순교자들이 그리스도를 증거한 거룩한 장소이며 또한 교황 베네딕또 14세의 요청에 의해 1750년 성년(聖年)을 기념하여 세워진 성 레오나르도의 유명한 14처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성 레오나르도는 프란치스코회의 수사로서 십자가의 길을 널리 전파하여 세계 각처에 572개나 되는 십자가의 길 14처를 세웠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로마의 꼴로세움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1991년과 1992년의 성금요일에 거행된 교황의 십자가의 길 텍스트는 전통적인 텍스트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즉 열네 개의 처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각처의 주제와 순서가 크게 바뀌었다. 역사의 눈으로 볼 때 이러한 변화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며 그 동안 전통적인 텍스트에서 널리 사용하지 않았던 것들을 단순히 복원한 것이다. 1991년과 1992년에 거행된 십자가의 길에서는 정확한 성서적 근거가 없는 “예수님의 세 번 넘어지심”(제 3처, 제 7처, 제 9처), “성모님과의 만나심”(제 4처), “성녀 베로니까와의 만남”(제 6처), 등 다섯 개 처들이 제외되었고, 또한 “병사들이 예수의 옷을 벗기고 초와 쓸개를 마시게 함”(제 10처), “제자들이 예수의 성시를 십자가에서 내리움”(제 13처) 등 두 개의 처는 성서적 근거는 있지만 제외되었다. 이것들 대신에 새로이 첨가된 것들은 다음과 같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극심한 번민으로 기도하시는 예수님”(제 1처), “유다로부터 배반당하시어 붙잡히신 예수님”(제 2처), “최고 의회에서 대제관들에게 심판 받으신 예수님”(제 3처), “베드로에 의해 부인된 예수님”(제 4처), “회개한 강도에게 당신 나라를 약속하신 예수님”(제 11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와 제 자”(제 12처) 등 여섯 개 처이다. 새롭게 첨가된 이 여섯 개 처의 주제는 금방 알 수 있는 대로 특별히 그리스도의 수난에 나타나는 극적인 사건들로서 중요한 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들이다. 이 주제들은 우리가 그 사실을 자각하든 자각하지 못하든 상관없이 우리들 자신의 일상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는 극적인 사건들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들이다. 전혀 새로운 이 여섯 가지 주제 외에도 또 한 가지 변화되어 나타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제 6처의 “채찍질과 가시관으로 고통받으시는 예수님”에 대한 것이다. 그 외에는 전통적인 14처에 있는 동일한 주제들인데 “빌라도에게서 판결 받으신 예수님”(제 5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제 7처), “키레네 사람의 도움을 받으신 예수님”(제 8처), “예루살렘의 여인들을 만나셔서 위로하심”(제 9처),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제 10처),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예수님”(제 13처), 그리고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제 14처) 등이다. 그러나 이렇게 변화된 내용들이 전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75년의 성년을 지내면서 “성년 중앙 위원회”는 로마를 순례하는 사람들에게 「순례의 책」이라는 소책자를 제공하였는데, 이 책에는 십자가의 길의 전통적인 주제뿐만 아니라 또 다른 십자가의 길의 주제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 중의 일부가 1991년 성금요일에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교황님께서 거행하신 십자가의 길로 다시 선보이게 된 것이다. 교황청의 ‘경신성사성’에서도 근년에 들어 전통적인 십자가의 길과는 다른 십자가의 길의 사용을 여러 경우에 허가하였다. 1991년과 1992년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겨행된 새로운 십자가의 길이 전통적인 십자가의 길의 구조와 텍스트의 변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십자가의 길은 아직도 유효하며 앞으로도 계속 사용될 것이다. 이 십자가의 길은 다만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텍스트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예수님의 수난 신비의 중요한 사건들을 명시적으로 드러내는데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즉 십자가의 길의 특별한 보화를 강조하며 어떠한 구조로도 풍요로운 십자가의 신비를 남김없이 다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을 밝혀주는 것이다.
<전통적인 십자가의 길과 새로운 십자가의 길의 비교>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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