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사도행전 이야기6: 개종한 첫 사람들(사도 2,37-4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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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9-02-24 | 조회수7,492 | 추천수0 | |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6) 개종한 첫 사람들(사도 2,37-41) 베드로의 설교에 탄생한 3000명의 신자들
- 베드로 사도의 설교에 마음이 찔린 사람들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베드로의 권고에 세례를 받아 신자가 3000명가량 늘었다. 사진은 세례를 기념하기 위해 요르단 강으로 행렬을 지어가는 신자들. [CNS자료 사진]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습니다. 그날 3000명가량 신자가 늘었습니다. 사도들을 중심으로 120명가량 되던 공동체에 3000명의 새 신자가 합류하면서 첫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이룹니다.
개종한 첫 사람들에 관한 대목은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2,37ㄱ)로 시작합니다. 마음이 꿰찔리듯 아팠다는 것은 양심의 가책을 심하게 받았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베드로 사도가 한 말이 무엇이기에 이들은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했을까요?
우선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내용을 다시 살펴봅시다. 그의 설교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나자렛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시어 주님이요 메시아로 삼으셨다. 2) 우리는 그분 부활의 증인이다. 3) 우리가 하는 말을 여러분이 저마다 제 지방 말로 알아듣고 있는 이 현상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주님이요 메시아로 삼으셨음을 알려주는 표징이며 구약의 요엘 예언자가 예언한 내용이 성취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베드로의 말은 유다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 바로 ‘주님이요 메시아’라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들이 주님이요 메시아이신 분을 죽게 했다는 말에 유다인은 가슴이 찔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성령을 받아 다른 언어로 말하는 제자들을 두고 “새 포도주에 취했군” 하고 빈정거린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2,13), 베드로의 설교가 끝났을 때도 곧이곧대로 듣지 않은 유다인들이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양심에 가책을 느낀 유다인들이라면 뭔가 대책을 강구해야겠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래서 그들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2,37ㄴ) 사람들의 이 질문은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루카 3,3)를 촉구하는 요한 세례자의 설교를 들은 군중이 세례자에게 한 질문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루카 3,10) 군중의 질문에 요한 세례자는 가진 것을 나눠주고(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이나 먹을 것을 가진 사람), 정해진 것 이상으로 요구하지 말며(세리들),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봉급으로 만족하라고(군인들) 각 사람의 처지에 맞는 구체적인 처방을 내려줍니다. 지금까지 살았던 삶의 방식을 바꾸라는 것입니다.(루카 3,11-14) 이것이 회개이지요. 그러고는 물로 세례를 베풉니다.(루카 3,16)
그런데 같은 질문에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들과 또 멀리 있는 모든 이들, 곧 주 우리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에게 해당됩니다.”(2,38-39) 요한 세례자의 답변과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는 베드로의 답변을 넷으로 나눠 살펴봅니다.
① 회개하십시오: 회개는 잘못을 뉘우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행실을 바꾸는 데로 이어져야 합니다. 요한 세례자가 말했듯이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기 위한 회개여서는 안 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루카 3,7-8 참조)
②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죄의 용서를 위한 세례라는 점에서 베드로 사도의 말은 요한 세례자가 선포한 세례와 일맥상통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권고합니다. 반면에 요한 세례자는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요한은 자신이 주는 세례와 자기보다 뒤에 오실 분이 주실 세례가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루카 3,16)
요한이 ‘그분께서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한 예언은 오순절에 사도들을 비롯해 제자들이 불꽃 모양으로 내려오는 성령을 받음으로써 실현됐습니다. 사도들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제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실제로 보내 주신 그분의 이름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사람들에게 권고하는 것입니다.
③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에서는 성령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성령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영인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선물은 일차적으로는 베드로 사도의 오순절 설교의 대상, 곧 예루살렘 주민을 비롯한 유다인들에게 해당합니다. 하지만 그들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④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들과 또 멀리 있는 모든 이들, 곧 주 우리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에게 해당됩니다: 베드로 사도는 여기서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된다는 약속이 유다인들에게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들 곧 모든 민족에게도 똑같이 해당한다고 설파합니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느님의 영 곧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마지막 날의 표징입니다. 이 마지막 날에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은 심판을 받겠지만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2,16-21 참조)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 마지막에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2,26)라고 함으로써 예수님이 요엘 예언자가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한 그 주님이심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여러분 자신을 구원하라’(2,41)고 타이릅니다.
베드로의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는데, 그날에 신자가 3000명가량 늘었다고 루카는 기록합니다.(2,42)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부활하신 나자렛 예수님을 주님이요 메시아로 고백하고 그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이들의 공동체 곧 그리스도 교회 공동체가 이렇게 오순절에 첫 출발을 합니다.
생각해봅시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예루살렘의 첫 그리스도교 신자들처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성령을 선물로 받은 이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성령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은 구원의 기쁨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날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가는 우리가 정말 구원의 기쁨을 안고 살고 있는지요?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사도행전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우리가 계속 성찰해야 할 내용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2월 24일, 이창훈 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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