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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라삐 문헌 읽기: 성조들의 지팡이, 모세의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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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26 조회수8,916 추천수0

[라삐 문헌 읽기] 성조들의 지팡이, 모세의 지팡이

 

 

탈출기 2장은 모세의 극적인 출생 이야기로 시작하여,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의 일화는 건너뛰고 성인이 된 모세가 이집트인을 살해한 이야기로 넘어간다(11-15절).

 

「성경」은 ‘살인자’였던 모세의 지난날을 빼거나 보태지 않고 적나라하게 밝힌다. 게다가 도망자 모세는 이방인 사제의 딸 치포라와 혼인하여 아들까지 낳고 산다(16-22절). 유다인들에게는 이 대목이 얼마간 불편하고 혼란스러웠을 테고, 뭔가 해명이나 부연이 필요했을 법하다.

 

한편 모세가 하느님을 뵙고 소명을 받을 때(3-4장), 하느님께서 모세를 보내셨다는 표징으로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주시는데, 이때 모세가 지닌 지팡이를(4,2-4 등) 도구로 이용하신다. 이 지팡이는 탈출기 안에만 해도 스물세 번이나 등장한다. 라삐들이 이 대단한 지팡이의 기원을 두고 그냥 지나쳤을 리 없다.

 

다음 이야기는 모세의 살인과 도망, 치포라와의 첫 만남, 미디안 정착, 이미 한참 전부터 주인을 기다려 온 지팡이에 얽힌 이야기로서, 아람어 성경 「타르굼 차명 요나탄」(탈출 2,11-12.21), 「미드라시 탈출기 라바」(1,30-32; 8,3), 「라삐 엘리에제르의 어록」(40장)에서 추려 엮었다.

 

젊은 모세는 자기 동포들이 극심한 노역에 시달리며 매를 맞는 것을 보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온 세대를 통틀어 이집트인들 가운데에는 개종자가 없었다. 분명히 앞으로도 그들 자손한테서는 회개할 이가 나올 리 없다.’ 이런 확신이 들자 모세는 이집트인을 때려눕히고 모래 속에 파묻었다. 곧 이 일이 소문이 났다는 것을 알고, 이집트에서 달아나 떠돌다가 미디안에 이르게 되었다. 어떤 우물가에서 목자들이 물 긷는 여인들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는, 여인들을 도와 목자들을 쫓아내고 양들에게 물을 주었다.

 

“우리는 이트로 사제의 딸들입니다. 아버지께서 우상 숭배를 그만두신 뒤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목자들도 우리 가축들을 돌보지 않아 이렇게 나서게 된 것인데, 우리가 채운 물을 목자들이 빼앗아 자기네 가축들에게 먹입니다. 오늘도 그들이 우리를 우물에 빠뜨리려고 위협하는 중이었는데, 때마침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모세는 그들 사정을 듣고 공감하였다. “도울 수 있어 저도 기쁩니다. 안전하게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모세는 그들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치포라는 용기 있고 신중하며 말을 잘하였다. 모세는 그가 자신의 이상형이라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고백하였다. “저는 여행 중이고 당신 같은 여인을 찾고 있었습니다. 제 아내가 되어 주겠습니까?” 치포라는 가던 길을 멈추고 모세를 쳐다보았다. “제가 승낙한다 해도 어려운 일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당신 딸들과 혼인하려는 사람은 우리 집 정원에 있는 나무를 뽑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뽑기 힘든 큰 나무입니까?” “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누구든 만지기만 해도 삼켜 버릴 듯이 힘이 셉니다. 들어본 적 없으실 겁니다. 이 나무는 사실 지팡이입니다. 거룩하신 분의 이름과 다른 비밀의 상징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첫 안식일 전날 해가 질녘에 거룩한 옥좌에 있는 청옥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아담에게 주셨고 그다음에는 에녹에게, 그 다음은 노아, 셈,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에게, 이집트에 가서는 야곱이 요셉에게 넘겼습니다. 요셉이 죽은 뒤에는 이집트인들이 그것을 훔쳐 파라오 궁에 가져다 두었는데, 그 당시 파라오 궁의 서기관이셨던 아버지께서 그것을 보시고 지팡이의 아름다움과 신성함에 놀라, 수년 전 미디안에 오실 때 지팡이를 가져오신 것입니다. 어느 날 정원을 거닐다가 무심코 지팡이를 땅에 박았는데 그 뒤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지팡이가 뽑히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싹도 나고 꽃도 피었습니다. 소용없는 일이니 너무 애쓰지 마십시오.”

 

이트로 사제의 딸들이 할아버지 르우엘에게 돌아갔다. 르우엘은 모세를 극진히 대접하였으나, 모세가 파라오 앞에서 도망친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를 구덩이에 가두었다. 그러나 치포라는 십 년 동안 몰래 그에게 음식을 대 주었고 십 년이 다 되었을 때 그를 구덩이에서 꺼내 주었다. 모세는 르우엘의 정원으로 들어가 자신에게 기적과 대단한 일을 베푸신 주님 앞에 감사하고 기도하였다.

 

모세는 치포라의 아버지 이트로에게 치포라를 아내로 맞이하게 해달라고 청혼하였고, 이트로는 치포라의 말대로 지팡이를 뽑으면 딸을 내주겠다고 약조하였다. 치포라와 모세는 정원으로 가 나무를 살펴보았다. 보기에는 여느 나무와 다르지 않았으나 모세가 나무줄기를 만져보았을 때 그를 밀고 잡아당기는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모세는 스스로 다짐하였다. ‘나는 이집트 왕자이며, 요셉과 야곱의 후손이다. 이사악과 아브라함, 그리고 셈과 노아와 아담의 후손이다.’ 그는 하느님의 힘이 자신에게서 흐르는 것을 느끼며 줄기를 당기자 나무도 그를 끌어당겼다. 그는 오랜 시간 지팡이와 씨름하였고 이트로와 치포라와 다른 이들도 모여서, 누가 이길지 조용히 지켜보았다. 어두워질 때까지도 계속 막상막하였다. 모세는 기진맥진하였으나 마지막 순간까지 있는 힘을 다 모으자 지팡이 나무의 뿌리가 땅에서 느슨해지기 시작하였다.

 

모세가 힘껏 잡아당겼을 때 마침내 그 나무는 공중으로 나와 지팡이로 바뀌었다. 햇볕에 청옥이 반짝이는 눈부신 지팡이였다. 그 위에는 위대하시고 영광스러우시며 거룩하신 하느님의 이름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의미를 알 수 없는 다른 신비한 문자들도 있었다. 모세는 지팡이를 들고 이트로에게 갔다. “약조하였듯이 내 딸 치포라를 자네에게 주겠네. 혼인하게나. 이 지팡이도 자네 것이네. 이제는 이 지팡이가 자네를 섬길 것일세.”

 

이렇게 하느님께서 첫 안식일 전날 해가 질 녘에 창조하신 지팡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고 나올 모세 예언자에게 넘어갔다. 이 지팡이가 이집트에서 기적을 일으킬 바로 그 지팡이다. 지팡이에 새겨진 신비한 문자들은 열 가지 재앙의 첫 글자들로서, 하느님께서 히브리인들을 내보내시려고 이집트인들을 공격한 그 재앙들을 가리켰다.

 

성경에는 없으나 라삐들이 해석하고 성찰한 몇 가지 부연들이 드러난다. 첫째, 모세가 이집트인을 죽인 것이 순간적인 충동에서가 아니라 심사숙고한 끝에 이루어졌으며, 그 대상이 개종하거나 회개하여 하느님을 섬길 리 없는 이방 민족이었음을 상기시켜 모세의 살인을 정당화한다.

 

둘째, 치포라의 아버지는 이방인 사제였으나 이제는 우상 숭배를 그만두었고, 게다가 성조들의 지팡이를 손에 넣어 모세에게 지팡이를 건네준 장본인이므로 모세와의 혼인에는 결격사유가 없음을 시사한다.

 

셋째, 오경에 여러 이름으로 등장하는 미디안 사제의 이름을 두고(르우엘, 이트로, 호밥 등) 이트로가 치포라의 아버지이고 르우엘은 할아버지라고 정리한다.

 

넷째, 고대 세계에서 지팡이는 힘과 권위의 상징이었다.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이끌 때 사용하던 지팡이도, 이미 태초에 창조되어 아담 이래 성조들의 역사에 동참해 오다, 막강한 힘을 지닌 기적의 도구로 모세를 위해 마련되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열 가지 재앙을 암시하는 지팡이의 신비한 글자들에서, 이집트 탈출과 구원이 창조 때부터 이미 예견되었고 꼭 일어났어야 할 사건이었음을, 이 미드라시 아가다를 통해 라삐들은 성찰하고 있다.

 

* 강지숙 빅토리아 - 의정부 한님성서연구소에서 구약 성경과 유다교 문헌을 연구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9년 2월호, 강지숙 빅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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