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제[#6032]에 국한해서, 저는 누가 누구를 편 가르기 해서는 결코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없을 것 같기에 사전에 이 점 깊은 양해를 구합니다.
1. 서론
저는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 출발되었다.’라는 것을 강력히 믿는 사람의 한 사람입니다.
비록 참 신앙인은 아닐지라도 그 교리만은 그래도 저의 철칙입니다.
저를 내세우려는 것은 결코 아님을 이해해 주십시오.
제가 이곳 성경 묻고 답하기를 통해서 성경을 보는 눈과 성경의 깊이를 알아가면서 얻은 나름대로의 결론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 출발되었다는 것을.
그렇지만 믿는 기준은 그럴지라도
행동하는 기준은 때로는 어긋나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럴 때 참 인간은 서글퍼 보입니다.
그 아픔을 달래기 위해 또 성경을 묵상해야 되는 게 아닐까요?
2. 일반 사항
아래 글 번호 #6032[잠언 8장에서의 “지혜”가 “예수그리스도”를 지칭이냐 아니냐?]의 최초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세 가지 견해가 있더군요.
1]그렇다. 예수님이다.[그러면서 ‘삼위일체’논리를 제시하면서
별도 인터넷 주소의 내용을 읽고 묵상할 것을 권유]
2]그럴 것 같기도 합니다만,
일반 명사 ‘지혜’를 나타내는 것 같다.[주석 성격 내용 인용]
3]아니다. 예수님이 ‘지혜’를 구약의 지혜 문학에서 찾았다.
위의 세 가지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답입니다.
다만 위 3]의 해법 제안자님은
별도 ‘잠언’에 관한 모든 사항이 요약된 글을 #6033으로 게시를 했습니다.
저는 2]를 주장했지만 3]의 의견을 접하고
‘이것이 #6032의 질문에 가장 근접하는 내 나름의 답변으로 생각'하면서
나의 관심은 여기에서 끝났습니다.[상세 내용 최초 질문 참조]
3. 본론
문제의 발단입니다.
소순태 씨는 이 묻고 답하기의 몇 가지 문제[#6020 ~#6037]에 대해 그 특유의 스타일로 계속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 댓글 속에는 #6032에서 자기랑 반대되는 견해를 제시한 반박성인 것도 포함된 것은 물론입니다.
저는 지금부터 그 특유의 스타일에 언급하려합니다.
그게 이 문제의 본질이고, 그 문제의 정리 없이는 앞으로도 계속 이런 유사한 논쟁이 또 일어날 것이기에 차제에 아래와 같이 확실히 해 두고자합니다.
이 그의 스타일이 가끔은 상대를 짜증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자기의 주장은 절대 바꾸지 않는다.
2]상대방이 항복할 때까지 집요하게 댓글을 단다.[그것도 이곳 묵상 글방, 자기 홈피 등 사방에]
3]그 내용도 항상 은근 설쩍[?] 자기와 견해가 다른 사람 비방성을 깔면서 한다.
4]그리고는 댓글 달면서 자기 개인 관리로 방문을 권유한다.
사실 이 네 가지 외에 짜증스런 소생의 개인감정이 담긴 내용의 글은
차마 여기서 공론화를 하기에는 소순태 씨의 자존심보다는
소생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것 같기에 저 혼자만으로 안고 갈 겁니다.
자 크게는 위 네 가지입니다.
4. 소생의 의견
다시 #6032[잠언의 지혜]의 질문과 관련됩니다.
이런 형이상학적인 문제는 언제나 정반합[正反合]입니다.
각자의 의견 게시에, 스스로가 상대방의 의견에‘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면 그만일 것이라는 게 소생 나름대로 의 결론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달랐습니다.
집요하게 댓글로 자기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했습니다.
비단 그 문제에 국한된 것도 아닌 여러 곳에서요.
그렇지만 저는 그게 그러려니 하고 끝난 상태입니다.
그렇지만 다시 질문을 되돌아봅시다.
어디 정답 아닌 게 있나요?
잠언의 내용입니다.
<지혜와 창조>
8: 22.“주님께서는 그 옛날 모든 일을 하시기 전에 당신의 첫 작품으로 나를 지으셨다. 23 나는 한처음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영원에서부터 모습이 갖추어졌다.
질문은 ‘이 지혜가 예수님을 지칭합니까, 아닙니까?
이 얼마나 단순한 질문입니까?
그리고 위의 2의 일반사항에 있는 세 가지 답변, 어디 하나 틀린 게 있을 까요?
저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 정답이라 생각합니다.
창세기 1장 1-3절입니다.
1.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2.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3.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소생의 관점은 하느님 천지 창조 이전에 꼴을 갖추지 않은 땅, 그 위의 거대한 물 덩어리[심연], 그리고 이걸 둘러싼 어둠, 그 위의 하느님의 영[하느님, 즉 예수님]이 창조 이전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부터 하느님은 빛으로 시작하여 창조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지혜는 이미 하느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하느님 그 자체이십니다.
마치 진리가, 사랑이 그분인 것처럼 말입니다.
이게 소생의 근본 뜻이었고 그래서 위 2]의 ‘그럴 것 같기도 합니다만,
일반 명사 ‘지혜’를 나타내는 것 같다.‘라고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상세한 것은 #6032를 참조]
위 2의 일반 사항에 제시된 3가지 답변, 어디 하나 틀린 게 있나요!
‘그럴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그만인 것 아닙니까?
그렇지만 그분은 집요하게 ‘묻고 답하기 [#6020 ~#6037]’의 여러 곳에다가 ‘댓글’을 ‘추가’ 또 ‘추가‘를 했습니다.
은연중 소생이 제시한 그분 특유의 스타일로 말입니다.
제가 그분 ’특유 스타일‘을 또 이야기하는 것은
그 속에는 ’상대방의 짜증‘을 감안해 달라는 겁니다.
저는 이 문제[#6032] 만큼은 끝까지 감내했습니다.
비록 제가 해법을 제시한 한사람이지만, 저를 짜증스럽게 하였지만 ’그럴 수도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제가 질문한 ’구약에 기록된 최후의 역사적 사건은?[글 번호 #6020]‘에서 발단 되었습니다.
늦은 시각 밤에 주고받은 댓글입니다.[사실 이 글들은 소생이 이미 삭제한 내용임.]
1]소순태///다른 한편으로, 그리스도교측에서는 전통적으로 예수님께서 당신의 공생활을 시작한 시점을 신약의 시대의 시작점으로 삼으므로, 구약 시대의 마지막 기록은, 구약 성경의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약 성경의 네 복음서들 중에 기록 되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이들 복음서들의 본문에서 세례자 요한에 대한 기록이 "소위 말하는 구약 시대"의 "마지막 기록"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교측에서 구약 시대의 마지막 예언자로 불리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2]박윤식///소생의 질문은 구약의 역사적 사건을 우리가 이야기하는 구약 성경에서 찾고자 함이었는데요. 질문의 핵심은 ‘구약 시대의 마지막 기록’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기록’을 어떤 기준으로 열거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잉태 소식, 그분의 세례 등 그건 소생의 질문으로 할 사항도 아니고 할 수도 없을 것 같군요. 질문의 요건은 우리가 성경 공부로 배우는 ‘구약의 마지막 역사적 사건’에서, 그 내용을 리얼하게 다루는 내용이 역사서 또는 예언서의 어디에 있는가가 핵심인데요? 그리고 구약 시대의 마지막 기록으로 삼으실 경우는 어디인가요?
3]소순태///[소생의 질문은 구약의 역사적사건을 우리가 이야기하는 구약성경에서 찾고자 함이었는데요. ... 구약의 마지막 역사적 사건’에서, 그 내용을 리얼하게 다루는 내용이 역사서/예언서의 어디에 있는가가 핵심인데요?] <---- "주석 성경"의 다니엘서 입문, 제2576-2577쪽들에 주어진 설명을 참고하십시오.
4]["주석 성경"의 다니엘서 입문, 제2576-2577쪽들에 주어진 설명을 참고하십시오.]라는 답변이 과연 누구한테 하는 답변인지 참 답답하외다. 아니, 아예 ‘쿰란 동굴의 사해 사본’을 찾아 참조하라고 하는 것이 백번 좋을 것 같구먼유. 소순태 님, 이 질문은 님이 박윤식 개인에게 하는 답변이 아니외다. 소생의 질문이 아무리 가치가 없다손 해도 ‘입문서’어디를 참조하라는 게 이곳 이용자님께 답변하는 자세인가요. 님께서 ‘[입문서, 제2576-2577쪽]에 의하면 무엇이라고 사료된다.‘라고 답변의 댓글을 달 처지가 되는 자세가 없다면 이 댓글 스스로 삭제하시오. 어디 버릇없이.’ 주석 성경‘이라도 사 주면서 하면 몰라도, 어휴...
5]박윤식(big-llight) (2012/05/06) : 이곳은 님과 나의 개인 성경 공부하는 코너가 진정 아니외다. 소생의 질문은 이곳 이용자의 고통 질문일수도 있고, 님의 그 답변은 개인으로 개진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의 답변일 수 있어요. 그런 입장에서 ‘주석성경’의 ‘다니엘서 입문, 제2576-2577쪽들에 주어진 설명을 참고하십시오.’라는 답변이 과연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요? 님은 지금 그 ‘주석 성경’을 가지고 계신가본데, 일반인은 없는게 대부분이요. 그래서 이곳 ‘성경 묻고 답하기’성격상 이렇게 게시하면 되지 않아요. 그리고 이런 답변은 개인 간의 ‘쪽지’로만 가능한 거죠.
6]이상으로 님의 고견에 대해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소생은 이곳 ‘묻고 답하기’만큼 성경 배움에서 가치있는 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생의 수준으로 볼 때, 성경 박사님들 참으로 많다고 생각합니다. 소생은 님도 그중 한분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문제는 답변으로의 접근 과정입니다. 최소한 이곳에서 답을 끝내도록 합시다. 구체적인 것이 필요하다면 별도 첨부 또는 클릭하여 다른 곳에서 ‘검색’수준으로 해도됩니다. 님은 이걸 하기 싫다면 관둬라는 식입니다. 이것은 위험한 발상이며 작금의 답변 방식이 결코 아닙니다. 오해가 계셨다면 이해를 바랍니다.
이 내용 이외에 댓글이 20여개 정도의 댓글을 더 주고받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삭제하면서 마지막 위 6]글을 주었습니다. 이 과정에 소순태 씨는 삭제를 왜 하였느니, ‘사과를 해야 하지 않느냐?’라는 식의 댓글도 있었음을 첨언합니다. 저는 이때부터 소순태씨의 그 특유의 스타일이 장점에서 단점으로 보여지기 시작했고, 그가 은연중 저를 비꼬는 행위에 나름대로 소생의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5.결론
이 글에 대한 결론입니다. 서론에서 소생은 언급했습니다.
하느님만이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고 주인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가끔 그분을 거부합니다.
때론 믿음도 저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적으로 살고자 믿음의 사람이 되었고
계속 그 깊이를 더해 갈 생각입니다.
이 삶속에 하느님의 말씀이 깃들어져야합니다.
그게 깃든 우리의 삶은 행복할 것이고 평화가 자리할 겁니다.
이게 졸을 것 같기에 저는 이 믿음의 길을 계속 갈 겁니다.
소순태 씨랑 개인감정이야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주위에서 좋다하는 것은 그게 좋다고 수긍하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자기 것만이 최상이고 최고는 아닙니다.
함께 더불어 가야합니다.
저는 소순태씨가 개인적으로 작금 논의되고 있는 의견에
귀를 기울려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것은 최소한 이곳에다 답변을 해 주시고,
더 추가적인 것은 다른 곳을 소개해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더 이상의 것을 그분께 부탁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성경 사랑과 함께 이웃 사랑을 해야합니다.
더불어 가는 삶의 과정에 성경이 있어야지,
성경이 먼저 있고 삶이 그 뒤에 있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신이 아니고 사람입니다.
실수가 많은 죄 많은 축에 드는 인간입니다.
그래서 그분 닮아 가는 과정으로 뛰어들어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저의 의견을 소순태씨께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더 요구합니다.
그리고 막말한 것이 있다면 그 막말은 언젠가는 빈말로 들통 납니다.
저는 그게 속 좁은 빈말이 되기 전에 그때는
다시 한 번 더 사과와 양해를 구하면서 분명히 삭제할 것입니다.
그러나 막말과 빈말까지의 시일이 좀 소유될 것 같은 생각입니다.
소생의 이 글에 비록 개인적인 언짢은 표현이 있더라도 제삼자적인 입장에서 이해를 해 주실 것을 마지막으로 부탁 올립니다.
저는 누군가의 쪽지에 ‘당신 총대 매냐?’라는 오해도 받았지만
저는 이곳에 출입한 지 이제 겨우 4년 남짓된 몸입니다.
이곳의 나름대로의 화평과 건전한 발전,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조용히 배우면서 묵상하는 장소로 이용하고자하는 게 소생의 가벼운 몸부림입니다.
이제부터는 저를 이해해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것이 저의 이런 글의 마지막이 되고자 다짐하는 이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더 알고자 하는 분야는 계속 질문할 것이고,
그 모든 답변에는 대부분은 ‘그럴 수는 있겠구나.’라고만 생각만 할 작정입니다.
금번 이 논쟁의 시작과 끝에 저랑 소순태 씨만의 문제로 지켜봐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면서 각자의 의견을 겸허히 자제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저 이 글이 이곳 묻고 답하기의 발전적인 방향으로의 조금이나마 영향을 주었으면 하는 바램뿐입니다.
이렇게까지 하소연하는 저의 의견에 그의 변치않는 대응에는
일체의 저의 자제를 마음 아프지만 삼가할 것입니다.
그저 시간만 흐름을 지켜볼 것입니다.
끝으로 이런 픽션같은 다큐멘터리를 쓰는 것에 죄송스럽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하느님만이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고 주인입니다.
물론 지혜도 포함됩니다.
장문의 저의 글을 읽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