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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묵상 내용 카테고리 |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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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글 질문 성서를 쓰기 전에 드리는 기도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6-18 조회수387 추천수0 신고

[참조 문헌]

[1]▶ (루카 24,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2]▶ (마르 1,4)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3]▶ (주석 성경 : 마르 1,4) “회개의 세례” - “세례”라는 낱말은 신약 성경에서 요한과 그리스도교의 세례를 가리키지만, 본디는 유다교에서 제의적(祭儀的) 더러움을 정화하기 위한 침수(沈水)나 세정(洗淨)을 뜻하였다. 기원후 1세기 말부터는, 유다교에서 개종자를 완전히 받아들인다는 표시로 행한 침수예식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의 시대에는 이것이 여러 종교 운동 단체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되었는데, 예컨대 쿰란 공동체가 여기에 해당된다. 그곳에는 장차 이루어질 근원적인 정화에 대한 기대 속에, 서원을 한 회원들이 날마다 침수로 자기 몸을 정화하였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는 다르다. 이 세례는 심판의 때, 곧 시간이 찼을 때 행해질 세례에 (8절 성령으로 세례) 대한 마지막 준비로서 모든 이에게 단 한 번 베풀어졌다. 그 전제 조건은 “회개”이고, 그 목적은 세례가 행해지는 그 순간에, 또는 하느님의 나라가 선포될 때에 선물로 베풀어지는 “죄의 용서” (이사 1,16; 4,4; 에제 36,25에 나오는 이스라엘 정화의 약속 참조)이다.

[4]▶ (마르 1,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5]▶ (마르 1,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6]▶ (요한 1,33)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7]▶ (사도 2,38)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8]▶(사도 1,11;마태 24,32,마르 13,24-27;루카 21,25-28) 예수님의 재림

[9]▶ (마태, 25,31-46) 최후의 심판 

1. 일반적 묵상 내용
죄의 용서는 ‘회개’가 전제되어야 한다.
회개 없는 죄의 용서는 ‘기만’이며 진정한 ‘죄의 용서’가 아니다.
이 죄의 용서의 예식이 ‘세례’이다.
따라서 복음에서 이야기하는 세례는 ‘회개를 전제로 한 죄의 용서’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세례, 즉 우리가 보편적으로 이야기하는 세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다.
그 옛날 세례자 요한이 베푼 세례, 사도 행전에서 사도 베드로의 세례, 지금 우리가 신부님으로 받는 세례 등이 다 이에 해당된다.
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베푸는 세례는 단 한 번이다.
이 세례를 받은 우리는 또 한 번의 심판을 받는다.
그분 오시는 날에 받는 최후의 심판이다.
이 심판도 일종의 세례이다.
비록 형식은 심판일지라도.
이 심판의 세례는 그분이 직접 그날에 주관하시면서 성령의 세례이다.
이 세례를 통해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이 영원한 생명은 회개를 통한 죄의 용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죄의 용서 : 자신의 회개를 통한 남의 용서를 통해서 세례의 이름으로 ‘선물'이라는 용서를 우리는 그분께 받는다.]
 

2. ‘심판의 때, 곧 시간이 찼을 때 행해질 세례’에 대한 소생의 견해
가. 참조 문헌[이하 ‘참조’라 함] 2, 3의 ‘심판의 때, 곧 시간이 찼을 때’를 참조 5의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의 때’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예수님이 육화되어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받고 갈릴레아 전도의 시작이지
심판의 때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나. 주석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심판의 때는 참조 8, 9의 예수님 재림시 최후의 심판으로 보는 편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다. 따라서 마르코 복음 사가는 '죄의 세례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이야기[참조 2]하면서,
이 세례의 유형을 두 가지로 즉 하나는 그가 베푸는 '물의 세례'[예수님 이름으로 베푸는 지금의 세례의 일종 임. : 참조 1,7]와 후일 예수님 재림 시 그분이 직접 주관하는 심판인 '성령의 세례'로 구분[참조 3, 4]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라. 예수님은 직접 재림한 그날에 성령으로 우리를 세례를 통해 심판하실 것이다.
그분만이 성령의 세례를 주관[참조 4,6]할 수 있다.
 

3. 비고
죄의 용서는 ‘회개’가 전제되어야 한다.
회개 없는 죄의 용서는 ‘기만’이요 ‘위선’이며 진정한 ‘죄의 용서’가 아니다.
이 죄의 용서의 예식이 ‘세례’이다.
회개가 전제되지 않는 세례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복음의 세례는 ‘회개가 전제된 죄의 용서를 선물로 받는 예식’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세례, 즉 우리가 보편적으로 말하는 세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다.
그 옛날 세례자 요한이 베푼 세례, 사도행전에서의 바오로의 세례, 지금 우리가 신부님으로 받는 세례 등이 다 이에 해당된다.
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베푸는 세례는 이 세례를 받은 우리는 또 한 번의 심판을 받는다.
그분 오시는 그날의 최후의 성령 세례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이 예수님이 직접 주관하시는 세례가 일종의 심판이며, 이 심판을 위해 우리는 겸손과 ‘작은이’를 돌보는 참된 신앙인이 되어야한다.
이번 유정희 님의 질문과 이삼용 님 등의 답변 및 댓글을 통해 소생이 ‘죄, 죄의 용서, 회개, 세례의 구분 등’에 묵상의 시간을 갖도록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찬미 영광 드리며, 소생의 의견 또한 개인의 묵상임을 전제로 오해 없는 이해를 바랍니다.
그리고 위 소생의 글 번호 #6124및 관련 의견에 대한 많은 분들의 고견으로 소생이 계속 묵상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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