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사도행전 이야기14: 사도들이 기적을 일으키다(사도 5,12-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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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9-04-22 | 조회수6,961 | 추천수0 | |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14) 사도들이 기적을 일으키다(사도 5,12-26) 사도들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표징과 이적
- 사도행전에서 세 번째로 요약해서 전하는 초대 교회 모습에서는 베드로 사도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사진은 베드로 사도의 무덤 위에 세워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안. [CNS 자료 사진]
루카는 사도들, 특히 베드로의 활동과 함께 다시 한 번 초대 교회 공동체 모습을 요약합니다.(5,12-16) 사도행전에서 첫 신자 공동체의 생활(2,42-47), 초대 교회 공동체 생활(4,32-37)에 이어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전하는 공동체 생활 모습입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요약해서 전하는 세 번째 대목은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백성 가운데에서 많은 표징과 이적이 일어났다”(5,12ㄱ)로 시작합니다. 신약성경에서 ‘표징과 이적’은 모두 16번 언급됩니다. 그 가운데 세 번은 부정적입니다. 즉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 선택된 이들을 속이려고 표징과 이적들을 일으킨다는 것이지요.(마태 24,24; 마르 13,21; 2테살 2,9) 모두 종말에 앞서 거짓 표징과 이적으로 사람들을 현혹한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표징과 이적이 믿음의 동기로 작용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목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카나에 가셨을 때 카파르나움에서 죽어가는 아들을 낫게 해달라는 왕실 관리의 청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요한 4,48) 그러고는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왕실 관리의 아들을 낫게 해주십니다. 그 결과 그 왕실 관리와 온 집안이 믿었지요. 나머지 열두 번 언급되는 ‘표징과 이적’은 대부분 백성에게 믿음의 동기로 작용하는데, 사도행전에서 9번, 서간에서 3번 나옵니다.
초대 교회 모습을 세 번째로 요약하는 이 대목이 ‘사도들이 백성 가운데에서 많은 표징과 이적을 일으켰다’가 아니라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백성 가운데에서 많은 표징과 이적이 일어났다”로 표현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공동체 모습을 요약해서 전하는 첫 번째 대목에서도 똑같이 나옵니다.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이적과 표징이 일어나므로….”(2,43) 많은 표징과 이적이 사도들을 ‘통하여’ 일어났다는 것은 표징과 이적을 일으키는 주체가 사도들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이심을 나타냅니다.
이는 또한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말하지도 가르치지도 말라는 최고의회 지도자들의 위협을 받고 풀려난 사도들이 “한마음으로 목소리를 높여” 간절하게 바친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셨음을 드러냅니다. “이제 주님! 저들의 위협을 보시고, 주님의 종들이 주님의 말씀을 아주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저희가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는 손을 뻗으시어 병자들을 고치시고,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징과 이적들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4,30)
루카는 “그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솔로몬 주랑에 모이곤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감히 그들 가운데에 끼어들지 못하였다”고 기록합니다.(5,12ㄴ-13ㄱ) 사도들이 솔로몬 주랑에 모인 것은 예수님께서 성전 솔로몬 주랑을 거닐곤 하셔서 예수님을 떠올리기 쉬운 곳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요한 10,23; ‘사도행전 이야기’ 3월 17일자 1506호 참조) 다른 사람들이 감히 사도들 가운데 끼어들지 못한 것은 사도들을 통해 많은 이적과 표징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두려웠기 때문일 것입니다.(2,43 참조) 하지만 이 두려움은 단지 무서움이 아니라 사도들을 통해 표징과 이적을 일으키시는 주님께 대한 두려움 혹은 경외심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표징과 이적
사도들을 통한 표징과 이적들은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불러일으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도들에 대한 존경심과 사도들이 전하는 하느님 말씀 곧 복음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는 동기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루카는 “백성은 그들을 존경하여, 주님을 믿는 남녀 신자들의 무리가 더욱더 늘어났다”(5,13ㄴ-14)고 합니다.
루카가 세 번째로 요약해서 전하는 초대 교회 공동체 생활 모습에서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요약 기사에서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 나옵니다. 병자들의 치유에 관한 내용입니다. “사람들은 병자들을 한길까지 데려다가 침상이나 들것에 눕혀 놓고, 베드로가 지나갈 때에 그의 그림자만이라도 누구에겐가 드리워지기를 바랐다. 예루살렘 주변의 여러 고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병자들과 또 더러운 영에게 시달리는 이들을 데리고 몰려왔는데, 그들도 모두 병이 나았다.”(5,15-16)
이 구절은 우선 예수님의 치유 활동과 관련된 복음서 대목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마르 6,55-56)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루카 6,19)
이 구절은 또 사도들 가운데서 베드로 사도의 위치가 어떠한지를 알게 해줍니다. 베드로 사도는 마치 예수님처럼 다른 사도들보다 더 권위를 지닌 사도로서 예루살렘 초대 교회 공동체의 중심인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루카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당신을 모른다고 할 것임을 예고하신 후 그러나 “네가 돌아오거든 네 형제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루카 22,32)라고 하시는데, 사도행전의 이 대목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그대로 실행하고 있는 것처럼 나타납니다.
생각해봅시다
사도행전에서 세 번째로 요약해서 전하는 초대 교회 공동체 모습에는 첫 번째, 두 번째와 다른 특징이 보입니다. 하나는 병자들과 더러운 영에 시달리는 이들의 치유를 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요약 기사에서는 음식을 함께 나누고 가진 것을 내놓고 공동으로 소유함으로써 공동체에는 궁핍한 이들이 없었다는 것이 강조됩니다. 이에 비해 세 번째 요약 기사에서는 병자들과 악령 들린 사람들의 치유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굶주림과 가난, 그리고 병고가 초대 교회 공동체의 주요 관심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공동체에서는 적어도 궁핍한 이가 없어야 하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우선으로 위안을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2000년 전 예수님 시대나 초기 교회 공동체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가난하고 굶주리는 이들, 그리고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이 사회로부터 가장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들일 것입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의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촉구하는 듯합니다. 적어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만이라도 굶주리고 가진 것이 없다고 해서, 몸과 마음이 병들었다고 해서 소외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4월 21일, 이창훈 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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