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차태욱 님, 3월 중순경 ‘새 아담과 새 하와’건은 이곳에서 처음 시작하여
여러 사람이 수십 개의 댓글을 달아가면서 밤새워가며 진지한 토론으로 갑론을박한 상태로
흐지부지 끝난 테마입니다.
그렇지만 원 질문 및 관련 댓글은 어떤 여유인지는 모르나 현재는 전부 삭제된 상태입니다.
상상을 해 보시면 얼마나 열띤 논의를 거친 상태였는지를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의 소순태씨의 결론이 금번 김재기 씨의 댓글에서
소순태씨가 게시한 댓글과 거의 같은 내용으로 기억됩니다.
물론 소생의 것은 댓글에 게시된 그대로입니다.
2. 그렇지만 그때에 이 내용에 대해서 서로의 견해가 너무 확고하였고
또 여러 사람이 토론하는 것이었기에 일치된 답변을 만들지 못한 채 자연히 끝났습니다.
사실 의견이 일치될 그럴 내용도 아니었기에 각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선에서
이해가 되리라 생각을 하고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종결되었고,
급기야는 최초의 글 게시자가 이와 관련된 모든 내용을 스스로 삭제를 하였더군요.
그것은 그만큼 당시엔 이 테마를 두고 감정이 격화되는 지경까지 갔다고 여겨지며
심지어는 일부 인신 공격성 대화도 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3. 이 내용을 다시 소순태씨는 금번 김재기 님의 질문의 댓글로 다시 거론하더군요.
이 새아담과 새하와가 다시금 이곳에서 재론되는 것은 소생 이해하기 곤란했습니다.
특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소생에 대한 편견으로 이 댓글[읽어야 되는 책들은 읽을 생각이 없고, 대신에, 자신 고유의 추측/판단을 내세우는 경우에, 앞으로 백 년이 지금처럼 흐르면 이런 의문들이 저절로 자동적으로 해결이 될까요?]을 게시한 것으로 추측합니다.
쉽게 말해 소생이 ‘공부는 하지 않고 억지 주장을 편다.’라는 그런 투이겠죠.
소순태 씨의 게시 진의는 각자 판단하시겠지만 소생은 심기가 대단히 불편했습니다.
4. 이 새 아담과 새 하와의 예수님과 성모님과의 비교에 대한 소생의 견해는 확고합니다.
두 분을 지칭하는 용어의 선정에 새 아담이면 어떻고 새 하와면 어떨까요?
또 아니다하면 어떨까요?
그렇지만 소생은 단지 지엄하신 하느님을 ‘새 아담’으로 호칭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다고 지금 이 시각에도 확고한 생각입니다.
이건 단지 제 개인의 의견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건 자유 아닐까요?
성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새 하와가 성모님을 의미한다하면 어떻고 그 반대로 아니다하면 또 어때요.
그 호칭이 그리 중요합니까?
그렇지만 이런 내용의 주장은 가끔은 때와 장소가 있어야합니다.
상대방 감정을 자극하면서 굳이 거론할 필요가 있을까요?
5. 우리 모두는 하느님과 성모님의 신원과 그 지위를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아담과 하와에 대해서도 잘 알죠.
다만 저는 소박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또 다른 호칭으로‘새 아담’을 사용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한분이신 그분을 ‘아담’의 지위로 두는 게 소생의 자존심에 어울리지 않더군요.
그렇지만 소생은 ‘삼위일체에 입각한 예수님이 아닌 인간 예수님에 대해서는
‘새 아담’으로 비교되어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새 아담으로 비교하는 것은 그렇더군요.
이걸 떠난 일반적인 것에 대해서는 소생이나 차태욱 님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생각합니다.
6. 이처럼 ‘예수님을 새 아담, 성모님을 새 하와라는 의견에 소생은 성경 어디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은 없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그렇게 정의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수차례 밝혔지만 소순태 씨는 그 내용은 틀렸으니,
그런 주장을 할 것 같으면 그 출처를 제시하라고 계속 요구합니다.
여기에 무 대응하면 이번처럼 또 꺼집어내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면서 요구를 합니다.
이상이 지금까지의 경과이며 소생이 이번에 댓글로 소순태 씨께 질문하게 된 배경입니다.
7. 소생은 차태욱 씨가 소생의 견해에 그 이해여부를 떠나
님 개인적인 생각에 대해 어떤 불만도 없습니다.
제 뜻에 잘못되어 반대하셔도 무방합니다.
문제는 이 내용에 관해서 소순태 씨의 댓글에
소생이 댓글로 소생의 견해를 밝히게 된 배경을 이해해 주시길 바랄뿐입니다.
여기엔 사사로운 개인감정이 상호간에 개입된 연유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면서
이 점에 대해 소생의 불찰도 있음을 솔직히 시인하면서 이해를 구합니다.
어찌보면 이번 건은 개인적인 감정에 게재된 문젭니다.
소생의 속 좁은 탓도 있습니다.
그때 그만 참으면 될 걸 후회도합니다.
그렇지만 소생이 이곳 게시판에 몇 차례 게시를 한 내용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 알고 보면 독한 사람 아닙니다.
왜 상대방의 생각을 억지로 바꾸도록 강요할까요?
일부 성경의 내용은 다양한 견해 속에 각자의 성경 지식으로 두어도 무방한 내용 아닙니까?
8. 저는 이 기회를 통해 이곳 ‘묻고 답하기’가
좀 더 긍정적인 측면으로 지양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지식 나부랭이의 과시를 떠나서 좀 더 쉽게 공개적인 묻고 답하기가 되길 바랍니다.
성경 또는 교리 분야에 부분적으로 정답이 없는 내용이 많을 겁니다.
그때는 ‘그럴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양보가 있으면 합니다.
개인 홈피로 클릭을 하라느니,
쪽지를 주면 답변을 해 주겠다느니,
누구누구 이 내용을 꼭 읽기를 강요한다느니
이런 글은 좀 조심성 있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재기 님의 이상한 질문에 소생과 소순태 씨간의 댓글 논쟁에 관심을 보여주신 차태욱 님께
다시 한 번 더 소생의 속 좁은 의견에 이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의견 자주 개진해 주시기를 부탁드리면서
더 좋은 소재로 이곳에서의 만남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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