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보신 것은 무엇일까? | 카테고리 | 성경 | ||
---|---|---|---|---|
이전글 | Re: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2| | |||
다음글 | 궁금함니다(아치에스행사) |2| | |||
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2-08-23 | 조회수295 | 추천수1 | 신고 |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예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신 3인방(?)을 통하여 말씀하시고자 하는 메세지가 무엇일까? 많이 묵상을 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궁금하지 않았던 부분이었기에 저도 무척 궁금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특별한 사랑을 베푸신 3인방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보시고 그 분들을 가장 먼저 사도로 부르셨는지를 보고자 했습니다. 마태오 복음서에는 00하는 것을 보시고 부르셨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겉과 속을 다 보시는 주님께서 네 분의 무엇을 보셨을까? 가장 먼저 제가 발견한 것은 형제애였습니다. 형제가 나란히 일하고 있는 상황에서 함께 부르셨고 함께 응답을 드렸습니다. 이 상황은 아주 저에게 중요한 장면이었습니다. 평상시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장면이기에 그렇습니다. 두 분, 곧 네 분은 형제가 마음과 뜻이 통하는 삶을 사셨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내기를 원하시는 삶인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을 사시고 계셨다는 뜻은 아닐까요?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동시에 응답할 수 있을까요? 또 한가지 가장 중요한 신명기 6장4절 이하의 말씀을 살아내고 계셨다고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그토록 꿈꾸던 메시아의 도래를 누구보다도 열망하고 고대하고 사셨을 것입니다. 신명기 6장4절이하의 말씀을 온 몸으로 사시면서 말입니다. 아마 이러한 것들을 예수님께서 보시지 않으셨을까? 하고 묵상한 것입니다. 그러한 준비가 되셨기에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부르시자 곧바로 응답을 할 수 있었던 상황은 아닐까요? 항상 영적인 상태가 하늘을 향하여 열려 있었던 분들이었기에 자신들이 열망하고 고대하던 분이 부르시자 영이 열린 것은 아닐까요? 마치 베드로의 장모가 예수님께서 손을 잡으시자 열병이 곧바로 나았듯이 자신들이 열망하고 고대하던 분의 음성을 듣고 응답을 드린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이 세상도 태어나는 순서에 따라 형과 동생이 결정되듯이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순서에 의해서 형과 동생들이라는 서열이 자연스레 형성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그 안에서 네 분의 사도는 평상시에 당신들이 사셨던 삶대로 다른 제자들을 대하셨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삶이 습관이 되셨을 테니까요. 이러한 자연스러운 관계는 예수님께서 3인방을 데리고 다니신다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아버지가 특별한 행사에 형님만 데리고 다녀도 큰 무리가 없듯이 말입니다. 요한1서에서도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부분은,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짖말쟁이 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1요한 4,20) 아마 예수님의 제자들은 누구보다도 이 삶을 살아내려 애쓰신 분들일 것입니다. 이상은 묵상임을 알려 드립니다. 주님 안에서 행복하세요! |
||||
태그
|